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의 자전거> 이 책은 사춘기 소년의 심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상권의 동화이다. 저자 이상권은 1964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임진강 나산강과 불갑산 주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경험을 살려 동물이나 곤충 식물을 소재로 생태동화를 쓰고 있다.
이 책 곳곳에도 자연에 대한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눈길을 끈다. 동화 <14살의 자전거>는 1994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로 발표됐던 작품으로, 몸의 변화와 더불어 성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하는 사춘기 남자아이의 성장 과정을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14살의 시우가 겪게 되는 첫사랑의 감정은 그저 설레기만 한 것일까. 아니었다. 설렘에 앞선 스스로의 초라함에 시우는 가슴이 아프다. 중학교에 진학한 시우는 명숙이와 같은 반이 된다. 남자아이들의 관심은 모두 명숙이에게 쏠린다. 그러나 시우는 여전히 명숙이 곁만 맴돌 뿐이다.
그 즈음. 친구 성남이 한 통의 편지를 건네며 명숙이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한다. 편지를 받아든 시우는 자신이 성남이 연애편지나 전해주는 초라한 신세라는 깊은 자책으로 몸부림친다.
“정말 나라는 인간은 잘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얼굴도 거무스름하니 그저 그렇다. 공부도 그저 그렇다. 달리기나 배구 같은 운동도 그저 그렇다. 학교에서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저 그런 존재다. 나는 그냥 큰 산에서 소리 없이 살아가는 작은 바람하고 비슷한 존재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도 잘하는 게 없을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수동이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서울 가서 돈을 벌겠다고 했다. 나는 그런 생각도 못했다. 자신이 없다. 재동이 형처럼 자장면 배달을 하고 구두닦이를 하고 여러 공장에서 일하는 그 모든 것에 자신이 없다. 물론 농촌에서 살 자신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뭐란 말인가. 어디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그러나 시우에게도 행운이 찾아든다. 명숙의 곁을 지나던 시우의 자전거에서 무심히 떨어져 버린 도시락. 그 일로 말미암아 둘은 친구가 된다. 명숙을 향한 시우의 해바라기는 드디어 노란 꽃을 피우며 까만 씨를 품게 된다.
시우는 더 이상 꿀 먹은 벙어리가 아니었다. 명숙일 만나면 말이 줄줄줄 흘러 나왔다. 둘은 시냇물처럼 졸졸졸 이야기를 했다. 구태여 말이 필요 없을 땐 눈짓으로 말을 주고받기도 했고 깨알 같은 글씨로 편지지를 채우느라 하얗게 밤을 새우기도 한다.
14살. 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겠지만 아마도 사춘기 시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풋풋한 첫사랑을 경험했을 수도 있고 또 장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 번쯤 뜬 눈으로 밤을 새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14살의 자전거>라는 동화는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아련한 향수에 가슴이 떨리게 한다. 아득한 기억 속에서 새삼스레 건져 올린 내 사춘기의 추억이 책갈피 마다마다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즈음. 명숙과 시우의 관심사는 바로 장래에 대한 꿈이었다. 시우에게도 꿈은 있었다. 화가가 되고 싶기도 했고 과학자가 되고 싶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꿈들은 번번이 좌절되고 말았다. 바로 선생님들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시우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왜 나를 스쳐간 선생님은 한결같이 차가운 느낌이 들까. 나를 4학년 1반 사생대회 대표로 뽑았다가 아무런 말도 없이 바꿔치기 했던 선생님.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나한테 심마니 땅꾼 운운하던 선생님. 그리고 똥지게나 지고 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던 선생님까지….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학생들에게 학습능력만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살다가 지쳤을 때 기대고 싶은 나무 같은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춥거나 외로울 때 선생님 이름만 떠올려도 따뜻한 느낌이 들게 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대학을 갈수만 있다면 선생님이 되고 싶어. 선생님이 되어서 잘난 놈들만 챙기는 게 아니라 나처럼 못난 놈들을 챙겨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시우에게 명숙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정말 좋은 생각이라며,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명숙의 확신에 시우는 힘을 얻는다. 결국 시우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도시의 고등학교에 당당하게 합격한다.
도시로 떠나던 날. 시우는 난생 처음 어머니를 느낀다. 신의 생명의 발원지이자 원래 자신이랑 한몸이었던 또 다른 자신인 어머니를 시우는 그때서야 비로소 가슴으로 느낀다.
가시로 찔러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정도로 강해 보이던 어머니 눈에 고래실 논배미처럼 고인 눈물을 그때서야 보았다. 어버이날 그 흔한 카네이션 하나 달아 준 적 없고 어머니 생일조차 기억하지 못했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런 무심함의 자책감이 그때서야 아프게 밀려왔다. 집을 떠나는 시우.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알 수 없는 어떤 힘들이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고 있다는 것을 시우는 새삼 느낀다.
14살 시우는 분명 철부지였다. 그러나 3년이라는 시간은 시우를 철들게 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사춘기란 것이 사람을 철들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마력으로 몸과 마음을 영글게 하는 게 바로 사춘기인지도 모르겠다.
14살의 순수함을 말한다면 그 사랑이란 건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아름다운 만큼 안타깝고 초라하고 주눅 드는 것이 바로 시우의 사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14살 시우의 사랑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 사랑을 통해 시우는 꿈을 이야기했고 이어 꿈을 가질 수 있었고 꿈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으므로.
작가 이상권은 방황하던 모습이 아름다웠노라고 14살 시우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오랫동안 닫아 놓았던 마음의 문을 열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어두운 기억들. 너무나도 못나 보이고 자신 없이 살아갔던 그 시절의 제 모습이지만 다시 돌아다보니까 참 아름다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화려하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늘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그 누구 못지않게 세상과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부대끼면서 저라는 존재를 키워 갔지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일겁니다. 무엇하나 피하지 않고 온 몸으로 받아 내면서 고민하고 몸부림쳤던 그 시절이."
몸도 마음도 어쩔 수없이 앓게 되는 열병으로 방황 아닌 방황을 해야만 했던 사춘기가 우리 기억 속엔 분명 존재한다. 더불어 분명한 것은 사춘기를 지나오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만큼 성숙해 졌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고통이 내 앞의 삶을 가로막는다면 가슴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 두었던 그때 그 시절 바로 사춘기를 한 번 꺼내보자. 그리고 한번쯤 되뇌어 보는 건 어떨까.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고….
고통의 깊이만큼 영글어 가는 게 바로 삶 아닐까…. 14살 시우의 방황 즉, 무엇하나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 내면서 고민하고 몸부림쳤던 그 시절이 아름답다는 작가의 말이 하루하루 힘든 일상에 지친 내게 따스한 훈김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