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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경이로운 구름나라를 날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경이로운 구름나라를 날고 있습니다 ⓒ 김관숙
짙푸른 남태평양에 떠 있는 섬들, 피지. 구름이 물러서서 보호해 주고 있습니다.
짙푸른 남태평양에 떠 있는 섬들, 피지. 구름이 물러서서 보호해 주고 있습니다. ⓒ 김관숙
남편과 피지 난디 공항을 나와, 마중 나온 딸애와 같이 승용차 편으로 세 시간 거리인 수바로 향했습니다. 핸들이 우리나라 차와 달리 오른쪽에 있고 차들은 좌측통행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방문길이라 하나도 낯설지 않습니다.

푸른 바다를 끼고 달려가는 외길 역시 2년 전과 같이 무척 한가롭고 말 그대로 불볕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영하의 날씨인 서울에서 껴입고 온 옷들을 벗고, 속에 입고 온 반소매 티셔츠만인데도 땀이 막 흐릅니다.

어느 쪽을 보아도 풍광이 아름답습니다. 구름이 하늘에 떠 있지를 않고 산 위로 수평선 위로 또는 저 멀리 크고 작은 집들이나 푸른 숲 위로 하얗게 하얗게 피어올라 있습니다.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불볕이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내는 모양입니다. 타는 듯한 불볕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풀이며 나무들이 하나같이 싱그럽고 윤기가 납니다.

풍광이 아름답습니다
풍광이 아름답습니다 ⓒ 김관숙
길섶에는 아주 드물게 과일 좌판들이 있습니다. 맹고(망고), 포포(파파야)가 한 무더기에 F$2. 무지 쌉니다. F$1은 약 600원.

코코넛 나무 밑 좌판 앞에서 승용차를 멈추자 작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그늘막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두 남자 중에 풍채가 큰 남자가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가 주인인가 봅니다. 딸애가 먼저 상냥하게 '블라(BULA)' 하면서 웃음을 건네자 그도 '블라' 하면서 씩 웃습니다. 그런 뒤 즐거운 얼굴로 나와 남편에게 '블라 블라' 합니다. 나도 덩달아 즐거워져서 '블라' 하고 인사를 나눕니다. 그의 발은 맨발입니다.

한 무더기에 F$2
한 무더기에 F$2 ⓒ 김관숙
한 무더기에 F$1 짜리
한 무더기에 F$1 짜리 ⓒ 김관숙
밑에는 잔 것들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습니다. F$2짜리 망고 한 무더기를 사고 나자 주인은 옆에 F$1짜리도 아주 잘 익어 맛있다고 사라고 합니다. 딸애가 너무 잘다고 하니까 하나 더 줄 테니까 사라고 합니다. 딸애가 마지못해 또 한 무더기를 삽니다. 나는 한 무더기 더 사라고 합니다. 기왕 두고 먹을 거고 주인이 말씨도 온순하고 너무 착해 보여 많이 팔아주고 싶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빌리지에 사는 사람 같기도 합니다.

주인이 그런 나를 보다가 뒤쪽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무더기에서 작은 망고 한 개를 집어다가 내게 줍니다. 작지만 발그스름한 것이 색깔이 아주 곱습니다. 노트북 옆에 놓아두고 보면 제격일 것 같습니다. 내가 어린아이같이 좋아하면서 '땡큐' 하고 환하게 웃자 그도 환히 웃으면서 받은 돈을 바지 주머니에 넣습니다. 정감이 느껴집니다. 꼭 우리나라 국도변에서 만난 마음씨 좋은 과일장사 아저씨만 같습니다.

그는 피지 공식어이면서 우리 귀에 익숙한 영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에 익숙한 말보다는 그의 착한 눈빛이며 주고받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감이 더 친근감을 가지게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어디서 어떻게 살든 간에 누구나 다 똑같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승용차에 올라 돌아다보니까 그는 검고 두터운 손으로 천천히 좌판 빈자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밑에는 잔 것을 놓고 위에는 큰 것을 놓았습니다. 이상합니다. 하나도 거부감이 안 듭니다.

시동 거는 소리가 나자 그가 머리를 들었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내가 차창으로 손을 내어 흔들자 그도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런 그의 얼굴에 뜨거운 불볕이 꽂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눈 하나 찡그리지를 않았습니다. 보잘 것 없는 좌판을 꾸려가고 있지만 좌판을 찾는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쩐지 그는 돈을 벌게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얼마쯤 가다가 그가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다보았습니다.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좌판의 끝머리가 보이는가 하다가는 우람한 모습으로 섰는 망고 나무 이파리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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