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늘(18일) 용산역 앞에서는 평택문제를 형상한 전시회 <소원전>이 열렸다
오늘(18일) 용산역 앞에서는 평택문제를 형상한 전시회 <소원전>이 열렸다 ⓒ 박준영
일본과 미국에 이어 또다시 미군에게 자기 땅을 빼앗겨야 하는 평택 사람들의 수난에 찬 지난 어제와 오늘을 형상한 작품
일본과 미국에 이어 또다시 미군에게 자기 땅을 빼앗겨야 하는 평택 사람들의 수난에 찬 지난 어제와 오늘을 형상한 작품 ⓒ 박준영
조상 대대로 일궈온 땅을 일제에게 빼앗기고, 해방이 되었다고 기뻐하기도 전에 또다시 미군에게 빼앗겼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맨 몸뚱이로 쫓겨낸 평택 주민들. 농사짓는 것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던 순박한 주민들은 밤낮 없이 땅에 얼굴을 파묻고 짜디짠 갯벌을 비옥한 옥토로 만들었다. 일본과 미국이라는 외세에게 자기 땅을 빼앗기고도 농사짓는 것 밖에는 할 줄 몰랐던 평택 사람들이 2006년 '땅을 내놓으라'는 세 번째 요구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평택의 기름진 옥미를 이번만은 미군의 전쟁기지와 맞바꾸지 않겠다는 평택 사람들. 그들은 550일이 넘게 한 손에는 호미 괭이를, 한손에는 촛불을 들고 평택을 지키고 있다.

가깝게는 550여일이지만 100여 년의 수난과 강탈의 한이 폭발한 평택 주민들의 미군기지 확장 이전 반대 투쟁. 그 투쟁을 담은 전시회 <소원전>이 18일 서울 용산역 앞에서 열렸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여느 전시회와는 달랐다. 사진, 미술 등 보통 전시회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아니라 사람 크기의 종이인형들이 다양한 군상을 형성하고 있었다.

평택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평택 주민들의 100여 년의 수난사, 평택과 한반도를 지키기 위해 550여 일 동안 촛불을 들고 싸우고 있는 지금의 투쟁, 그리고 평택 사람들과 연대하여 평택지킴이로 나선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땅을 빼앗겨야 했던 평택 조상들의 땅을 빼앗는 자들을 향한 두려움과 분노, 황무지와 같은 갯벌을 손이 터지도록 일구는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 그리고 '영농금지안내서'를 받아든 할아버지의 50년만의 분노와 주황색 투쟁 깃발을 꽂는 아저씨의 결연한 눈빛 등은 마치 평택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을 용산역 앞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추운 비닐하우스 안에서 촛불을 든 엄마의 다리를 베고 새우잠을 자는 아이. 귀마개 하나로 겨울바람을 이기며 뛰어노는 아이들이 손에 쥔 '올해에도 농사짓자'라는 플래카드는 평택 사람들의 싸움이 '내 땅, 내 재산을 지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온전한 땅을 물려주고 싶다'는 절절한 심정이 녹아 있다.

그리고 꽃뭉치를 들고 평택지킴이로 나선 도시 아빠와 아들, 아줌마들은 자리 한 켠을 비워두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함께 서서 평택을 지키자고 손 내밀고 있었다.

이제는 더이상 빼앗길 수 없다며 550여일이 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을 들고 있는 평택주민들의 오늘을 형상한 작품
이제는 더이상 빼앗길 수 없다며 550여일이 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을 들고 있는 평택주민들의 오늘을 형상한 작품 ⓒ 박준영
평택주민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평택지킴이가 되어 평택땅을 지키고 이 땅의 자주를 지키자며 손을 내밀고 있는 작품. 비둘기 팻발을 든 인형 옆자리가 비어있는데 이 자리는 '포토라인'으로 지나가는 시민들이 평택지킴이기 되어 보는 자리이다
평택주민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평택지킴이가 되어 평택땅을 지키고 이 땅의 자주를 지키자며 손을 내밀고 있는 작품. 비둘기 팻발을 든 인형 옆자리가 비어있는데 이 자리는 '포토라인'으로 지나가는 시민들이 평택지킴이기 되어 보는 자리이다 ⓒ 박준영
전시물 앞에 모여 내용물을 자세히 읽어 보고 있는 시민들
전시물 앞에 모여 내용물을 자세히 읽어 보고 있는 시민들 ⓒ 박준영
그림공장이 준비한 이번 <소원전>은 실제 작업 기간은 한 달여지만 준비기간은 1년이 훌쩍 넘는다. 지난해 초 '깨우는 동화' 작업을 하면서 평택을 방문하게 되었다는 전진경 <소원전> 창작팀장은 "그때 평택 주민들의 증언록을 보면서 평택문제가 대단히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그 이후 수차례 평택을 방문하면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항상 곁에서 함께 싸우지 못하는 것이 죄송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면서 주민들과 약속한 것이 있는데 평택의 싸움을 전시회라는 형식을 빌려 전국에 알리겠다는 거였다"고 <소원전>을 기획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전진경 팀장은 "아직도 평택 미군기지확장이전 반대 투쟁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정부에서 정말 필요하다면 내 땅을 내줄 수 있다. 그런데 미군기지로 쓰기에는 이 땅이 너무 아깝다'며 후대들에게 이 옥토를 그대로 물려주고 싶다고 말하는 주민들을 만나면서 이 분들의 진심을 전달하고 싶었고, 평택 주민들의 수난 많았던 삶을 소박하게 그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평택싸움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현 시기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면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싸움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다"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기적이 일어났듯이 평택싸움에서도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고 그 기적은 바로 평택주민들과 함께 온 나라 국민들이 분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설치된 인형 조형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시민들도 <소원전> 전시마당은 북새통을 이뤘다
설치된 인형 조형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시민들도 <소원전> 전시마당은 북새통을 이뤘다 ⓒ 박준영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한 켠에서 펼쳐진 선전판들이 또한 시민들의 눈길을 모았다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한 켠에서 펼쳐진 선전판들이 또한 시민들의 눈길을 모았다 ⓒ 박준영
전시회를 보고 한 시민이 전쟁위협 반대, 미군철수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전시회를 보고 한 시민이 전쟁위협 반대, 미군철수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 박준영
전진경 팀장의 바람이 서울시민들의 마음에 전달되었는지 <소원전>은 사람들의 발길로 내내 북적였다. 쉽게 볼 수 없는 대형 인형들의 군상을 보고 가는 걸음을 멈춘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인형을 만져보고 신기해 하고는 이내 인형 옆에 써있는 문구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읽으며 '지금도 싸우고 있는 평택'의 문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특히 평택투쟁의 상징지로 되어 있는 대추초등학교를 접수하겠다며 강제집행을 위협하는 공권력과 이를 막는 평택주민들과 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치열한 대치상황을 보여주는 형상물 앞에는 쉴 새 없이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자, 우리 땅을 지키자는 거야'라며 어린 아들에게 전시회 내용을 설명하는 어머니, '평택에서는 미국에게 땅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싸우고 있어'라며 애인에게 설명하는 젊은 청년 등 평택싸움을 형상화한 인형들 주변에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은 평택에 대한 자기 생각을 표현했고, 몰랐던 사람들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평택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빼앗길 수 없는 이 풍요로운 땅 <소원전>' 전시회는 19일까지 용산역 광장에서 전시되며 이후 전국을 돌며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 투쟁에 대해 알려나갈 계획이다. 또한 전진경 팀장은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부산, 부평, 광주 등 전국에서 미군문제를 가지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작가들과 합심하여 전국의 반미문제를 한자리에 모아 '반미거리 미술전'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한 편에서는 한미간 '전략적 유연성의 본질'과 한반도 전쟁위협에 대해 설명한 선전판이 설치되어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미국의 전쟁위협 반대, 미군철수 내용을 담은 서명운동이 진행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자주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주권자전국회의에서 파트로 힘을 보태고 있는 세 아이 엄마입니다. 북한산을 옆에, 도봉산을 뒤에 두고 사니 좋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