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이해찬 전 총리의 뒤바뀐 처지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2년 전 총선을 앞두고 정동영 당시 의장의 '노인폄훼' 발언으로 의장직에서 내려온 것과 지방선거를 앞둔 최근 이해찬 전 총리가 '3.1 절 골프' 파문으로 낙마하게 된 것 사이, 두 사람의 인연이 묘하게 교차하고 있다.
"4·15 총선 직전 '노풍'이 불었을 당시 이해찬 의원은 '파도가 밀려올 때는 맞아야 한다, 그렇게 파도가 지나갈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벤트같은 걸로 모면하려는 정치를 해선 안 된다는 말이었다. 지금은 (둘의 처지가) 거꾸로 된 것 같다."
최근 골프 파문으로 총리직 사퇴가 임박했을 무렵,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이 내뱉은 말이다.
정동영 의장은 매우 치밀하고 차분하게 '총리 사퇴 불가피론'을 관철시켰다. 골프 파문 초기, 사퇴 반대 입장에 섰던 재야파·친노파와도 불협화음없이 입장을 모아내는 등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30년 친구' 끌어내린 정동영 "인간적으로 괴로웠다"
반면 비정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16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정 의장은 "인간적으로 괴로운 부분이 있다"며 "그러나 그것은 누구도 선뜻 나서서 하려고, 마시려고 하지 않은 쓴 잔이었다"고 소회를 드러냈다.
"총리직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당의 입장을 노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과 관련, 정 의장은 "공과 사가 충돌하게 되지만 의장으로써 (단일한 입장을 모아준) 의원들을 책임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 의장은 이제 곧 당으로 복귀하는 이 전 총리를 '친구'이자 '동지'라고 명명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맞아달라"고 의원들에게 당부했다.
"70년대 유신학번으로 같이 대학에 들어와 친구로 지냈던 이해찬 전 총리가 수도 없이 끌려갔을 때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30년 동안 친구이고 구속자 동지로서 우정을 만들어왔다. 어떤 친구보다 날카로운 비판의식,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감, 이것이 이 전 총리의 뿌리였다. 작은 부주의로 총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해찬 전 총리와 정동영 의장은 서울대 72학번 동기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이 터졌을 때 이 전 총리는 이 사건의 주동자로 옥고를 치렀고, 정 의장도 연루돼 구속되기도 했다. 이 때 이들은 서대문구치소로 이감되기 전 동대문 유치장에 일주일 여 함께 있으면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서울대 72학번 동기 모임 '마당'을 통해 교분을 이어왔다.
정치 입문 시기는 이해찬 전 총리가 훨씬 빨랐다. 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평민당에 입당한 뒤 이듬해 총선에서 첫 국회의원 배지(서울 관악을)를 달았다. 그리고 내리 5선을 한 중진의원이다.
정 의장은 이 전 총리에 비해 10년 가량이 늦었다. MBC 앵커였던 정 의장에게 정계 입문을 권유한 사람은 이 전 총리였다. 96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정 의장은 15대 총선에서 전국 최대득표로 화려하게 등장해 이후 대변인, DJ 특보 등 중견 정치인으로 커나갔다.
입문 시기로만 따지면 이 전 총리가 10년 선배지만 정 의장은 대선 후보 출마, 두 번의 당의장 당선 등 최고직을 거쳐왔다. 반면 이 전 총리는 교육부 장관과 3차례의 정책위원장, 열린우리당 창당기획단장 등 '참모형' '지명직' 행보를 걸어왔다.
그러다가 이 전 총리가 선출직에 도전한 대표적 사례는 총선 직후 17대 첫 원내대표 경선. 하지만 천정배 현 법무부 장관(3선)에게 고배를 마셨다. 재야파(김근태)가 민 이해찬 후보가 당권파(정동영)가 민 천정배 후보에 밀렸다는 평가였다. 정 의장은 민주당 정풍 운동과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한 '정치적 동지'를 선택한 것이다.
경선 당일 정동영 의장은 인사말에서 "이해찬 의원은 학생운동 서클의 지도자였다"며 "이 의원을 따라다니다가 경찰서도 가고, 구치소도 가봤다"고 말했다가, 앉아 있던 유시민 의원이 "그러다가 의장까지 됐으면 성공한 것 아냐"라고 뼈있는 농을 던져 좌중에선 웃음이 터진 일화도 있다. 유 의원은 이 전 총리의 대학 후배이자 보좌관 출신으로 측근으로 통한다.
당에서 만나는 두 사람... 지방선거는 위기이자 기회
하지만 이후 이 전 총리에게 반전의 기회가 왔다. 그 해 6월 개각에서 정 의장이 통일부 장관으로 입각이 결정되고 이해찬 의원이 전격 국무총리로 발탁된 것. 또한 노 대통령이 분권형 책임총리제를 내세우면서 총리의 위상은 높아졌고 명실상부한 2인자 아니냐는 시선을 받았다.
이 둘은 '참여정부'라는 한 배를 탔지만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둘러싸고 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이 전 총리는 노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실세총리'로 당·청 간 수문장 노릇을 해왔고, 정 의장은 통일·외교 분야 실적을 쌓으면서도 당에선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해 '당권파'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둘은 이제 다시 당에서 만나게 된다.
"유임쪽 생각을 많이 했던" 노 대통령을 설득해 총리직 사퇴를 이끈 정 전 의장은 이제 걸림돌을 치우고 지방선거에 올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그 과정에서 노 대통령 다음으로 여권 내 확실한 2인자로 부상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지방선거 후 책임론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쥔 셈이다.
반면 여권의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던 이해찬 전 총리의 '역할론'에 대해선 지방선거 이후를 기약하는 관측이 많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요동칠 수 있는 당·청 역학관계 속에서 이 전 총리의 '명예 회복'이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참여정부의 성공을 위해 2천 번이나 회의를 주재했다"는 이 전 총리, 앞으로 당에선 어떤 회의에 모습을 나타낼지 주목된다.
대중성이 떨어져 "초등학교 반장선거에 나가도 떨어진다"는 '악담'도 듣는 이해찬 전 총리와 대중성을 지나치게 의식해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정동영 의장. 대선을 향한 이들의 행보도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