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큰딸이 교내 행사인 뮤지컬 <수지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되었다. 공연을 앞둔 딸은 뮤지컬 반주팀과 함께 방과 후에도 남아 연습을 했고, 야간에도 연습을 하러 학교에 가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티켓을 사야 한대. 미리 사야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데 애들은 벌써 샀더라고."
"에엥, 무슨 티켓? 너희들이 공연하는 걸 돈 내고 보라고? 학교 강당에서 하는데 무슨 돈을 내라고. 웃긴다. 프로도 아니면서 무슨 돈을 받는대. 그리고 설사 돈을 받는 공연이라 해도 직접 참가하는 사람에겐 가족 관람용 티켓 정도는 공짜로 주는 게 '센스'지."
공짜를 밝히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학교 공연은 대개 무료라 이해가 안 되었다. 물론 그들이야 아마추어니까 당연히 공짜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프로의 경우에도 공짜로 볼 수 있는 공연은 많았다. 공짜 티켓으로 불리는 '초대권'이 적게는 몇 장, 많게는 몇 십 장 돌아다녔으니까. 그런데 이곳 미국에서는 그런 게 안 통했다.
"그나저나 티켓은 얼만데?"
"예약하면 10달러, 현장 매표구에서 사면 어른은 8달러, 학생은 6달러래."
"비싸네. 그런데 미리 사면 더 싸야 되는 거 아니야? 어떻게 더 비싸?"
"예약을 하면 좋은 자리를 지정받으니까 그렇대. 그렇지 않으면 당일 창구에 와서 티켓만 받고 일반석에 앉아야 된다고 하니까."
"그래도 우리 세 식구 가려면 학생 할인도 안 되니까 30달러를 내야 하는데 비싸다."
티켓을 사야 하는 이곳 시스템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뮤지컬도 좋아하고, 딸도 출연하는지라 나는 세 장을 예약했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아니, 학교에서 하는 학생 공연에 왜 돈을 받는 거야. 프로도 아니면서…."
공연 첫날, 우리는 공연 장소인 학교 강당으로 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공연 외에도 다른 볼거리들이 많이 있었다. 바로 공연장 입구에 전시된 학생들의 미술작품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관객들이 학생들 공연에 티켓을 사서 들어온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로비에 있는 많은 잡상인(?)들도 내 눈길을 끌었다.
그들이 판매하는 품목은 다양했다. '수지컬' 주인공과 즉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티켓(3달러), 캐릭터를 자석으로 만든 마그네틱(1달러), 주인공이 썼던 모자(5달러) 등등.
이밖에도 뮤지컬 캐릭터 인형이 1달러였는데 1달러를 내면 바로 인형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인형을 받을 수 있는 '티켓'을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간의 '인터미션' 추첨을 통해 단 한 사람에게만 인형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마치 로또에 당첨되듯 당첨이 되어야 받을 수 있는 인형이었다. 하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1달러를 내고 인형 티켓을 구입하고 있었다.
이처럼 공연장 밖에는 관객들로 하여금 돈을 쓰게 하는 행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큰 돈을 내는 건 아니어서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은 쉽게 지갑을 열었다.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모두 흥이 나는 공연장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관객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것은 뮤지컬 관련 상품만이 아니었다. 뮤지컬과 무관한 '퀼트'와 '잼' 등 음식도 호시탐탐 지갑을 노리고 있었다. 웬 장사꾼들이 그렇게 점잖지 못하게 학교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퀼트를 파는 여자에게 질문을 했다. 듬직한 체구의 퀼트 아줌마가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 이거요? '수지컬'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 학부형들이 나선 거예요.(알고 보니 잡상인들은 모두 헌신적인 학부형들!) 오늘 제 딸도 출연을 해요. 뭐냐고요? 하하, 이름 없는 수많은 숲 속의 '후빌' 가운데 하나예요."
"우리 한국에서는 이런 학교 공연에 돈을 내지 않아요. 아마추어인 학생 공연에 왜 돈을 받나요?"
"그럼 한국에서는 공연에 필요한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나요?"
"학교 예산에서 나오고 또 후원금을 받기도 하고…."
학교 예산이라는 말에 퀼트 여자는 "학교에서는 이런 행사 말고도 돈 들어갈 중요한 일이 많을 텐데"라며 내 말을 잘랐다. 그러면서 이런 데까지 소중한 예산을 쓰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이 공연을 후원하지 않나요?"
"물론 학교에서도 후원을 하지요. 하지만 턱없이 부족해요. 이런 공연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의상도 그렇고 무대 장치, 조명, 분장 등등. 이번에 공연하는 뮤지컬 팀은 '브로드웨이'에서 많은 걸 빌려왔어요. 어떻게 학교에서 다 그 재원을 마련하겠어요. 그래서 우리 드라마 팀 학부형들이 좋은 공연을 위해서 이걸 팔고 있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제가 만든 퀼트예요. 1달러인데요. 행운이 따르면 단돈 1달러에 좋은 퀼트를 살 수 있어요. 행운을 기대하면서 이 티켓을 사세요. 그리고 옆에 있는 잼이나 쿠키는 학부형들이 직접 만들어서 파는 건데 맛이 있어요. 하나 사세요. 하하."
알고 보니 이곳에서는 학교 행사라고 하더라도 철저하게 수요자 부담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아마추어인 학생들의 공연이라 하더라도 보는 사람이 개인 부담으로 티켓을 구입하고 관련 부서에서도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있었다. 물론 학교에서 지원되는 예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런 활동의 중심에는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돕는 자모회가 있었다. 이들은 학교 예산이 좀 더 중요한 분야에 쓰일 수 있도록 웬만한 학생활동의 비용은 스스로 조달하는 수고를 감당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깊은 뜻을 알지 못해 아마추어인 학생들이 돈을 받는다고 입을 내밀었다. 하지만 내가 내는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알고 나니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었다.
그리고 어설프게만 생각했던 학생들의 공연도 돈을 받기에 충분할 만큼 아주 탁월했다. 마치 브로드웨이 공연팀이 온 것 같은 착각이 들도록 말이다. 결국 우리 가족은 둘째 날에도 '다시' 티켓을 사서 한 번 더 '수지컬' 공연을 감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