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가 새로운 대북정책을 입안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그 내용과 의도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언론보도와 외교소식통을 종합해보면, 그 내용은 미국이 앞으로 핵문제뿐만 아니라 위조지폐·마약·인권·미사일·재래식 군사력 등 이른바 미국의 우려 사항을 한꺼번에 제기하는 방향으로 정리되고 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일괄타결을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한이 미국의 우려 사항을 해결하면 미국도 포괄적 경제지원, 평화체제 수립, 경제제재 해제, 북미관계 정상화 등 북한의 요구 사항을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일괄타결'의 맥락에서 보는 것은 대단히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새 대북정책, 대외정책 실패도 덮고 국내 지지율도 높인다?
우선 미국이 새로운 대북정책을 입안하게 된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배경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2기 부시 행정부가 대외정책의 기조로 '폭정의 종식'과 '민주주의 및 자유의 확산'을 내걸고 있는데, 대북정책에도 이러한 기조가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1기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 저지'를 내세웠지만, 이 기조 아래 이루어진 이라크 침공이 '제2의 베트남 전쟁'이 되고,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는 대단히 도덕적인 구호를 앞세워 대외정책의 실패를 은폐하고자 하는데, 이러한 의도가 대북정책에도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국내 정치적 고려이다. 미국은 올해 11월 중간 선거와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부시 행정부는 대외정책의 실패로 지지율 하락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고자 부시 행정부가 취하고 있는 방식은 보수주의의 전면화이고, 이는 대외정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대북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미 부시 행정부는 2004년 대선에서 북핵 문제에 대해 존 케리 진영으로부터 강한 공세를 받은 바 있다. 그 이후 북한은 2005년 2월 핵보유를 선언했고, 9.19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의 해결 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경우 중간 선거와 2008년 대선에서 북핵 문제는 부시 행정부의 취약점이 될 수 있다.
이에 반해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인권·위폐 등 다른 문제들을 전면화시키면, 대북정책 실패에 대한 공세를 무마시키고 미국 내 보수 여론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부시 행정부가 최근 북한에 대한 악마적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우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셋째는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 및 거래 혐의를 근거로 부과한 금융제재 효과가 예상보다 크게 나타나면서 추가적인 제재 조치에 대한 유혹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9.19 공동성명으로 인해 핵문제에 대해서는 제재 조치를 취하기가 쉽지 않지만, 위조지폐·마약·무기수출 등 다른 사안으로 추가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여 굴복을 유도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정권교체를 추진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양수겸장'의 의미를 담고 있다.
미 강경파가 북한과 '통 큰 타협' 하려 할까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강경파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9.19 공동성명 채택 직후 미국 내에서는 북핵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온건파와 다른 문제도 함께 다뤄야 한다는 강경파 사이의 갈등이 있었고, 결국 강경파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새로운 대북정책이 입안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국 강경파가 북한과의 '통 큰 타협'을 의미하는 일괄타결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대북정책을 짜고 있겠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들은 금융제재 효과에 고무된 나머지, 정권교체 내지 북한의 굴복을 염두에 둔 전방위적인 대북 압박을 위해 새로운 대북정책을 주도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금융제재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을 통해 북한의 돈줄을 차단하는 것은 부시 행정부가 이미 취하고 있고, 또 앞으로 강화할 조치에 해당된다. 2002년에 구상했던 '맞춤형 봉쇄'와 2005년 초에 거론되었던 '도구 모음'이 이제 실행단계로 넘어왔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방위적인 대북 압박 정책이 가져올 '잠재적 결과'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핵 시위를 강화해 '핵 위기'가 고조되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이렇게 나오면 9.19 공동성명을 위반했다며, 한국과 중국에 대북 제재에 동참하라고 압박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크게 손해볼 것이 없다.
둘째는 이와 반대로 북한이 핵문제에 대해 양보하고 나오는 것이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전방위적 대북 압박의 '기대효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에게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이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낮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북한이 부시 행정부의 임기 동안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장기적인 교착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관건은 한국과 중국의 선택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가 장기화될수록 북한의 핵 포기 의지에 회의감을 나타내면서 한국과 중국에게 대북 압박에 동참하라고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과 중국은 한반도의 급변 사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9.19 공동성명 채택 이후 한반도의 미래는 오히려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금융제재 효과에 고무된 부시 행정부는 전방위적인 대북 압박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고, 북한은 중국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버티기에 들어가고 있다. 이는 한반도의 운명이 미국과 중국의 선택에 종속되는 '타자화'와 다름 아니다. 한국이 보다 섬세하고 치밀한 전략을 마련해 교착상태를 타개해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