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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이라는 꽃이 있다. 강남 갔던 제비가 올 때쯤 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일까? 봄볕 좋은 양지에 제비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올 들어 첫 꽃이다. 시골 마을 양지들에는 으레 제비꽃이 단골처럼 피어 있곤 했다.
'제비꽃에 대하여'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가 있다. 그는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고 했다.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제비꽃이 올 봄 고개 숙인 내 눈에도 들어왔다.
제비꽃은 아주 작다. 제비꽃은 보통 자주색인데 볕 좋은 양지에 많다. 고향 논길에도 흔하게 피곤 했다. 활짝 피기 전에 축 처진 고개를 한 모습이 토라진 계집아이 같기도 하고, 활짝 피면 잠깐 도도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작은 크기와 모양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봄이 오면 동네 개울가에 엎드려 돌 붕어를 잡곤 했는데 목이 아파 고개를 들면 제비꽃은 봄바람에 고개를 흔들며 나를 보곤 웃고 했다.
농촌에서 제비꽃이 피는 시기는 모판에 넣는 흙을 준비하는 시기다. 모판은 이앙기로 모를 심을 때 사용하는 틀을 말한다. 자동화나 기계화는 항상 규격화된 틀을 원하는데 모도 그 틀에 맞추어 키워야 이앙기로 모를 심을 수 있다. 그 모판을 채울 흙을 고르는 일은 보통 제비꽃이 피는 이 맘 때쯤 하곤 했다. 그 일은 제법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서 동네 분들 3~4농가가 함께 품앗이를 했었다.
학생이던 나도 그 일에 어엿한 품앗이꾼으로 동참했었다. 그러던 어느 해 한 번은 야산에서 좋은 황토를 골라 부대에 담아 경운기로 옮기는 일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날 하루 종일 흙을 고르던 일을 하면서 어른들에게 막걸리를 잔뜩 받아먹었다. 날이 기울기 시작하자 해는 붉은 노을을 서편에 남겼지만 막걸리도 내 얼굴에 붉은 기운을 남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운기를 타고 긴 뚝방을 따라 못자리 논으로 가려는데 경운기가 자꾸 뚝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음주 때문에 제대로 운전하지 못한 것이 탈이었다. 결국 경운기는 하천에 빠지고 나는 겨우 빠지기 직전에 경운기에서 탈출을 해서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다행히 하천에 물이 없어 경운기가 크게 고장나지는 않았지만 하천에서 경운기를 끌어내는 것이 큰일이었다. 그때 근처 논에서 트랙터로 논을 갈고 있던 이웃집 아저씨가 보였다. 그에게 경운기 빠진 것을 건져 달라고 부탁하러 가는 논둑길에 제비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그런 경황에도 자주색의 작은 꽃이 수줍게 핀 모습이 참 곱게 느껴졌는지 이 맘 때가 되면 제비꽃이 생각나곤 했다. 이미 20년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그 경운기는 아직도 시골집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고 봄이 오면 어김없이 제비꽃도 핀다.
제비꽃을 생각하면서 경운기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마도 나밖에 없겠지만 그 날 봤던 제비꽃을 다시 만나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가던 길가에 제비꽃을 기억하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래도 그런 추억이나마 가지고 있는 것이 어디인가?
봄이 왔고 제비도 왔고, 제비꽃도 피었다. 하지만 요즘 들판엔 시름이 가득하다. WTO와 한미 FTA, 이런 복잡한 영어로 된 말들이 들판에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면서 제비꽃 핀 들판은 점점 시들해져 가고 있다.
세계화의 거센 물결과 정부의 살농(死農)정책이 농민들의 허리를 꺾어 버린 탓이다. 제비꽃 못 봐도 좋으니 농민들이 허리 펴고 사는 세상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