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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실수요 대책은 공급확대 뿐"(<국민일보> 3월 20일자 사설)
"가수요란 도깨비를 잡고 나도 뛰는 강남 집값"(<조선일보> 3월 20일자 사설)
"시장 무시 부동산 정책이 화근이다"(<문화일보> 3월 20일자 칼럼)
정부가 지난 17일 강남, 서초, 송파, 강동 4구에 2010년까지 매년 3만 호씩 약 15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후 보수언론에서 쏟아 낸 사설과 칼럼들의 제목이다.
8·31대책 발표 이전부터 공급을 늘려 강남 집값을 잡아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온 보수언론으로서는 정부의 발표에 의기양양할 만도 한 상황이다. 벌써부터 보수언론은 참여정부가 야심 차게 입안한 8·31대책이 실패했음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한편 8·31대책의 온존한 입법에도 강남 등에 소재한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을 접한 정부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제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정부가 강남에 대규모 주택공급을 천명하는 걸 보면 정부도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하긴 정권의 명운을 걸다시피 해서 만든 부동산 정책이 이렇다할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현금의 상황에 정부가 혼비백산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투기적 가수요 억제책으로는 너무나 미흡한 8·31대책
그렇다면 참여정부가 온 힘을 기울여 마련한 8·31대책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에도 강남, 목동, 분당, 용인 등에 소재한 아파트 가격이 도무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칭 '시장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공급이 부족해서인가?
참여정부가 여느 정권과는 다르게 공급확대보다는 투기적 가수요 억제에 부동산 정책의 방점을 찍어왔고 8·31대책이 그 결정판이라고 할 때 현금의 상황은 '공급 부족이 아파트 가격 상승의 원인'이라는 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에 족하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8·31대책 등을 통해 투기적 가수요를 거의 완전하게 제거했음에도 강남 등의 아파트 가격이 계속 상승하는 이유는 바로 공급이 실수요를 따라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주류 경제학자들과 보수언론의 주장이 진정 참일까?
주류경제학자들과 보수언론의 주장이 얼마나 현실적합성이 있는지를 검토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참여정부가 내놓은 8·31대책이 얼마만큼 투기적 가수요 억제에 효과적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세인들의 유례없는 관심 속에 발표된 8·31대책은 '부동산종합대책'이라는 명칭에 값할 만큼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8·31 대책은 크게 주택부문, 토지부문, 세제부문으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다.
주택부문에는 실거래가 신고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거래투명성, 미니신도시 건설 및 강북 광역 개발 등을 수단으로 하는 주택공급확대, 공공택지 지역 내에서 분양되는 아파트들에 대한 원가연동제와 채권입찰제, 전매제한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공부문 역할 확대 등이 포함되어 있다.
토지부문에는 취득요건 강화, 전매요건 강화, 기반시설부담금과 개발부담금 부과를 내용으로 하는 개발이익 환수 등의 조치가 담겨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세제부문에서는 보유단계에서 종부세 과세대상과 실효세율을 현실화했고, 양도단계에서 1가구 2주택 보유자들에 대한 양도세율을 상향했으며 투기 우려 지역 내 비사업용토지에 대해서 양도세를 중과하고 있다.
참고로 금융부문에서는 투기지역 내에서 가구별 아파트담보대출을 제한함으로써 투기적 가수요가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쌈짓돈으로 삼는 일을 차단하려고 고심한 점이 눈에 띈다.
눈 밝은 독자라면 금방 알아챘겠지만, 기실 8·31대책은 보유세 및 양도세 강화로 대표되는 투기적 가수요 억제책과 송파신도시 건설로 상징되는 공급확대책의 절충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8·31대책이 담고 있는 투기적 가수요 억제책은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나? 주지하다시피 8·31대책에 포함된 투기적 가수요 억제책은 주로 세제 개혁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세제 개혁안 중 먼저 보유세 부문은 과세 기준의 인하(주택의 경우 공시가격 9억원 → 6억원, 토지의 경우 공시지가 6억원 → 3억원), 과표 적용율의 인상, 세대별 합산 과세, 세부담 상한 조정 등의 방법을 통해 2009년까지 종합부동산세 대상자에 대해 보유세 평균 실효세율을 1%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 대신 거래세는 개인 간 주택거래에 한해 세율을 1% 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또한 양도세 부문에서는 실거래가 기준으로 전환하고, 1세대 2주택에 대해서는 50%의 세율을 적용하여 과세를 강화하는 동시에 동결효과를 유발하는 장기보유 특별공제 적용을 배제하기로 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8·31대책 가운데 세제개혁 부문은 매우 촘촘하게 짜인 투기적 가수요 억제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8·31대책의 세제개혁 부문은 다음과 같은 치명적 약점을 내장하고 있다.
첫째, 투기적 가수요 억제의 특효약이라 할 보유세 중과 대상이 극소수로 제한되었다. 8·31대책 발표 당시 정부 발표에 따르면, 종부세 과세 대상은 2006년 27만8000세대로 늘어나는데, 이는 전체 970만 세대의 2.8%밖에 안 되며, 이 가운데는 중복 계산된 세대도 많아 실제 종부세 과세 대상은 전체의 2% 안팎에 불과할 것이라고 하였다.
비록 최근의 아파트 가격 급등으로 말미암아 종부세 과세대상이 40만 명 가까이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전체 세대 가운데 한 줌도 되지 않는 세대만이 보유세 중과 대상이라는 것은 8·31대책이 투기적 가수요 억제책으로는 많이 미흡함을 증명한다.
둘째,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이 아닌 경우 보유세 증가 속도가 너무 느리다. 5·4대책에서는 이들에 대해 2017년까지 실효세율 1%를 달성하겠다는 취지의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8·31대책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그 결과 목동, 분당, 용인 등 강남 외에 위치한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서민들의 세 부담이 증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부동산 보유자는 마땅히 보유세를 사회에 납부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칙을 허물고 만 것이다.
셋째, 양도소득세 중과 대상자가 크게 축소되고 중과세 시 적용세율이 60%에서 50%로 완화되었다.
이렇듯 미흡하기 그지없는 투기적 가수요 억제책에다 대규모 공급확대책이 결합하면서 애초부터 8·31대책은 투기적 가수요 제거 및 실수요자 위주의 부동산 시장 재편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투기적 가수요 억제책으로는 함량미달인 8·31대책의 불철저성 및 강남 재건축에 대한 여전한 기대감, 판교 분양, 선거를 앞둔 지자체들의 선심성 재산세 인하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최근의 국지적 가격상승으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본디 부동산 투기라는 것이 한 번 불붙기 시작하면 걷잡기 어려운 법이니 만큼 초동진화가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정부는 10·29대책의 후퇴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안타까운 일은 정부가 8·31대책마저도 투기적 가수요 억제에는 미흡하게 마련함에 따라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를 자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투기적 가수요가 강남을 지배하고 있어
위에서 조목조목 따져본 바와 같이 현금의 국지적 부동산 가격 상승은 공급이 실수요를 못 따랐기 때문이 아니라 부실한 8·31대책이 투기적 가수요 억제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수요자가 강남에 차고 넘친다는 공급확대론자들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드는 증거들은 얼마든지 있다.
여러 번 되풀이해서 식상한 감이 없지않지만 다시 한 번 복기해 보자!
첫째, 이른바 '강남벨트'에는 주택 소유 편중 현상이 극심하다. 지난 2003년 11월 24일 행자부가 발표한 '전국 가구별 주택소유 현황'을 보면 강남(강남, 서초, 송파구)은 5만5000여 가구가 20만여 채(평균 3.67채)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4만2000여 가구가 전국에 집을 세 채 이상(평균 5.1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8000여 가구는 아파트만 3채 이상(평균 3.8채)을 소유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통계는 2000년 이후 서울 강남 지역의 아파트 취득자의 60% 가량이 3주택 이상의 다주택 보유자라는 사실이다. 즉 다주택 보유자들이 투기를 목적으로 가격상승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강남권역에 소재한 아파트들을 집중적으로 매수한 것이다.
이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강남 지역의 평균 아파트가격은 2000년 1월 3억7700만 원이었지만 작년 6월에는 10억6500만 원으로 무려 2.82배나 상승한 것으로 드러났다.
둘째, 이른바 '강남벨트' 등에는 대출 등을 통한 투기적 가수요가 창궐하고 있다. 작년에 한국은행이 열린우리당 오제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강남권과 경기도 분당, 용인 지역의 작년 주택담보 대출은 재작년 말과 비교할 때 7.9%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다른 지역의 증가율보다 무려 세 배에 가깝다.
또한 작년에 강남, 분당, 용인의 주택 담보대출증가액이 전국 증가분의 43%를 차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기할 만한 것은 같은 기간 전국 평균 집값 상승률이 1.6%였는데 비해 이 지역 집값은 8.4%나 올랐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서 근래 집값 급등을 경험한 바 있는 강남, 분당, 용인 등에 집을 소유한 많은 사람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장래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강남, 분당, 용인 등지의 타인 소유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매수한 결과 이 지역에 소재한 아파트 가격이 전국 최고 수준의 상승률을 기록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강남벨트'에 대출 등을 통한 투기적 가수요가 창궐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만한 통계는 또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주택구입용 가계대출비중추이'를 보면 강남, 서초, 송파구 등 강남권은 2001년 1월부터 1년 3개월간 가계대출 중 주택구입비중이 19.1%에서 48.2%로 1.5배 이상 뛰었고, 서울은 26%에서 53.1%로 100% 늘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은 각각 65%, 49% 늘었다.
특기할 점은 2000년 대비 2003년 집값이 강남-서울-수도권-지방 순으로 많이 상승하여 가계대출 중 주택구입의 비중이 높은 순서와 정확히 일치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강남권역에 실수요가 아닌 투기적 가수요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셋째, 전세 가격의 안정이 두드러진다. <중앙일보> '조인스랜드'와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2001년 51.4%에서 작년 6월 현재 31.7%로 떨어졌으며 분당은 34.4%, 용인도 32.6%에 불과하다고 한다.
강남구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전국 최저 수준에 해당할 만큼 낮다는 것은 투기적 가수요에 의해서 주택을 여러 채 사놓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라 할 것이다. 특정 지역이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으려면, 인구 유입의 급증으로 인해 전세수요가 갑자기 늘어나거나 주택 소유자들이 대부분 1가구 1주택을 소유해서 전세를 줄 만한 여분의 주택이 적어야 한다. 강남권역은 둘 중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자, 어떤가? 강남벨트에 존재하는 수요의 대다수가 '실수요'가 아니라 기실은 '투기적 가수요'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극히 정당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게다가 '강남벨트'에는 주택 수요를 촉발시킬 만한 인구 증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 강남, 서초, 송파구의 인구 추이를 보면 90년대 후반부터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주택보급률은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위에서 살핀 것과 같이 현금의 국지적 가격 상승의 원인은 자명하다. 비유컨대 불로소득을 좇는 투기적 가수요가 주범이고, 이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가 종범이다.
사정이 이와 같은데도 불구하고 주류경제학자들과 보수언론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뛴다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할까!
덧붙이는 글 | 이태경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 다음블로그에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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