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글자 한글을 기리는 한글날이 15년 동안 일반 기념일에서 헤매다가 드디어 지난해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경일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 의안번호 173572)'이 통과되어 올해부터는 한글날을 국경일로 잔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어떻게 잔치를 치를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다. 국경일 승격을 이루어내고도 이를 제대로 축하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 한글날 국경일 승격을 추진한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를 올바로 해내기 위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으는 공청회가 20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국어단체연합 주최, 문화관광부 후원으로 있었다.
공청회는 늦은 2시 30분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이봉원 회장의 개식 선언으로 시작되었다. 이어서 연단에 오른 국어단체연합 최기호 회장은 "이제 우리는 한글날을 단순히 기념하기 위한 국경일을 뛰어넘어 '온누리 한글 큰 잔치'로 승화시켜야 한다. 한글의 기계화 정보화를 이끌고, 한글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최기호 회장에 이어 문화관광부 국어민족문화과 이형호 과장은 "'세종로에 세종임금이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풀 것인가를 고민하고, 가장 민족적인 잔치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리고 한글잔치는 언어를 주제로 한 세계의 가장 큰 잔치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본격적인 공청회의 시작으로 남영신 국어문화운동 회장이 '한글날 경축 '온누리 큰잔치' 기획안'을 발표했다. 그는 잔치의 특징은 창조적 잔치, 보편적 잔치, 문화잔치, 기술잔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해마다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잔치를 추진해야 한다며, 올해엔 '한글은 빛'이란 주제를 제안했다.
이어서 잔치의 종류로 한글과 한국문화를 형상화하는 레이저빔쇼, 열린음악회 따위의 전야제, 그리고 식전행사와 대통령이 참석하는 정부의 기념식, 식후행사 따위의 공식행사, 북한 인사, 국외 한글학교 관계자, 한글 세계화 유공자 등을 초청하여 펼치는 식전 개막행사, 다양한 학술제, 각종 전시회와 한글체험, 겨루기, 공연 등의 마당잔치를 제안했다.
기획안 발표가 끝나고 각계 전문가들의 이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맨 먼저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은 "기획안이 보편적이기는 하지만 창조적, 진취적, 기술적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한글사랑에 대한 욕심이 큰 나머지 너무 방만한 기획안인 듯하다. 그리고 예산이 먼저 확정한 다음 일의 규모를 정해야 하는데 순서가 바뀌었다. 국민정서를 감안해 행사기간을 일주일이 아닌 10월 8일 하루 세종로를 비워 행사를 집중하면 좋겠다고"라고 주장했다.
또 메타기획컨설팅 이승훈 사장은 "큰 틀을 정한 다음, 예산을 확보한 뒤 기획사에 의뢰해서 추진하는 것이 순서인데 무리한 듯하다. 장기목표를 먼저 세우고, 세부적인 단기목표를 만들어나가는 게 순서이다. 국민에게, 세계에 '한글은 이런 것이다'라고 제시해야 하는데 이것이 선명하지 못하다. 이 기획안대로라면 대략 30억원이 들 것으로 보이는데 그 정도로 의미가 있는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국립국어원 최용기 학예연구관은 전체적인 흐름엔 공감하지만 세부적으로 산만하고 정리되지 못했다며 세부안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외국인에게 '한글'이 신비롭게 표현되도록 할 것 △문화의 잔치가 실용과 접목되도록 할 것 △기술보다는 정보와 과학적인 행사가 되도록 할 것 △'한글은 빛'이란 추상적인 구호보다는 '한글은 온누리의 빛'처럼 구체화시킬 것 △프랑스가 '프랑스어 사랑주간'을 둔 것처럼 우리도 '한글사랑주간'을 두어 명문화하도록 할 것 △전야제의 레이져쇼와 한국방송ㆍ국립국어원이 공동으로 하는 '우리말 겨루기' 따위를 방송사가 생중계하도록 할 것 등을 제안했다.
또 한국방송 국어상담소장인 지영서 아나운서는 "기획안을 본 방송인들은 주최자들만의 행사로 그칠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한글이 얼마나 우수하고 어떻게 변천해왔는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방송프로그램, 또 영어 공용어 등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할 수 있도록 하고, 유명가수가 출연하는 음악회 등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 외국인을 위한 행사 등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어서 조선대 서순복 교수는 "한글날 잔치를 국어단체가 독점할 것이 아니라 국민, 누리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국어운동가들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동아리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열어야 한다. 그리고 일반 시민을 끌어들이기 위한 잡색이 있어야 하며, 마음 설레게 하는 그리고 꿈을 꾸도록 하는 행사가 되어야 한다. 또 세종임금이 훈민정음을 만들 때 했던 고민들을 오늘에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를 고민하자"라고 말했다.
방청객 중에서 국어운동가 이수열 선생은 "정치인, 방송인, 연예인 등이 우리말에 영어를 섞어 쓰지 않도록 하는 행사도 들어있어야 한다"라고 했으며,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는 "남북이 함께하는 행사로 꾸며나가자"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기획안을 발표한 국어문화운동 남영신 회장은 "예산이 먼저라는 지적은 옳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것이 뒤바뀔 수밖에 없도록 되어있음을 이해해달라.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력해서 제대로 된 한글날 잔치를 만들어 나가도록 하겠다"라고 다짐한다.
이제 세계 최고의 글자를 기리는 한글날 큰잔치의 준비는 이미 시작됐다. 그것을 추진해나가는 것은 일부 소수의 몫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나서서 온누리 잔치로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참석자들은 모두 입을 모았다. 그래야만 세종임금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뜻이 제대로 구현될 것이라는 것이다.
| | "국어·문화계, 모두가 하나되는 잔치로" | | | [대담] 한글날 공청회 기획안 발표자 남영신 | | | |
| | | ▲ “한글날 경축 ‘온누리 큰잔치’ 기획안”을 발표하는 남영신 | | - 한글날 국경일 추진을 앞장서서 했던 사람으로 국경일 승격이 되었을 때의 감정은 어땠나?
"이젠 되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쉰 기억이 난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 문화 국가로 가는 길이 열렸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 시대에 우리 민족의 미래를 보장할 만한 큰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쁘기 짝이 없었다."
- 이제 끝이 아니라 시작인데 한글날 국경일을 어떻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나?
"한글은 우리 민족의 창조적, 보편적 정신이 최고조로 발휘된 결과물로 본다. 물론 세종이라는 탁월한 임금의 능력과 노력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뒤 한글은 모든 사람들의 글자로서 발전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따라서 한글을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 즐기면서 우리의 언어문화를 향상시키는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경축해야 한다. 특히 한글의 경제적 기능도 부각하는 방향으로 한글날을 기릴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 공청회를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공청회에 내놓을 시안을 마련하는데 가장 어려웠던 것은 세계적으로 글자를 기리고 축하하는 잔치를 한 나라도 없고, 그런 잔치가 있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것이 없었던 점이다. 보통의 잔치에서 한글과 우리말에 중심을 두는 잔치로 바꾸는 작업을 해 보았지만 그리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은 듯하다. 일반 국민이 한글날에 대한 관심이 작은 것도 시안을 작성하는 데 상당한 제약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 한글날 국경일 잔치를 어떻게 준비해 나갈 생각인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글자를 창조한 민족답게 참신한 문화 잔치, 언어 잔치를 세계인에게 선보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하여 범국민적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치밀하게 준비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 정부와 국민에게 할 말이 있다면?
"한글날을 민간이 주도해서 만들었고, 국경일이 되게 한 것도 민간이 주도하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국어계와 우리 문화계가 하나가 되어 온 국민이 참여하는 성대한 문화 잔치로 추진해 나갈 수 있으면 하며, 정부는 예산이나 행정 편의 등을 지원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 주었으면 좋겠다." / 김영조 | | | | |
덧붙이는 글 |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에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