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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난 공원
함평 난 공원 ⓒ 최성민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전령사는 무엇일까? 꽃 중에서 가장 먼저 피는 매화가 아닐까?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여행기사를 써 왔다. 매화 중에서도 가장 먼저 피는 매화가 어떤 것인지를 찾아 나는 가치없는 '의미 매기기'를 해왔다.

몇 해 전 기사에 전남 순천 어느 절 홍매화가 가장 일찍 핀다고 썼더니 어떤 분이 재빨리 그걸 홍보에 이용해 해마다 여기저기 이때만 되면 그 매화타령이 가관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남녘땅 매화가 필만한 곳을 다 훑어보지 않고서 어느 매화가 가장 일찍 핀다고 한 것만큼 무책임한 선정적 보도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지금 자책하고 있다.

그 절 매화보다 훨씬 더 일찍 피는 매화는 같은 종류(흔하디 흔한 홍매화 겹꽃으로 요즘 이를 원예종묘사에서 '설중매'라는 품종으로 판다)로 진해 해군사관학교 홍매화가 있다. 또 충남 부여 어느 지역엔 겨울 동지 무렵에 피는 매화도 있어서 이를 일찍이 '동매'라 했다. 해군사관학교 홍매화보다 일찍 피는 매화로는 따뜻하기로 이름난 고장인 전남 고흥이나 완도쪽 어느 섬마을 돌담 귀통이에 있을 것이다. 또 어느 매화가 일찍 피건 모든 매화는 2월 말~3월 초 중순이면 일제히 피어나니 며칠 먼저 피는 게 무슨 천지가 개벽한 일은 아닐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지난해부터 '서울탈출-시골안착'에 성공해가고 있다. 이 무렵,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서울살이에서 전혀 맛볼 수 없었던 '진득한 봄 만나기'를 하는데, 다름 아닌 '춘란전시회'에 가보는 것이다. 해마다 3월초, 그러니까 3월 첫 주말에 이곳 서남해안 지역 일대에서 춘란전시회가 일제히 열린다.

ⓒ 최성민
전라북도 부안 이남, 영광, 함평, 담양, 무안, 영암, 해남, 강진, 장흥 등 남녘 햇살이 따스한 산록, 참나무나 도토리나무 등 키 작은 잡목들이 있는 숲 속엔 춘란들이 소복하게 자라고 있다가 이 무렵 청초한 꽃을 기린 목처럼 내민다. 춘란이 꽃피울 때쯤이면 그런 산모퉁이를 지날 적마다 난향이 풍기는데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괴상한 찐 내가 난다'는 정도로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 최성민
또 춘란이 많은 지역은 겨울 내내 '춘란사냥꾼'들이 온 산의 춘란포기를 샅샅이 뒤져 꽃대를 꺾어놓고 이파리를 헤쳐 놓는다. 꽃 색깔이나 잎 모양이 특이한 것을 찾아 캐 가려는 것이다. 그걸 보면 이렇게 무자비한 자연훼손, 자연에 대한 폭행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대한민국처럼 산이나 강에 있는 동식물을 아무런 제재 없이 훑어가는, 마치 점령국 전리품 착취해가듯 그렇게 싹 쓸어가는 나라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 최성민
나는 지난 주말 전남 영암 삼호마을회관에서 열리는 '동네 춘란' 전시회를 들러 함평에서 열린 '대한민국 난 명품대제전'에 다녀왔다. 이렇듯 전라남도 서남해안 일대 춘란이 많이 나는 지역에서는 동네 춘란 전시회에서부터 면단위, 시군단위, 그리고 전국 최대규모(함평)의 춘란 전시회가 일제히 열린다.

ⓒ 최성민
이 춘란전시회에 갈 때 나는 두 가지 상치되는 마음으로 혼란을 겪곤 한다. 하나는 기품있는 청초함으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춘란의 자태에서 자연의 신묘함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는 것이다. 거기엔 춘란을 그토록 정성껏 가꾸어 내놓은 춘란애호가들에 대한 경외심도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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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춘란이 '귀한 것'일수록 한 포기에 수억씩 호가하는 현실이 소름끼친다는 것이다. 조상들은 춘란을 보고 그 기품과 지조를 수묵화로 옮겼을 뿐이다. 이번 함평 전시회 출품작 중에서 가장 '값나가는 것'은 2억원이라 했고, 전국의 춘란 장사꾼들은 모두 몰려와 아무리 싼 것도 한 뿌리에 20만원~30만원을 받았다. 그러고 보면 겨울에 춘란사냥꾼들이 춘란 꽃대들을 마구 꺾어 놓거나 포기들을 뿌리째 뽑아놓고 가는 이유가 춘란의 기품을 좇기 보다는 황금을 캐자는 일념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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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삼호마을의 동네 춘란 전시회에서는 인근 마을 사람들이 산에서 캐다가 정성껏 기른 춘란을 내보이는 자연사랑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출품인들의 춘란 기르기에 대한 설명과 춘란 품평은 여느 식물학자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함평에서는 시골에 사는 듯한 40대 중반의 부부가 내 곁에서 내내 줄을 서 걸어가며 남편이 부인에게 춘란의 종류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주고 부인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감상하고 있었다. 제발 그들의 순박한 눈과 귀에 2억이니 몇 억이니 하는 춘란의 '값 매기기'는 오래 남지 않았으면 한다. 전시회를 보고 나오는 20대의 한 젊은이의 말이 내 귀에 오래 남는다. "춘란은 개 춘란이 젤 이쁘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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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춘란전시회보다도 그것이 열리는 장소인 함평 자연생태공원이 기사거리이다. 이 공원은 지자체가 조성하는 자연생태공원으로는 규모나 내용에 있어서 상상을 뛰어 넘는다. 지금 12년째 조성을 하고 있는데 오는 6월 정식으로 문을 연다. 지금까지 들인 돈만 217억원이라고 한다. 면적은 12만평, 네 개 동의 온실과 야외 식물원, 반달곰 사육사, 산삼밭, 오솔길 전망대 등으로 이루어진다.

ⓒ 최성민
공원 앞에는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대동저수지가 펼쳐져 있다. 이곳에는 세계적인 희귀조인먹황새가 가끔 찾아와서 겨울을 난다. 저수지 주변에는 지구상에서 한국에만 있는 황금박쥐 서식지(천연동굴)가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생태공원 전경은 물론 들이 넓다는 '함평천지'와 해제만 등 서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 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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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창간발의인, 문화부 기자,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역임.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서울대 교육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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