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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률 국세청 조사국장.
ⓒ 국세청
"그렇다면 그동안 국세청은 무얼했습니까?"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세청 기자실. 한상률 조사국장의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지난 3개월 동안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한 후, 한 기자에게 질문을 받은 직후였다. 그는 곧 "깊히 반성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세청은 이날 세금 탈루 혐의가 큰 고소득 자영업자 422명에 대한 1차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이 그동안 내지 않은 세금규모가 3016억원에 달한다는 것과 함께 국세청이 이들에게서 1094억원의 세금을 거뒀다는 것이다.

고소득 자영업자에는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직도 포함돼 있다. 또 스포츠센터나 대형사우나 등 대형 빌딩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들도 들어있다.

이번 조사로 그동안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번 만큼 세금은 내지 않는다'는 일반 국민들의 의심은 사실로 확인됐다.

또 이들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내지 않는 동안 정부는 무얼했느냐는 비판에 대해서도 국세청은 할 말이 없게 됐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국세청은 뒤늦게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이어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전반적인 소득 파악과 탈세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1차 422명에 이어, 20일부터 세금 탈루가 가장 심한 기업가형 자영업자 319명에 대해 2차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또 오는 6월부터는 의사와 변호사 등에 대한 3차 세무조사가 진행된다. 한마디로 고소득 자영업자와 탈세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고소득 자영업자, 소득의 56.9% 신고도 하지않아

▲ 서울 한 웨딩홀은 현금으로만 사용료를 받아 20억원 이상의 매출을 신고하지 않는 방법으로 소득을 탈루했다. 박아무개(62) 사장은 5년동안 재산이 68억원 늘었다.
ⓒ 오마이뉴스 한은희
국세청이 20일 밝힌 1차 세무조사 결과를 보면,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세금에 대한 도덕적 해이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422명이 지난 2년동안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은 소득이 3016억원에 달한다. 한 집당 1년에 6억3000만원을 벌어서, 이 가운데 2억7000만원만 신고했다. 나머지 3억6000만원은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들이 벌어들인 소득의 56.9%를 누락시킨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이른바 기업가형 자영업자들의 소득 탈루가 두드러졌다. 기업가형 자영업자들이란 현금거래를 유도하면서 수십~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린 대형 사업장이다. 주로 웨딩홀이나 스포츠센터, 대형 사우나, 골프연습장, 종합병원 등이다.

이들은 대개 1년에 8억1000만원을 벌어서 2억1000만원만 소득으로 신고했다. 나머지 6억원 소득은 신고하지도 않았다. 벌어들인 소득의 74%를 탈루한 것이다.

이밖에 사회적 지도층인 변호사, 의사, 회계사, 세무사 등은 번 소득의 42.8%를 신고하지 않았다. 또 유흥업소와 집단상가 등 기타 업종의 경우 소득탈루율이 54%였다.

고소득 자영업자들 세금 탈루 = 부의 양극화 심화

국세청이 이들 자영업자에 대한 소득 탈루와 대대적인 세무조사 계획을 밝힌 것은 무엇보다 사회전반에 걸친 소득과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국세청이 그동안 조사한 422명의 고소득 자영업자의 경우 소득을 탈루한 경우에 재산증가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422명의 경우 지난 95년에 가지고 있던 총재산이 5681억원이었지만, 작년말에는 1조5897억원으로 늘어났다. 10년동안 1조216억원이 증가한 것이다.

한 집당 평균 보유 재산도 24억2000만원 늘었고, 특히 기업가형 자영업자들은 44억5000만원이나 증가했다. 변호사나 의사 등 전문직도 평균 12억4000만원의 재산 증가를 보였다.

한상률 국세청 조사국장은 "소득 탈루는 납세 형평성 문제 뿐 아니라 탈루 소득이 재산 증식의 자금으로 사용된다"면서 "이는 재산가치 상승으로 이어지고,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킬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포츠센터, 골프연습장, 사우나 등 대대적 세무조사...6월부턴 변호사, 의사

기업가형 자영업자 319명의 업종 분포

 

업종 유형

인원

대재산가가 주로 운영하면서도 수입금액 탈루가 많은 스포츠세넡, 골프 연습장

38명

호화결혼식의 확산 등으로 호황이면서도 현금거래를 유도하여 수입금액을 탈루하는 웨딩 관련업

36명

웰빙 관련 열풍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스파·사우나

29명

부동산매매·임대·신축판매 등 부동산 관련 업종

85명

호화시설에 고가음식을 판매하는 유명한 대형 고급음식점

84명

시설투자에 의한 부당환급 등 탈세가 많은 대형 숙박업

28명

스타강사에 의해 호황을 누리는 대규모 고시전문학원(강사)

6명(11명)

대규모 외국인고용 유흥업소 및 송출업체

13명

 

국세청은 20일부터 세금탈루가 심한 기업가형 자영업자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들어간다. 대상은 스포츠센터와 골프연습장, 웨딩홀, 고급음식점과 대형 숙박업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 스타 강사에 호황을 누리는 대형 고시전문 학원과 외국인을 고용하는 유흥업소도 세무조사를 받는다.

김은호 국세청 조사2과장은 "이번에 조사하는 기업가형 자영업자는 모두 319명"이라며 "올 1월부터 현재까지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법인세 등 전반에 걸친 세무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 이외에 올 6월부터는 의사와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자영업자에 대한 세무조사도 들어갈 예정이다. 김 과장은 "이번 표본 세무조사결과 일부 병과의 의사와 변호사들의 세금탈루도 상당한 수준"이라며 "이들에 대해선 올해 5월 종합소득세 신고 내용을 보고, 신고가 미비한 직종과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를 벌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권리만 누리고 의무를 회피하는 세금탈루 고소득자에 대해선 세금 추징과 단호한 처벌이 필요하다"면서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을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부동산 투기에 이어 올해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와 전쟁을 선포한 국세청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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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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