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전문.
'서시'로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윤동주 시인의 동시집 <산울림>이 도서출판 이가서에서 나왔다. 도서출판 이가서에서는 두 종류의 아동문학을 펴내고 있는데, '만화로 보는 한국문학 대표작선'과 '호기심이 피우는 꽃 빨간우체통'이 그것이다. 윤동주 동시집 <산울림>은 빨간우체통 시리즈 둘째 번 책이다.
시인 윤동주는 1917년 만주 북간도(北間島)에서 출생하여 용정(龍井)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을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에 수학한다. 그는 재학 중 1943년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하다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4년 6월 2년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1945년 2월 16일 새벽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윤동주 시인은 용정 은진중학교 재학시절 연길(延吉)에서 발행되던 <가톨릭소년>에 여러 편의 동시를 발표했고, 1941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오르기 전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자필로 작성된 시집 원고 3부를 남긴 것이 사후(死後)에 빛을 보게 되어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1948년에 간행되었다.
흔히 부끄러움과 성찰의 미학으로 거론되는 윤동주 시에는 일제 식민지 지식인 청년의 순결한 내면 세계가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앞서 인용한 '서시'를 비롯하여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십자가' '자화상' '슬픈 족속' '쉽게 씌어진 시'등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 윤동주의 대표작이다.
시인 윤동주가 평소 좋아하고 따랐던 선배시인 정지용과 백석이 그랬듯이 그도 여러 편의 동시를 발표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윤동주 동시집 <산울림>은 좀 특별한 책이다. 윤동주의 37편의 동시 한편 한편마다 엮은이 박해석 시인의 짧은 설명이 덧붙여져 있고, 또 한국 화단에서 가장 개성적인 화가로 알려져 있는 김점선의 선명한 그림이 어우러져 있다. 윤동주 동시집 <산울림>을 들면 동시와 해설, 그림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42쪽과 43쪽에 걸쳐 있는 윤동주 동시 '봄'과 박해석 시인의 설명을 옮겨본다.
우리 애기는
아래 발치에서 코올코올,
고양이는
가마목에서 가릉가릉
애기 바람이
나뭇가지에 소올소올
아저씨 해님이
하늘 가운데서 째앵째앵
-'봄' 전문.
(봄이 왔습니다. 째앵째앵 빛나는 해 아저씨 덕분에 햇볕이 마냥 따스해졌습니다. 몸이 나른해지는 봄, 우리 애기가 제일 먼저 알았군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코올코올 낮잠을 자고, 고양이는 가마목(부뚜막)에서 숨이 찬 듯 가릉가릉 소리를 내고, 애기 바람은 부드럽게 소올소올 나뭇가지에 붑니다. 시골집의 봄 풍경이 한 폭의 그림 속에 모두 담겨 있네요.-박해석)
아래의 동시 '반딧불'은 윤동주의 시 '또 다른 고향'의 어투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여름 그믐밤 반딧불(반딧불이 혹은 개똥벌레라고도 부른다)이 어둠 속을 날아다니는 풍경을 간단히 노래한 이 작품을 읽어보자.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그믐밤 반딧불은
부서진 달 조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반딧불' 전문.
3연으로 된, 그것도 1연과 3연은 동일한 내용의 단순 반복으로 된 이 동시가 갖는 의미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두 번이나 반복된 "달 조각을 주우러/숲으로 가자"는 것이 시의 핵심적인 내용이지만, 시 창작의 시발(始發)은 "그믐밤 반딧불은/부서진 달 조각"이라고 본 2연에 있다.
사물을 새롭게 보는 데서 모든 창작의 첫 출발이 이루어진다. 한 달의 마지막 날인 그믐밤은 달이 없어 깜깜한 밤이다. 깜깜한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반딧불은 부서진 달 조각이니 동무들아 저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가자고 시적 화자는 노래한다.
달 없어 깜깜한 그믐밤의 이면적(裏面的) 의미는 무얼까? 또 달 조각을 주우러 숲으로 "가자, 가자, 가자,"는 윤동주 시인의 외침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일제 식민지 시대 순결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했던, 끝내 민족의 식민지 상황을 외면하지 못하여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죽어간 윤동주의 전기적 삶과 연관지어 이 시를 자꾸 읽게 된다.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는 밤하늘의 별처럼 식민의 시대에 순결한 삶을 지키려했던 젊은 영혼의 몸부림으로 남은 그의 시편들은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솟아난 별이다. 윤동주의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 동시집 <산울림>을 읽는 우리 어린 아이들에게도 큰 울림과 별빛으로 다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