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밝음이의 그림입니다. 녀석은 만화광이지요.
밝음이의 그림입니다. 녀석은 만화광이지요. ⓒ 정학윤
그런 첫째 딸애가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새롭게 입을 교복을 구입하거나, 학용품을 구입하거나, 그의 등교에 소용되는 소소한 것들 모두 행사 치르듯 준비했다. 옹알대기만 하던 꼬맹이가 벌써 고등학생이라니. 나를 돌아보면 세월무상이 새삼스럽지만, 녀석의 성장은 실로 감개무량에 다름 아니다.

입학식이 있던 날 저녁에 녀석에게 물었다.

“하루에 몇 시간 공부하냐?”
“잘 모르기는 하지만요. 저녁 9시 조금 넘어서 마친데요.”

녀석은 그렇게 대답했다.

“무슨 사람 잡을 일 있냐? 고등학교 1학년을 그 시간까지 잡아두다니….”
“대학 진학시 1학년 때 성적 반영 비율이 50%나 된다니, 그렇게 빡세게 공부시켜야 한다나 봐요.”

애처로운 속마음이야 나와 다를 바 없겠지만, 녀석의 각오를 우회적으로 주문하려는 애 엄마의 말이다.

“이거 원! 뭐가 뭔지 모르겠네.”

걱정은 한 가지 더 있다. 버스노선이 마땅치 않은 녀석의 등교에 걸리는 시간은 도보로 약 20~30분 정도의 거리인데, 아침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저녁 시간에 하교 길이 문제인 것이다. 세상이 하 수상하니 매일 마중을 나서야 할 판이다.

어제의 일이다. 저녁 9시 10분쯤 녀석이 하교를 한다고 해서 자전거를 타고 마중을 나갔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는 기분도 좋았거니와 녀석을 태우고 돌아오면서 두런 두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할 만하냐?”
“잘 모르겠어요.”

불현듯, 내 아비가 몰던 자전거 뒤에 타서 이처럼 어딘가에서 돌아올 때, 그에게서 나던 땀내음 같은 것이 다시 느껴지는 것 같았다. 녀석도 많은 시간이 지나서 나와의 이런 추억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그러니깐 니네들 수업시간표가 어떻게 되는 거지?”
“정규수업은 약 7시간 정도 되고, 보충수업 두어 시간에, 다시 야간자습 두어 시간 그렇고요. 학교에 체류하는 시간은 밥 먹는 시간까지 합하면 12시간 정도. 제 친구는 그 이후에 다시 학원에 가서 두어 시간 공부를 더 하구요.”

녀석은 덤덤하게 대답하였다.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습 같은 것은 안 해도 되는 것 아냐? 아빠는 네가 그렇게 공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데, 그거 관둬라. 네 생각은 어때?”
“보충수업이나 야자 같은 거 신청하지 않으면 선생님에게 찍힌대요.”

밝음이가 찍은 막내의 사진입니다. '범인'이라는 제목이 너무 우습지요?
밝음이가 찍은 막내의 사진입니다. '범인'이라는 제목이 너무 우습지요? ⓒ 정학윤
해보지 않았으니 어찌 알겠는가마는 녀석은 그리 짐작하고 있었다. 답답한 노릇이다. 이들이 커서 되돌아보면 여고시절의 아련한 추억이란 게 있을까? 그네들의 나이 대에서 가져야 할 감성과 아름다운 뭔가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혹은 그 시절에 겪어야 할 성장통 같은 것을 치르면서 성숙해 갈 것인가?

“동아리 가입은 했냐?”

나는 아이에게 공부만을 강요할 의사는 없다.

“다른 동아리는 가입하라고 선전하는데, 만화동아리는 선전이 없어요. 학교 홈페이지에는 만화동아리가 있다고 되어 있던데, 혹시 없어졌나? 내일 선생님에게 물어봐야겠다.”

밝음이의 그림입니다. 약간 슬프게 보이나요?
밝음이의 그림입니다. 약간 슬프게 보이나요? ⓒ 정학윤
녀석의 취미는 만화그리기여서 만화동아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전거에 녀석을 태우고 오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는 있겠지만, 녀석이 안쓰러워서 어쩐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