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에 내리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한·일전을 중계하는 대형 텔레비전과 그 앞에 모인 군중들이었다. 그 옆을 지나면서 전시회에도 이 정도 사람이 모여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전시회가 열린 용산역 광장은 한산했다. 부러 전시회를 찾은 사람은 별로 없고, 대신 지나가던 관광객과 이주노동자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우리 땅 285만평을 '최소 100년은 끄떡없는 미군기지'로 만들기 위해 미국에 내 줘야 할 판인데,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무심할 수 있나 싶은 생각에 씁쓸함이 밀려 왔다.
조형물과 사진, 그리고 간단한 설명을 통해 평택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알게 된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질문을 했다.
"저긴 우리 땅인데 왜 미국에게 줘야 하죠?"
"저기서 농사짓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디로 가서 사나요?"
"경찰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때리면 어떡해요?"
"미군에게 나가라고 하면 안 되나요?"
난 제대로 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 사회가 문제다.
이라크 전쟁 3주년, 모든 방송 카메라는 어디에
아이들은 2년 가까이 이어지는 대추리의 비닐하우스 촛불시위에 참석하기도 하고, 평화를 위한 연대를 다짐하며 인형들과 손을 맞잡기도 했다. 아이들이 커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의 아픔과 연대하는 마음을 갖도록 도울 생각이다.
서울역으로 이동했다. 서울역사에서도 야구를 관람하는 군중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방송 3사의 카메라가 모두 출동해서 중계방송을 시청하는 군중들의 눈을 화면에 담고 있었다. 그 시각 서울역 광장에서는 3·19 국제공동반전행동의 날을 맞아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집회를 열고 있었다. 야구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집회 현장에서 방송 카메라를 만날 수 없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지 벌써 3년. 이라크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으며, 감옥에선 이라크 민중들이 짐승 취급을 당하고 있다. 거기에 우리 군인들이 "평화 재건"을 이유로 함께 하고 있다. 난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6대 0으로 이겼다는 소식보다 이라크에 가 있는 우리 군인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이 더 듣고 싶다.
반전집회는 두 시간 넘게 진행되었고, 아이들은 연설을 듣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유인물을 읽으며 광장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라크에도, 이란에도 우리 아이들과 똑 같이 생긴 아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미사일은, 대포는, 총알은 어른과 아이를 구분할 줄 모른다.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언제나 아이들이다.
"바그다드와 대추리는 다르지 않아요~"
집회 도중 많은 사람들이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김지태 팽성 미군부대 확장반대 대책위원장의 이야기였다. 그는 미군기지가 들어설 평택 대추리의 이장이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거친 손은 영락없는 농부의 그것이었지만 그는 이미 투사가 되어 있었다. 이제껏 살아 온 땅에서 앞으로도 계속 농사지으며 살겠다는 그의 소박한 소망이 그를 투사로 만들었다.
"바그다드와 대추리는 다르지 않아요~"
누군가가 하얀 백지에 써 놓은 이 짧은 외침이 내 가슴을 울린다.
그렇다. 바그다드와 대추리는 다르지 않다. 미국은 점령군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그곳의 민중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다. 무엇보다도 두 곳 모두 자유나 평화 등의 거창한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미국의 이익을 위해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집회는 끝났다.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바그다드에서도, 대추리에서도 미국이 벌이고 있는 전쟁은 아직 그대로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다. 일본에게 야구를 졌기 때문일 게다. 나 역시 표정이 밝지 못하다. 전쟁의 공포가 나를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집회 도중 나름대로 심각했던 아이들만 원래의 표정을 되찾고 웃는다.
아이들과 함께 한 서울나들이를 마치고, 한 가지 다짐을 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전쟁의 공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