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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앞뜰처럼 잘 정돈된 약수터.
마치 앞뜰처럼 잘 정돈된 약수터. ⓒ 정명현
남양주시에는 수도권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산이 곳곳에 있다. 천마산, 예봉산, 운길산, 축령산 등등. 이 산들은 높고 낮은 산세로 남양주시의 상징과도 같은 한강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수도권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이처럼 인기를 얻고 있는 남양주시의 산 중에, 예봉산이나 천마산, 하남시 검단산 등의 유명세에 밀려, 산을 자주 오르내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 있다. '갑산'이다. 산 정상에서 중턱에 이르는 산 곡선이 마치 아름다운 자태의 여성이 바로 누워 있는 형상을 띠고 있다 하여 하여 미인산(美人山)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갑산은 높지도, 산세가 수려하지도, 희귀동식물이 살고 있어 귀해 보이지도 않는 그저 단순히 건강을 생각해서나 또는 하루 무료한 일과를 보내기에 적당한 산에 불과해 보이는 산이다.

그렇지만 갑산에 가면 아주 특별한 곳이 있고 아름다움 마음씨를 가진 분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갑산을 자주 찾는다. 바로 김광섭(68세.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1리) 할아버지의 손길이 산 곳곳에 묻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김 할아버지는 갑산의 아버지요, 갑산을 아름답게 바꾸는 마술사라고 해도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갑산은 매일 매일 김 할아버지에 의해 돌보아지고 다듬어지면서 새롭게 태어난다.

뜰 정원을 다듬고 있는 김 할아버지.
뜰 정원을 다듬고 있는 김 할아버지. ⓒ 정명현
김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갑산에 올라 등산로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거나 길에 나뒹굴어 등산객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는 돌 등을 주어 길 옆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뿐만 아니라 등산객들이 좀 더 편하게 산에 오르내릴 수 있도록 손수 돌과 나무토막을 주워, 보기에도 예쁜 등산로 계단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특히 김 할아버지가 등산객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환한 웃음을 선사받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약수터 때문이다.

이 약수터도 김 할아버지가 돌, 바위, 나무토막을 하나하나 주워 다듬어서 만들어 놓은 작은 쉼터이자 목마름의 안식처다. 약수터에는 산 속 땅에서 흘러내리는 약수를 직접 받아 마실 수 있도록 컵이 준비돼 있고, 주변에는 산행인들이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나무와 돌로 의자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또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들의 건강을 고려해 운동기구를 설치해 놓았을 뿐 아니라 겨울산의 삭막함을 달래기 위해 조화(造花)를 심어놓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얼핏 사람들은 매일 새벽산에 올라 갑산을 돌보고 있는 김 할아버지를 시간이 많거나 하루하루가 너무 무료해 시간이나 보내기 위해 그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김 할아버지의 올해 나이 예순 여덟. 보통 사람 같으면 "그 나이에 왜 힘들 게 산에 올라 고생하는 줄 모르겠다"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김 할어버지는 예순여덟이라는 나이에 믿기지 않게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하기 힘들어하는 덕소 모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김 할아버지의 선행이 산행인들과 동네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알려지면서,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마을은 김 할아버지에게 금 5돈을 감사의 선물로 전했으며, 관내 읍사무소로부터는 감사의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잘 정돈된 등산로
잘 정돈된 등산로 ⓒ 정명현
김 할아버지가 갑산을 가꾸게 된 계기를 들어본다.

- 연세를 생각하면 한 가지 일 하기도 힘들텐데 매일 아침 산에 오르내리고 게다가 경비원으로 일하기가 힘들지 않으신지.
"왜 힘이 안들어요 힘이야 들지. 하지만 매일 아침 산에 오르내리면 건강에도 좋고 직장일 하는데도 피로감보다는 오히려 활력도 생기고 좋아요."

- 연세가 많으셔서 남들 같으면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텐데. 왜 할아버지는 산길을 다듬고 약수터를 만들고 하시는지.
"왜 하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 꼭 무슨 이유가 있어야 하나. 이유를 달고 하면 금방 싫증나고 힘들어서 못하지"

- 갑산을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으신지.
"있기는 있지요. 지난 95년에 아내(함길례. 68)가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그후로도 4번의 수술을 받았어요. 그런데 주위 분들이 좋은 물을 마셔야 된다고 해서 매일 아침 약수를 뜨기 위해 이 갑산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오랜 동안 오르내리면서 주변에 있는 돌을 하나하나 주워 돌계단을 만들다 보니 이렇게 됐지요. 그 덕분인지 아내 건강도 좀 좋아졌고."

더 이상 또 다른 질문을 던지는 게 어리석게 느껴질 정도로 김 할아버지는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있었다.

김 할아버지는 취재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흘리듯 한 마디를 남겼다.

"말기 선고를 받고 10년이 넘게 내 옆에서 묵묵히 건강하고 맑은 웃음으로 버티고 있는 아내에게 고맙지요."

산을 내려오는 기자의 발길은 가벼웠다. 그리고 미인산이란 별칭에 어울리게 갑산은 유난히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인터넷신문 http://남양주타임즈에도 실려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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