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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골 산기슭에서 본 삼층석탑.  이 탑을 올려볼 때는 마치 '부처나라'를 보는 듯한 신비한 감동을 느낀다
용장골 산기슭에서 본 삼층석탑. 이 탑을 올려볼 때는 마치 '부처나라'를 보는 듯한 신비한 감동을 느낀다 ⓒ 추연만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산 정상에 우뚝 솟은 탑을 보노라면,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경주 남산 용장사터 삼층석탑은 평지나 산기슭이 아닌 산꼭대기에 있는 모습으로 인해, 다른 탑보다 더욱 눈길을 끈다.

나아가 산 전체를 하층 기단으로 삼은 탑의 웅장한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특히 용장골 산기슭에서 이 탑을 올려볼 때는 마치 '부처나라'를 보는 듯한 감동을 준다. 자연과 종교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손꼽힐 만하다.

용장사터 석탑은 금오산 정상에서 통일전 쪽 순환도로로 1Km 남짓 가면 쉬이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용장리 마을에서 오솔길을 타고 계곡을 거슬러 올라야 제 감흥을 느낄 수 있다. 남산에서 제일 큰 이 계곡은 용장사란 절로 인해 예로부터 용장골이라 불리며 남산 팔경으로 꼽는다.

경주남산 용장골에서 본 꽃
경주남산 용장골에서 본 꽃 ⓒ 추연만
용장골에는 노란 산수유 꽃이 활짝 피었고 진달래도 금방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과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경치가 참 좋다. 어느새 하산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가는 등산객 인사말이 무척 정겹다. 일면식이 없어도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 가벼운 인사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조선시대 학자 매월당 김시습의 법명을 딴 다리인 설잠(雪岑)교가 계곡을 가로지른다. 김시습은 수양대군이 왕위를 오르자 세상과 등진 인물이다. 그는 30세 초반에 수년 동안 용장골에 은거했다.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도 이곳에서 썼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시(제목-용장사)로 용장골을 표현하기도 했다.

용장골 깊어 오가는 사람 없네
보슬비에 신우대는 여울가에 움돋고
비낀 바람은 들매화 희롱하는데
작은 창가에 사슴 함께 잠들었네
의자에 먼지가 재처럼 깔렸는데
깰 줄 모르네 억새 처마 밑에서
들꽃은 떨어지고 또 피는데


설잠교를 건너면 곧바로 가파른 산길이 시작된다. 가파른 길을 쉬엄쉬엄 오르면 산허리를 휘감은 대나무 군락을 만난다. 대나무 숲길이 끝나는 곳에 용장사 터가 나타난다.

대나무숲  오솔길을 지나면 바로 용장사터가 나온다. 터널처럼 생긴 대숲이 금강문(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는 셈이다
대나무숲 오솔길을 지나면 바로 용장사터가 나온다. 터널처럼 생긴 대숲이 금강문(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는 셈이다 ⓒ 추연만

삼층석탑에서 내려다 본 용장사터. 이 절 터 바로 산위에는 삼층석탑이 있고  동쪽 방향에는 석불좌상이 있다.
삼층석탑에서 내려다 본 용장사터. 이 절 터 바로 산위에는 삼층석탑이 있고 동쪽 방향에는 석불좌상이 있다. ⓒ 추연만
터널처럼 생긴 대숲이 금강문(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대나무 숲은 남산의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봉화골 칠불암과 부처골 감실부처 그리고 약사골 대불입상을 오르는 길에도 멋있는 대숲이 있다.

대나무가 우거진 절터에는 돌로 쌓은 축대가 아직도 남아있고 기와 파편도 여기저기 보인다. 절터로 보아 용장사의 규모가 제법 컸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폐사지에서 용장사 삼층석탑을 올려다보니, 묘한 신비와 더불어 의문점이 든다.

금당(법당)보다 한참 높은 곳에 저 탑을 세운 이유는 무엇인가? '저 탑도 용장사의 일부분'이란 판단을 내리자, 절의 규모는 가히 '크다'는 말 대신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산 정상에 이처럼 큰 절을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용장사터 석불좌상. "스님이 염불을 하며 불상 주위를 돌면 불상도 따라 얼굴을 돌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용장사터 석불좌상. "스님이 염불을 하며 불상 주위를 돌면 불상도 따라 얼굴을 돌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 추연만
삼층석탑 오르는 산허리에 또 한번 감탄을 자아내는 유적인 용장사터 '석불좌상'과 '마애불'이 있다. 석불좌상은 둥근형태의 3층 대좌 위에 앉은 특이한 형식의 불상이다. 비록 불두는 없으나 전체적으로 당당한 자세가 엿보이며 전체적인 보존상태가 좋고 섬세한 조각수법도 돋보인다.

자연암석을 기단으로 삼았으며 둥근형태의 대좌가 특이하다. 그래서인가? 안내판에는 "스님이 염불을 하며 불상 주위를 돌면 불상도 따라 얼굴을 돌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불상은 용장사터로 향하고 있으며 이 불상도 용장사의 일부분이란 추측을 할 수 있다.

석불좌상과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암벽에 돋을새김으로 조각한 부처상(용장사터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아담하고 단정한 모습을 띠고 있으면서도 무척 세련된 조각기법을 엿볼 수 있다. 꼭 다문 입술이 참 인상적이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마애불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며 전체적인 인상은 깔끔한 편이다.

용장사지 3층석탑. 높이는 4.5m밖에 되지 않지만 남산에서 가장 장엄한 탑이다. 신라시대 대표적인 석탑 양식인 2중 기단 형식을 갖췄으나 상층기단만 있고 하층기단은 없다. 자연암석위에 바로 상층기단을 세웠다.
용장사지 3층석탑. 높이는 4.5m밖에 되지 않지만 남산에서 가장 장엄한 탑이다. 신라시대 대표적인 석탑 양식인 2중 기단 형식을 갖췄으나 상층기단만 있고 하층기단은 없다. 자연암석위에 바로 상층기단을 세웠다. ⓒ 추연만
용장골 정상에 서면 경주남산 최고봉인 고위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고 용장골 아래 내남 들판도 훤히 보인다. 이곳에 세운 용장사터 삼층석탑은 비록 높이는 4.5m밖에 되지 않지만 남산에서 가장 장엄한 탑이다. 석가탑과 같이 2중 기단 형식을 갖췄으나 상층기단만 있고 하층기단은 없다. 자연바위 위에 바로 상층기단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탑은 산 전체가 하층기단인 셈이기에 "세상에서 제일 큰 탑"이란 재미있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남산을 기단으로 삼은 이 탑을 보면 왠지 경외감이 든다. 이처럼 웅장한 탑을 세운 뜻은 '부처의 극락세계'를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여튼 자연에 인공미를 가미한 신라인의 예술작품에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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