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중의 장편동화 <들소의 꿈>(낮은산 간)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기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오랜 가뭄으로 마른 풀조차 구경하기 힘든 척박한 들판이지만 들소들은 자신의 땅에서 굶주림을 견디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중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본능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들소들의 들판에 어느 날부터인가 들소들의 '질주'가 사라졌다.
그 들판에 인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질주'하지 못하는 들소는 이미 들소가 아니듯 인간이 점령하기 시작한 들판은 더 이상 들소들의 들판이 아닌 것이다. 들소들의 들판은 미군의 군홧발에 유린당한 오늘날의 이라크를 상징한다. 들판을 점령한 인간은 곧 미국(본문에서는 '소맥국'이라 지칭된다)이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을 비롯한 인간의 폭력을 은유한다.
들소가 있다. 무리 중에서도 열등들소에 속하는 '깨진뿔'이다. 굶주림에 지친 깨진뿔은 먹을 것을 찾아 온 들판을 헤매인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임신한 아내 '고운눈'을 먹여야 한다. 그러나 계속된 건기에 풀뿌리조차 말라 죽은 사막에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인간들이 친 남쪽 울타리로 가면 인간이 주는 건초더미가 있는 것을 알지만 차마 그곳으로 갈 수는 없다. 들소의 자존심이다. 들판의 주인인 들소로서의 자긍심이다. 물론 대장로 '서리갈기'의 감시도 두렵다.
깨진뿔의 아내 고운눈 역시 열등들소다. 숱한 병치레로 제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힘들다. 그러기에 저 같은 들소를 사랑해주는 것이라 깨진뿔은 생각한다. 벌렁코, 눈곱쟁이, 처진눈, 잘린꼬리, 침줄줄이 등등 깨진뿔의 친구 모두 무리에서 소외되어 하루하루를 눈치나 보며 살아가는 열등들소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위해주며 힘든 삶을 살아내는 중이다.
깨진뿔에게는 그래도 꿈이 있다. 자신의 분신이 곧 태어나는 것이다. 그 아이가 태어나는 날, 깨진뿔은 아이에게 '큰머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다음과 같이 축원한다.
"빗방울이 모여 강물이 흐르듯/ 수만 년을 잇는 생명 중 하나/ 오늘 태어난 큰머리는/ 특별한 사랑을 받을 것이며/ 더 큰 사랑을 나눠 줄 것이며/ 용맹보다는 지혜로/ 배부른 오만보다는 배고픈 이해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리라/ 그리하여 이 험난한 때를 살아남아/ 훗날/ 모래알 같을 자손을 인도하는/ 장로가 되기를/ 아버지의 권리로 축복함이라"
그러나 아버지의 기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들판은, 세상은 이미 아니다. 들판의 황금(석유일 것이다)에 탐이 난 인간의 욕심과 자신의 헛된 야욕과 망상에 사로잡힌 지도자 '황금뿔'(후세인을 은유한다)의 무모한 도발은 들소들의 생존을 앗아가 버렸다. 황금뿔의 도발을 분쇄한다는 명분으로 들판을 점령한 인간의 폭력은 들판을 날틀(비행기)의 불쏘시개로 위협하면서 들소의 질주를 금한 것이다. 이제 땅의 주인은 달리는 본능까지 빼앗긴 신세가 되었다.
마을에 징이 울리고 모인 사람들 앞에서 군관은 두 명의 장정을 선발한다. 저 멀리 동맹국(소맥국)의 전쟁터에 나갈 사람인 것이다.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재건대의 일원으로 참가하는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고 매달 지급되는 백미 두 가마면 농사짓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이니 축복인 것이다. 순심이와 결혼할 꿈에 부푼 용신이 친구 순철을 대신하여 들소의 땅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소맥국이 벌인 전쟁에 이 땅의 젊은이가 참전하는 것이다.
들판에서 군막을 치고 울타리를 치던 용신에게 독사에 물린 송아지 한 마리가 발견된다. 농사를 짓다 참전한 용신에게 송아지는 들소이거나 고향의 누렁이거나 같은 대상으로 다가온다. 송아지를 치료해준 후로 용신과 송아지는 친구이자 부모 자식 같은 사이가 된다. 송아지는 큰머리다. 그렇게 남의 전쟁에 끌려간 젊은이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쟁터에 내동댕이쳐진 들소는 사랑과 우정을 나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놓여 진 운명은?
"장차 우리가 만든 울타리 안으로 들소들을 다 몰아넣을 거라네. 건초를 끊이지 않고 대 주면 들소들이 배 굶을 이유는 없을 테고, 그렇게 들을 비워서 황금을 캐내려는 소맥국의 계획이 있어."(97쪽)
"그래서 소맥국에서는 이 기회에 들소를 아예 근본부터 고쳐 놓으려고 한다는 거야. 황금뿔이란 놈이 옥에 있는데도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유가 그거야… 그러려면 말 안 듣는 들소들을 다 잡아 죽이거나 남은 놈들이 울타리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이놈들도 눈치가 있거든."(98쪽)
인간의 폭력 뒤에 숨겨진 욕망의 정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들소들의 땅인 들판에 인간이 진주하는 순간부터 인간의 탐욕과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들소의 본능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전쟁은 불가피하다. 때문에 들소들은 저항하지 않을 수 없다.
"죽지 않을 만큼은 먹을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의 삶은 이런 게 아니었어. 우리의 자유는 어디로 간 거지?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반골들소들의 자유와 군인들이 주겠다는 자유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황금뿔도 군인도 열등들소도 우등들소도 없는 자유, 그런 세상이 올까?"(86쪽)
깨진뿔의 자조 섞인 이 독백에서 기자는 최인훈 작 <광장>의 이명훈을 생각하였다. 하필이면 들소일까? 하는 물음에서는 이문열의 오래된 이야기 <들소>를 생각하였다. 가장 오래된 인류의 모습과 함께 등장하는 들소는 공동체 생활이 무너지고 사유재산의 욕망이 성립되고 권력이 형성됨으로 인하여 빚어지는 인류애의 실종과 그 맥이 닳아 있다. 생존을 위한 수렵에서 더 갖기 위한 전쟁의 태동을 상징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역사의 시원에서부터 인간의 탐욕은 전쟁이란 수단을 통해 늘 정당화 되었다. 저자는 그래서 묻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일으킨 전쟁은 당신 아이의 미래를 위한 건가요?" 그렇다면 "당신 아이를 위해 다른 아이의 부모를 해칠 수 있는 건가요?"
큰머리와 용신의 순결한 우정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서 애초부터 비극적 결말이 정해진 불행일 뿐이다. 저자는 인간의 폭력에 의해 무참히 깨어진 들소의 꿈을 통해 우리에게 따끔한 충고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슬픈 역사가 너무 많습니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미래에 또 일어날 일들입니다." -저자 서문
이 밤 들판을 무리지어 내닫는 들소의 질주를 꿈으로나마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덧붙이는 글 | * 들소의 꿈/ 김남중 글/ 오승민 그림/ 낮은산 간/ 8800원
* 보수논객 이문열의 <들소>(단편선 '칼레파타칼라'에 수록, 혹은 새로 편집되어 출간된 책)를 함께 읽으며 등장인물 '큰목소리'와 '뱀눈' 그리고 '이야기꾼'이 어떻게 권력을 형성하고 저항하며 또한 권력의 그늘로 숨어들어가는 지, 원시공동체 사회가 무엇 때문에 어떻게 무너지는 지를 비교하여 살펴보는 것도 유익한 독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