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천수이벤 총통이 국가통일위원회를 중지시키는 등 독립 행보를 가속화하면서 양안간의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 역시 지난 1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함에 따라, 양안간에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이에 휘말려들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중국에 대한 봉쇄와 포위를 강화하고자 '인도 껴안기'에 나섰다. 동쪽에서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강화를 통해, 그리고 서쪽에서는 인도 및 파키스탄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중국을 봉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세계질서의 최대 변수는 미중관계에 있다. 오래 전부터 '미중관계가 갈등으로 흐르면 한국은 근본적인 딜레마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해온 정재호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역시 "미중관계의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다, 이에 따라 한국의 딜레마도 커질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지난 2월 28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정 교수는 향후 미중관계에 대해 "동반자와 경쟁자 사이에서 이슈에 따라 부침을 하는 관계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적대적 관계로 빠져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정 교수는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해주면서 "양안간의 충돌을 '있지도 않을 일'이라고 말한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고 안일한 자세"라고 비판했다.
최근 국내의 전문가들과 함께 <중국의 강대국화>라는 책을 펴낸 정재호 교수는 냉전시대 50년 동안 미소관계가 세계질서의 중심축이었듯이 앞으로 50년동안 그 중심축은 미중관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정 교수와의 일문일답 요지를 정리한 것이다. 인터뷰 전문은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www.peacekorea.org)에서 볼 수 있다.
- 최근 4개년 국방정책검토보고서(2006년 QDR)에도 나오는 미국의 '양면전략(hedging strategy)'은 무엇을 의미하나? 좀 생소한 개념이다.
"한 마디로 '양다리 걸치기 전략'이라고 보면 된다. 도박을 할 때 양쪽에 돈을 다 걸어 전체적인 위험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지난해 9월 21일에 로버트 졸릭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뉴욕에서 한 연설에서 일정 부분 부각됐다.
한편 당시 졸릭이 사용한 단어 중에 '이익상관자(stakeholder)'는 법률용어인데 '계약 당사자·현안 당사자로서 핵심적인 이익에 영향을 받거나 끼치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국제정치에서 중국의 비중과 역할이 상당해졌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면전략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학계에서 10여 년간 회자되고 있는 'Congagement (Containment(봉쇄정책)와 Engagement(계약)의 합성어)'를 '양면(hedging)'으로 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이미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는 포용과 간헐적으로 정가를 두드리는 중국위협론을 양쪽 다 만족시키면서 균형을 이루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대강 그렇게 이해하면 될 것 같다."
- 중국은 미국 주도의 단극적 세계체제가 과연 인류사회에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의 반응은 어떤가?
"중국이 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까지 상당히 많이 언급했던 '다극화'라는 말을 요즘은 그렇게 많이 쓰지 않는다. 미국의 단극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기 보다는 그런 논의 자체가 지금 큰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전에 사용했던 '화평굴기'나 최근 사용하고 있는 '평화발전'을 통해 중국이 강조하고 싶어하는 것은, 미국과의 1대1 대치 국면에 서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냉전시대에 항상 소련의 뒤 혹은 옆에서 미국을 만났던 중국은 처음으로 미국을 1대1로 만나는 것에 상당히 당황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서 지금 중국의 반응은 양면적이다. 일단 '이익상관자'라고 인정하는 것에 대해 반기는 면이 있지만 그 호칭이 갖는 대가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과 위폐문제, 이란 문제 등의 사안들에 대해서 과연 중국이 이익상관자만큼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우려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 측에서 바라볼 때, 미국이 '양면'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국이 더 건설적인 부분에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데 서로를 경계해서 낭비되는 부분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 2010년까지의 미중관계 시나리오는 어떻게 보는가?
"1940년대 초반부터 50년 가까이 미소관계가 국제정치의 핵심을 이루어 왔다면, 앞으로 최소한 50년은 미중관계가 국제정치의 핵심축이 될 것이다.
제가 생각하는 미중관계는 이렇다. 1980년대 미중관계는 대만문제와 경제통상문제 등 두 가지가 핵심이슈였다. 1990년대 들어서 소련이 몰락한 이후 미중관계의 핵심은 전략적인 문제와 인권문제로 갔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 4가지가 한꺼번에 다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대만·인권·통상마찰·전략문제들, 거기에 더불어 북한문제 같은 여러 이슈가 미중관계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1980년대가 상당히 불안정한 미중관계였는데 2000년대가 더 불안한 측면이 있다.
향후 미중관계는 적에서부터 경쟁자·파트너·우방(동맹)의 관계를 상정해볼 수 있다. 우방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아마 향후 10년간 경쟁자와 파트너의 관계가 이슈에 따라 순환되는 관계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만 대만문제의 추이에 따라 적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고 본다.
- 한반도 문제도 미중 간에 상반된 의견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 같다. 향후 미중관계 전개양상과 북핵문제에 끼치는 영향은 어떻게 되겠는가?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미중 간 시각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93년부터 미국의 관심은 북한 자체보다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있었고, 지금도 큰 차이는 없다. 중국에게는 NPT가 핵심적인 것이 아니라 향후 2020년까지 평균 3000불 소득이 가능한 전면적 소강사회를 달성하기까지 안정된 지역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중국이 북핵문제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전향한 시점은 2003년 2월 말에서 3월 초로 보인다. 핵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이 실제로 이라크에 군사력을 사용했던 때이고 3월 초 북한 전투기와 미국 정찰기가 충돌할 뻔 했던 사건도 있었다. 북미간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중국 나름대로의 판단에 근거해 북한에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2005년 이후에 중국이 북핵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은 것은 이라크에 묶여 있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또 다른 군사적 제재를 가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판단한 것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즉, 중국 주변 지역의 안정이 깨질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중국이 2003년처럼 미국과 적극적으로 보조를 맞출 필요가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북핵문제는 동아시아에서 미중간 파트너십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는 리트머스지다. 이는 이익상관자의 책임을 중국이 얼마만큼 할 것이냐와 관련되어 있다. 예컨대, 위조지폐 문제에 대해서 중국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에 대한 제재를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이익상관자의 역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핵문제에 얼마나 직접적인 자극으로 갈 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 일부에서는 최근 중국이 대북 투자나 북한과의 협력관계를 높여가는 것이 이후 대만문제에 관한 미국의 양보를 상당부분 받기 위한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는데, 그런 문제가 미중간의 고위 전략대화에서 논의될 가능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개연성이 상당히 낮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중국의 공통점은 외교관계에 있어서 도덕성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관중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지 상당히 관심을 기울이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일관성에 집착한다. 예전에 했던 말을 뒤집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북한문제와 대만문제를 교환했을 경우, 10년·20년 후 외교문서가 공개될텐데, 미국이 대외관계에 대한 평가를 전혀 개의치 않고 그런 일들을 할 것인가. 또 그렇게 했을 때 동맹국인 한국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전략회담이든 비밀회담이든 미중간에 공식적으로 북한과 대만을 교환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생각한다."
"중국, 올림픽 놓치더라도 대만 독립 방치 않을 것"
- 실제로 대만이 독립을 추구할 가능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천수이볜의) 민진당 성적이 부진했기 때문에 천수이볜의 독립행보가 늦춰질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해가 바뀌자마자 통일위원회를 없애고 대만의 독립 행보를 강행하는 입장을 보이는 것이 상당히 놀랐다.
사실 대만은 천총통 당선 이후에 여권에 'ROC'(Republic of China)가 아니라 'Taiwan'이라고 적었고, 작년엔 대만의 공항이나 부두에서 수속을 할 때 '출입경'을 쓰다가 '출입국'으로 바꿨다. 저는 이런 것을 '천천히 스며드는 독립행보'라고 이야기한다. 봄비에 옷이 젖듯 서서히 자기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는 모습이다.
천 총통이나 민진당의 독립행보는 실체가 있고 현실로 다가가는 모습이라고 본다. 특히 2008년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 시점이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2008년 선거에서 민진당이 꼭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국민당의 마잉지우의 인기가 상당히 높고 그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상당히 많다. 전략전문가들 분석에 의하면, 2008년까지는 중국이 대만에 대한 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는 장비와 전술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 다음 부분은 설득력이 좀 약하다고 생각하는데, 중국에게 2008년 올림픽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 때문에 대만 독립을 좌시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올림픽을 3번 못 치르더라도 중국은 대만에 대한 주권을 절대 놓지 않을 것이다. '올림픽이 있기 때문에 무력을 사용안 할 것이고 따라서 천수이볜의 독립이 시행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조금 잘못된 의견인 것 같다.
전략적 유연성에 관련한 논쟁 속에서 (노무현 정부가) 대만해협에서의 분쟁을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괜히 상정할 필요 없다'고 한 것에 반대한다. 개연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정책을 추진한다면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정말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작년에 중국은 반국가분열법을 제정했다. 중국 내에서 입법이 갖는 의미는 상징적이지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내부적으로는 자신을 옭아맬 뿐만 아니라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 권한을 대외에 천명함으로써 그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무력이 발생할 개연성은 오히려 높아지는 것이다.
- 반대로 중국이 본격적으로 대만 통일에 나설 시점은 언제라고 보나?
"중국은 대만을 국내문제라고 간주하지만, 국제법상으로 대만과 30여개국이 국교를 맺고 있기에 대만통일을 주장할 근거는 부족하다. 중국의 일부학자들도 인정하듯이 이미 양안관계에는 깊숙이 미국이라는 3자적 요인이 들어있기 때문에 100% 국내적 이슈라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장기적으로 통합의 핵심적인 무게중심은 대륙 쪽에 갈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미 무역의존도로 봤을 때 중국에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대만이다. 한국의 대외교역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금년에 20%가 넘은 반면 대만은 두 배 가까운 40%에 육박한다.
내부적인 통합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에 살고 있는 대만사람들이 이미 50만명이 넘고, 대만에 넘어온 대륙사람들도 수만 명이다. 실질적인 인적·물적인 통합이 가속화되는 상황이어서 중국이 적극적인 통합에 나서지 않더라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
- 최근 한미 양국이 합의한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나 시각은 어떤가?
"별 이야기가 없다.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은 양자의 문제이며 중국이 나서서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양자관계의 결과가 중국에 영향을 미칠 경우 나름대로 권한을 유보한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다. 또한 한국이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서 중국에 대한 고려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해를 표한다."
- 한미 양자의 문제이기 때문에 관여는 안 하지만, 중국의 주권과 안보에 영향을 끼칠 경우 모종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
"그렇다. 2004년 초에 중국전문가 30여명과 인터뷰했을 때의 결론 중 하나가 '양안관계 충돌시 미국이 한국에 지원을 요청할 것이고, 그 핵심내용은 아마도 경제적 지원과 기지의 사용 허가가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주한미군이 중국을 목표로 설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알 수 없지만 전문가들의 인터뷰에서 이야기가 나왔기에 우려할 부분이 있다."
- 미중관계, 양안관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대중 정부까지는 '한국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참여정부에서는 '무엇이 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국력이 커지면서 비전을 갖는다는 건 좋은 것이지만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비전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동북아균형자론'이 그 예이다.
미중관계에서 한국이 역할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양국에게 한국이 '정직한 중재자'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직하다는 것은 '중립'이라는 의미와 가까운데, 과연 중국이나 미국이 한국을 볼 때 중립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한국이 '정직한 중개자'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지 못하거나 구조적으로 다가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또한 과연 미국이나 중국에서 신뢰감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문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정직하고 신뢰감을 주는 중재자라는 이미지를 줄 자신감이 있다면 뭔가 역할을 모색해야겠지만, 자신이 없다면 그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 어쩌면 더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비전은 갑자기 슬로건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많이 돌아보고 준비하면서 세워야 한다.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국익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두 나라지만, 현재로서는 두 나라 사이에서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가 갖는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뷰 전문은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www.peacekorea.org)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