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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의 시체가 있던 자리에, 한 떨기의 꽃이, 안이 더 노랗고 둘레에 노란 잎을 단 꽃이, 즉 수선화가 피어나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
나르시스의 시체가 있던 자리에, 한 떨기의 꽃이, 안이 더 노랗고 둘레에 노란 잎을 단 꽃이, 즉 수선화가 피어나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 ⓒ 서종규
수업을 하다가 창문을 내다보니 오후 내내 눈발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가운데, 문득 교정의 뜨락에 핀 노란 수선화 두 송이가 눈에 파고든다. 수선화! 올해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수선화가 피어난 것이다. 수선화 하면 잘 가꾸어진 화단에 곱게 피어 있는 수선화가 제격이다.

한데 창 밖에 핀 수선화는 잡초만 가득한 교정의 뜨락에 고개를 내밀고 오롯함을 드러내고 있다. 꽃대는 꼿꼿하게 쭉 뻗어있지만 꽃은 물속의 자기 모습을 보려는 듯 살짝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 그 옆에 아직 잎만 무성한 수선화도 있고, 땅바닥에서도 고개를 내밀고 있는 또 다른 수선화도 있다.

수선화, 그 환한 자리
수선화, 그 환한 자리 ⓒ 서종규
수선화는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사랑받는 꽃인가 보다. 우리나라는 봄에 피는 꽃으로 매화를 으뜸으로 친다. 매화는 찬 서리 이겨내는 꽃으로 그 향기가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기에 충분하다. 나는 눈이 와도 피어서 그 향기를 멀리 내 품고 있는 매화를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노란 복수초가 또 사랑받는다. 복수초는 눈을 뚫고 나와 피는 꽃이다. 아니 눈을 뚫고 나와 피어 있는 복수초의 사진이 가장 대접을 받는다. 또 이른봄 산에 가면 노랗게 다가오는 꽃이 생강나무꽃이다. 김유정의 <동백꽃>이란 소설에 등장하는 노란 꽃이 바로 이 꽃이다. 산수유꽃도 생강나무꽃과 비슷하게 노랗게 핀다.

광주경신중학교 교정에는 매화, 개나리, 목련꽃이 활짝 피어 있는 가운데, 교정의 한 뜨락에서 수선화도 피어났다
광주경신중학교 교정에는 매화, 개나리, 목련꽃이 활짝 피어 있는 가운데, 교정의 한 뜨락에서 수선화도 피어났다 ⓒ 서종규
노란 꽃 하면 개나리를 빼놓을 수가 없다. 언덕에, 산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노란 개나리는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꽃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꽃이다. 더구나 봄에 깨어나는 노란 병아리와 함께 개나리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꽃이다.

봄에 피는 매화나 복수초, 생강나무, 산수유꽃, 개나리를 찾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수선화는 좀 먼 느낌이 든다. 하지만 수선화는 대대로 서양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인 것 같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 꽃으로 사원을 장식했고, 장래용으로도 썼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새로운 품종의 개성을 겨루는 수선화 쇼가 열릴 정도라니, 서양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만 하다.

은하에서 빛나며/ 반짝거리는 별처럼/ 물가를 따라/ 끝없이 줄지어 피어 있는 수선화.
은하에서 빛나며/ 반짝거리는 별처럼/ 물가를 따라/ 끝없이 줄지어 피어 있는 수선화. ⓒ 서종규
"은하에서 빛나며/ 반짝거리는 별처럼/ 물가를 따라/ 끝없이 줄지어 피어 있는 수선화/ 무수한 꽃송이가/ 흥겹게 고개 설레는 것을"이라고 노래한 영국의 유명한 시인 워즈워스의 시 <수선화>는 유명하다.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다 결국 말라 죽어버린 나르시스의 시체가 있던 자리에, 한 떨기 꽃이, 안이 더 노랗고 둘레에 노란 잎을 단 꽃이, 즉 수선화가 피어나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도 그리스 신화다.

"두 조각의 빵이 있는 자는 그 한 조각을 수선화와 바꾸어라. 빵은 육체에 필요하나 수선화는 마음에 필요한 빵이다."
"두 조각의 빵이 있는 자는 그 한 조각을 수선화와 바꾸어라. 빵은 육체에 필요하나 수선화는 마음에 필요한 빵이다." ⓒ 서종규
어느 숲 속에 맑은 샘이 있고, 그 물은 마치 거울처럼 맑았다. 이 샘 가에 어느 날 나르시스가 사냥과 더위에 지쳐 찾아왔다. 그는 몸을 굽혀 물을 마시려고 하다가 물에 비치는 자기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것이 샘 가에 사는 아름다운 물의 요정이라고 생각했다. 빛나는 눈, 탐스러운 볼, 맵시 있는 입술, 상아처럼 흰 목덜미…. 그는 마침내 자기를 사랑하게 되었다. - <수선화의 전설> 중에서

그렇지만 동양에서도 수선화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이슬람교에서는 수선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호메트의 가르침 가운데 "두 조각의 빵이 있는 자는 그 한 조각을 수선화와 바꾸어라. 빵은 육체에 필요하나 수선화는 마음에 필요한 빵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마침내 자기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자기를 사랑하게 되었다. ⓒ 서종규
창 밖의 수선화에 그 친구의 얼굴이 겹친다. 시인 고재종, 그는 수선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친구는 수선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수선화를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꽃을 이야기하고, 물을 이야기하고, 시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수선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통할 것 같단다. 꽃말이 주는 의미뿐만 아니라 한 생명을 솟구쳐 올리는 그 힘으로 피어 올리는 수선화, 엄정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 자연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모여 생명의 소중함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수선화! 올해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수선화가 피어난 것이다.
수선화! 올해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수선화가 피어난 것이다. ⓒ 서종규
거기 뜨락 전체가 문득
네 서늘한 긴장 위에 놓인다

아직 맵찬 바람이 하르르 멎고
거기 시간이 잠깐 정지한다

저토록 파리한 줄기 사이로
저토록 환한 꽃을 밀어올리다니!

거기 문득 네가 오롯함으로
세상 하나가 엄정해지는 시간

네 서늘한 기운을 느낀 죄로
나는 조금만 더 높아야겠다

- 고재종의 시 <수선화, 그 환한 자리>


저토록 파리한 줄기 사이로 / 저토록 환한 꽃을 밀어올리다니!
저토록 파리한 줄기 사이로 / 저토록 환한 꽃을 밀어올리다니! ⓒ 서종규
그는 수선화가 피는 순간을 시로 노래했다. 꽃이 피는 순간, 한 생명의 탄생, 서늘한 긴장감에 놓인다. 온 우주가 멈추는 순간에 환한 꽃을 밀어올리는 수선화의 생명력, 그 시간, 엄정한 그 시간, 수선화가 피는 그 자리는 환하게 변하고, 시인은 조금 더 높아짐을 느낀단다.

시인은 꽃말을 알면 시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수선화의 꽃말이 '자존', '고결'이다. 수선화가 피는 엄정한 순간을 체험한 시인은 자신이 좀 더 높아지고 있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한 생명의 탄생 순간에 누군들 고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존엄성 때문에 좀 더 자신을 존중하지 않겠는가?

수선화의 꽃말이 '자존', '고결'이다.
수선화의 꽃말이 '자존', '고결'이다. ⓒ 서종규
아직도 수선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아니 만들고 싶다는 말만 마음에 가득했지, 실제로 만들지 못했을지 모른다. 아마 생명에 대한 오롯함이 시를 창작하는데 쏟아지는지 모르겠다.

교실 창에서 느낀 노란 수선화로 인해 그 친구의 얼굴이 더 보고 싶어진다. 늘 시에 엄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그 친구의 모습이 환하게 떠오른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잘 대해주는 것을 보면 모든 사람들에겐 허물없이 대하여 주는데 말이다. 고재종의 시 <수선화, 그 환한 자리>를 다시 한 번 읊조려 본다.

교실 창에서 느낀 노란 수선화로 인하여 그 친구의 얼굴이 더 보고 싶어진다.
교실 창에서 느낀 노란 수선화로 인하여 그 친구의 얼굴이 더 보고 싶어진다. ⓒ 서종규

덧붙이는 글 | 이 수선화와 매화는 3월 28일(화) 광주경신중학교 교정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매화와 진달래, 목련꽃은 교정에 흐드러지게 피어 출렁이는데, 수선화는 뜨락에 몇 송이 피었습니다. 오늘 아침엔 비가 왔는데 오후에 간혹 눈송이가 날려, 꽃들이 시들까봐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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