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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퇴근하자마자 아내를 보챘다. 배가 고프니 부침개라도 부치라고 했다. 김장김치를 듬뿍 넣으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아내가 점심도 안 먹었냐며 눈을 흘긴다. 하지만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다. 오히려 반기는 듯하다. 살짝 웃는 게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아내를 보며 엄살을 떨었다.
“재판을 하루 종일 해서 그런지 오늘 따라 허기가 지는구려.”
“고생하셨어요. 그런데 마산등기소에서 근무할 때하고는 어때요?”
“무엇보다도 출퇴근하는 시간이 절약되어 좋습니다. 3시간이 절약되니 적은 시간이 아니지요. 지금 근무하고 있는 재판부도 좋소. 판사님, 실무관님, 법정경위님, 속기사님, 이렇게 네 분이 한 팀인데 호흡이 척척 들어맞습니다.”
“다행이네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당신 직장은 우리 가족들의 밥줄이에요. 항상 직장과 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으면 해요.”
“여부가 있겠소.”
아내가 부침개를 내왔다. 무척 먹음직스러워보였다. 나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부침개와 소주는 궁합이 잘 맞는다. 나는 소주 한 잔을 쭉 들이켰다. 목에 넘어가는 순간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피로는 술로 푼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성싶었다. 물론 적당히 마셔야겠지만 말이다.
“근데 얘들이 왜 안 오지요?”
나는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아이들은 오후 5시경 수영장에 간다. 내가 적극 권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수영을 전혀 못한다. 강가나 바다에 가면 지레 겁부터 먹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만은 수영을 가르치고 싶었다. 아내도 내게 수영을 배우라고 권했다. 내가 미적미적대니 아예 수영복을 사와 버렸다.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만 하다.
“벌써 저녁 7시가 다 되어갑니다.”
내가 재차 말했다. 그제야 아내가 깜짝 놀랐다. 저녁 준비를 하다말고 수화기를 들었다. 함께 수영장에 다니는 아이 친구 집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 모양이다. 아내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다시 수영장에 전화를 했다.
며칠 전이었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안방에서 무슨 소린가가 들렸다. 아내하고 아이들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무슨 얘기를 저렇게 하고 있을까. 나는 궁금했다. 지금까지 저런 일은 흔치 않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가족 전체가 모여서 의논을 했다.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아내가 묻고 아이들이 답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집을 찾는다든지 잃어버린 개를 찾는다면서 접근하면 어떻게 해야 돼?”
“주위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 돼요. 그래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누가 몸에 손을 대면 어떻게 해야 돼?”
“소리를 질러야 돼요.”
“지하실 같은 데 혼자 가면 돼, 안 돼?”
“안 돼요.”
“누가 뭘 사준다고 해서 따라가면 돼, 안 돼”
“안 돼요.”
“아는 사람이 그러면?”
“그래도 안 돼요.”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성폭력 예방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요즘 어린이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아내가 저렇게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거 큰일이다. 오늘따라 아이들의 귀가가 늦다.
그때 문득 아내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근처 골목길에서 중학생 남자들이 담배도 피우고 한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부침개 맛이 싹 사라졌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문을 박차고 골목길로 뛰어갔다.
나는 골목에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이들은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이럴 줄 알았으면 휴대폰이라도 사줄 걸 그랬어. 그러면 위치 추적이라도 할 수 있잖아. 그때였다. 아이들 둘이 쫄래쫄래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었다. 나는 너무도 기뻐 아이들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고는 품에 꼭 안았다.
“왜 이렇게 늦었니?”
“놀이터에서 좀 놀다 와요.”
아이들이 태연스레 말했다. 요놈들은 걱정도 안 되는 모양이다. 부모는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나는 아이들 손을 덥석 잡았다. 마치 내가 손이라도 놓으면 누군가가 우리 아이들을 낚아채갈 것만 같았다. 나는 집에 들어섰다. 아이들을 보자 아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글쎄 말이에요. 어떤 부모는 아이들에게 이런 교육까지 시킨대요. 길 가다가 아빠 친구를 봐도 인사를 하지 말라고요.”
아무리 세상이 험악하게 변해간다고는 하지만 그건 좀 심했다. 그래도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 그런데 나도 모를 일이 그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이었다. 세상 탓인가, 아니면 나도 두 딸을 둔 아버지라서 그런가. 나는 아이들만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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