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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계진 한나라당 대변인(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변인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기관이나 단체를 대신하여 책임지고 그의 의견이나 태도를 밝혀 말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따라서 대변인이 하는 말을 그 사람의 생각이나 말로 보기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우리 정당에서 대변인이라는 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은 현실을 볼 때 대변인을 단순히 '대신 말하는 사람'으로 보기도 힘든 것이 또한 사실이다.

작년 11월 한나라당의 대변인이 전여옥 의원에서 이계진 의원으로 바뀌면서 정치 문화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오지 않을까 기대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고서도 '치매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전 의원답게 대변인 시절 항상 '전투모드'내지는 '독설모드'로 논평을 내뱉곤 했다.

하지만 이계진 대변인은 "과거 대변인(代辯人)의 스타일은 잠시 접고 웃을 소(笑)자를 써 소변인(笑辯人)의 시대를 열까 한다, 정치를 가깝게 느끼고 사랑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재미있는 정치를 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며 그 자리를 맡았다. 그런만큼 이 '소변인'의 첫 논평은 과연 달랐다.

남달랐던 이 대변인의 첫 논평, 그러나 지금은...

당시 경기 광주시 오포 아파트 인허가 비리에 연루돼 구속된 한현규 경기개발연구원장에게서 5000만원을 빌려 의혹을 받고 있던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에 대해 한나라당은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이 대변인은 "이해할 수 있다"며 옹호했다. "마침 부인이 암 수술을 했다고 들었는데 당시 선거를 치른 분이 돈이 없었을 것"이라며 이 살벌한 정치판에서 뜻밖의 인간적인 논평을 낸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안타깝게도 이 '소변인'의 파격적 행보는 좌절됐다. WBC에서 선전한 우리 한국 야구팀이 일본과 미국을 격파하는 바람에 한미일 동맹에 균열이 생기게 생겼다는, 한번 웃자고 낸 논평이 네티즌들의 엄청난 비난을 사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소변인'의 꿈을 접은 것이다. 그는 "여유없고 척박한 정치 현실이 너무 슬프다"며 속상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래서인가? 27일 이계진 대변인의 한나라당 최고위원회 결과 브리핑은 척박한 정치 현실을 드러내다 못해 퇴행적이기까지 했다.

스스로 연좌제가 폐지되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한명숙 지명자 남편의 과거 사실을 들추어내면서 "한 지명자 스스로 자신의 이념적 좌표가 어디쯤인지 밝혀야 한다"고 모순된 주장을 하는가 하면, 이미 지난 2001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한 지명자의 과거 경력에 대해 "이념사건으로 구속된 바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등 은연 중 색깔론으로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나라당의 사상검증이나 색깔론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한 때 '소변인'을 자처했던 이 대변인의 이런 변신에는 다소 각별한 서글픔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물론 이계진 대변인 본인의 문제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한나라당의 입장을 대표해서 전해야 하는 한나라당의 대변인이다. 하지만 그가 굳이 취임 일성으로 '소변인'을 자처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전문 정치인' 출신의 대변인과는 달리 그에게 긍정적 기대를 건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소변인' 되고자 했던 이 대변인의 변신이 서글프다

그는 인기 방송인 출신의 정치인이다. 아니 아직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TV 화면 안에서 미끈하고 잘생긴 얼굴과 사람좋은 웃음으로 시청자들을 편안하게 해 주던 예전의 인기 방송인의 모습이 더 익숙할 것이다. 그래서였겠지만 그가 내는 논평은 다른 정치인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국민들을 편하게 해주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 자신 그 기대에 부응할 것을 약속했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상검증이니 이념이니 하는 케케묵은 소리가 나와서는 안 되었다. 또한 총리 임명 문제의 본질과 거리가 먼 '당적 이탈' 등의 트집도 어울리지 않는다.

진정한 대변인이 그립다. 때에 따라서는 서로 덕담도 주고받고 칭찬도 나누면서 정작 비판을 하고 꾸짖을 때는 촌철살인의 매서운 논평을 날릴 줄 아는 그런 대변인 말이다.

'소변인'이 되고자 했던, 그럼으로써 남다른 대변인이 되고자 했던 이계진 대변인의 뒷걸음질치는 '제자리 찾기'가 안타깝고 서글프다. 그가 다시 대변인의 초심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역시 우리의 척박한 정치 현실에서 무리인가?

이계진 대변인의 건승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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