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공부는 언제 해요?"
"선생님, 선생님 드리려고 제가 만든 사랑표예요."
"선생님, 쉬 마려워요."
"선생님, 밥은 언제 먹어요?"
"선생님, 과자 먹어도 돼요?"
"선생님, 연필이 없어요."
"선생님, 지우개가 없어요."
오늘 하루도 이렇게 종알대는 아이들이 내 곁에서 옹알이다 못해 미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악을 쓰는 아이들과 사느라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까지 화장실조차 가지 못했습니다. 잠시만 눈을 돌리면 장난을 걸어 서로 시비가 붙어 주먹질이 오가는 꼬맹이들이니 다치지 않도록 눈을 떼지 못합니다.
공부가 끝나도 언니가 하교하는 시간을 기다리다 못해 엉엉 우는 아이, 학교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아이, 네 물건 내 물건 개념조차 없어 한 사람이 꼭 붙어야 하는 특수교육 대상 어린이까지 데리고 있는 오후 시간까지 보내고 나면 종아리가 부어버리는 하루랍니다. 그래도 오늘은 크게 싸운 아이가 없어서 참 다행입니다. 모처럼 19명의 아이가 점심을 다 먹도록 마지막까지 엄마 노릇을 마치고 모두에게 상으로 스티커 별점을 올려주며 흐뭇했습니다.
이렇게 하나 둘씩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우리들은 1학년' 악동들이 벌써 내 마음에 들어앉기 시작한 요즈음. 까만 눈 반짝이며 코앞까지 와서 종알대는 귀여운 참새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 부스러기들을 하나씩 기록하는 시간이 즐겁답니다. 종이에도 손을 베어 아프다는 고은이는 늘 다쳐서 걱정이고, 아침밥을 안 먹고 오는 유림이는 공부 시간에 배가 아프다고(배가 고프다는 표현) 울먹여서 힘들지요.
너무 착실해서 선생님이 말하는 모든 것이 법인 해솔이는 반듯한 모습이 자로 잰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유치원생 티를 벗지 못한 민혁이와 영찬이는 날마다 군것질에 장난감 가지고 놀기, 밖에만 나가면 늘 늦게 들어와서 찾아내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도 복도에서는 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 음식을 골고루 다 먹으려고 매운 김치도 다 먹는 승현이가 오늘은 친구들에게 주먹질을 참아서 예뻤답니다.
어찌 보면 교육이란 길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이들의 얼굴 모습이 다 다른 것처럼 그들이 가진 재주와 능력, 개성도 19개일 텐데 전체라는 틀 속에 집어넣고 함께 하기를 가르치며 질서와 협동, 인내와 적응을 배워 주어야 하는 나의 자리가 힘겹습니다. 속도가 빨라 지루해 하는 아이, 너무 늦어 따라오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한 교실에 모여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친구들을 받아들여 주는 연습을 하며 세상살이에 눈을 떠가며 어울림의 아름다움을 찾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3월을 잘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글씨 하나를 깨우치는 것보다, 1학년 아이가 구구단을 외운다고 자랑하기보다 보통 아이보다 지능이 떨어진 친구 곁에서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마음씨 고운 아이가 되라고, 그 친구를 놀리는 것이 참 나쁜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바보, 멍청이'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 어른이 듣기에도 민망한 욕을 아무렇지 않게 해대는 아이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민감한 어버이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자라가는 모습, 배움의 키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기다려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일뿐이며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니 어른의 눈높이에서 내려다보지 말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어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겨울을 잘 이겨낸 화단의 수선화처럼 노란 색깔이 가장 잘 어울리는 1학년 아이들에게 칙칙하고 무거운 요구사항을 아이들에게 들이대며 아직 손가락 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많이 많이 쓰라고, 숙제를 많이 내주라고 하지 않으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 1학년은 수선화 한 송이를 이길 만큼의 어깨를 지닌 여린 꽃송이랍니다. 1년 동안, 200일 동안 꾸준히 노력해야 겨우 예쁜 글씨를 쓸 수 있을 만큼 시간이 걸린답니다. 좌우를 판단하는 시신경이 아직도 덜 발달해서 글자의 좌우를 바꿔 쓰는 아이들이란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학부모님! 당신의 자녀는 이제 겨우 실눈을 뜬 작은 병아리이며 이제 겨우 꽃대를 올린 수선화 한 송이랍니다. 튼튼해질 동안 좀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제 막 꽃을 피운 수선화처럼 세상나들이 나선 1학년 아이를 둔 학부모님께 고언을 드립니다. 19송이 수선화를 잘 기르겠습니다.<한교닷컴> <에세이>에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