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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실사 프린팅으로 멋지게 뽑은 현수막은 디자인과 색이 벌써 무속 분위기가 아니다. 도당제가 전통의 굿판이 아니라 주민 축제화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컴퓨터 실사 프린팅으로 멋지게 뽑은 현수막은 디자인과 색이 벌써 무속 분위기가 아니다. 도당제가 전통의 굿판이 아니라 주민 축제화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 곽교신
서울에서 흔적이 거의 온전히 남아 있는 전통 마을 굿의 하나인 봉화산 도당제가 지난 3월 31일(음력 3월 3일) 서울 중랑구 신내동 봉화산 정상에서 열렸다. 봉화산은 해발 160m의 낮은 산이지만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산 정상에서 남으로는 한강 건너 강남 지역 끝까지, 북으로는 의정부 일대까지 널리 조망이 된다.

이러한 지리 조건으로 한반도 북동 함경도 변방에서 전달되는 봉화가 경복궁 앞 남산 봉화대로 보내지는 마지막 봉화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봉수대 다섯 개의 화구 중 한 개에서만 불꽃(밤) 또는 연기(낮)가 피어오르는 것은 곧 함경도 일대 동북 변방이 평화로움을 뜻했다.

4개 동이 돌아가며 준비하던 봉화산 도당제

도당제보존위원회 위원들의 축문낭독. 한문을 먼저 읽은 후 한글 축문을 다시 읽어서 한글 세대도 축문 내용을 알기 쉽도록 배려했다.
도당제보존위원회 위원들의 축문낭독. 한문을 먼저 읽은 후 한글 축문을 다시 읽어서 한글 세대도 축문 내용을 알기 쉽도록 배려했다. ⓒ 곽교신
봉화산 도당제가 봉화산 정상의 봉수대와 관련이 있는 마을 대동제인지의 여부는 아직도 학계에서 정설이 확립되지 못했다. 하지만 원래부터 있었던 마을 대동제가 봉수대가 들어오면서 음으로 양으로 관의 비용 지원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중론이다. 그런 추측의 근거는 봉화산 정상의 당집이 보통 볼 수 있는 마을 당집과는 규모나 형태 면에서 격식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예로 든다.

양종승 박사(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한국귀신학회 회장)는 "주변 4개 동이 한 해씩 돌아가면서 준비를 책임지며 마을 제의를 지내는 경우는 전국에서도 유례가 없다"면서 "그런 특이한 형식으로도 이 봉화산 도당제는 동제로서의 보존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까지도 봉화산도당제보존위원회를 중심으로 신내동, 중화동, 상봉동, 묵동 일대 주민들이 번갈아가며 도당제를 준비했다고 한다.

흥이 겨워 굿판은 안중에도 없던 이 할머님들은 이 날의 스타. 굿판이야 어떻게 되든 그저 즐거울 뿐이다. 사실 이 판은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다.
흥이 겨워 굿판은 안중에도 없던 이 할머님들은 이 날의 스타. 굿판이야 어떻게 되든 그저 즐거울 뿐이다. 사실 이 판은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다. ⓒ 곽교신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봉화산 도당제는 2005년에 서울시무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어 민속 보존자료로서 그 가치를 공인 받았다.

시무형문화재 지정 전까지는 도당제를 미신적 무속행사로 여겨 항의 전화를 하거나 행사 안내 플래카드를 찢어 버리는 등 일부 종교 단체를 중심으로 행사에 대한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부터는 전통 문화의 하나로 보는 인식이 퍼져 올해는 관할 구청에 항의 전화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지정 후 첫 해를 맞는 올해의 봉화산 도당제는 행사 운영에서도 많은 변화를 꾀했다.

실질적으로 행사를 총괄하던 중랑구청 측이 기초적인 행정 지원 외에는 거의 손을 뗐고 원래 도당제를 진행하던 민간자생기구인 봉화산도당제보존위원회(위원장 윤천욱)에서 기금을 추렴하고 제물을 준비하는 등 행사를 주관하고 중랑문화원에서 측면 행정 지원을 하는 형식을 취했다.

굿판의 엄숙함 대신 잔칫날의 흥겨움이

행사 분위기도 굉장히 자유로워서 보통의 굿판에서 볼 수 있는 엄숙함보다는 흥겨운 잔치판 분위기가 느껴졌다.

당제를 주관하는 무녀도 신을 받아 영험한 공수를 내리기에 치중하기보다는 마치 오락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된 듯 시민들과 함께 즐기는 흥겨운 분위기였다. 무속행위를 민간의 종교라기보다는 전통 문화형의 하나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요즈음에 무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성의 없이 굿한다고 할 사람은 없으리라.

주민들도 굿판에서 뭘 빌겠다 작정하고 산에 올라온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저 "밥 읃어 묵고 귀경 헐라꼬" 올라온 어르신들부터 자료 수집에 열심인 민속학과 학생들까지 다양했다.

이런 흥겨운 분위기 덕분인지 쌀 한 가마 반의 밥과 5가마의 떡이 점심 배식 도중에 떨어지는 사고 아닌 사고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굿판에서 음식이 박할 수는 없는 법, 떡과 고기가 푸짐하게 마련되어 있어 시민들의 허기를 달랬다. 행사 전체를 지휘한 중랑문화원 사무국장은 "산꼭대기라 별 도리가 없다. 국 밑에 가라앉은 건더기만 건져 먹고 못 드신 분은 떡이며 부침개로 대신하고 끝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어 모두들 한바탕 웃기고 나서 "내년에는 더 많이 준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봉화산 도당제, 주민과 함께 하는 전통 축제되길

이날 인기 절정은 굿판이 아니라 부침개판. 삼십 분은 족히 기다려야 부침개 한 장을 받는데도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날 인기 절정은 굿판이 아니라 부침개판. 삼십 분은 족히 기다려야 부침개 한 장을 받는데도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 곽교신
도당제 고유형의 보존을 바라는 한 원로 학자는 이날 도당제를 보며 조금씩 변화하는 봉화산 도당제의 현재 모습이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유 있는 변화가 문화형 진화의 하나라면, 바로 이 변화 덕에 '똥꼬바지'를 입은 신세대도 거부감 없이 봉화산도당제 축제굿판에 흥겹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이라 볼 때, 변화를 반드시 전통문화형의 파괴로 볼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양종승 박사의 말이다.

보존위원회 윤 회장은 "특별한 토속신앙의식에서 이 행사를 주관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선대부터 대대로 이어온 마을 전통을 내 대(代)에서도 이어간다는 생각 밖에 없다"며 "이미 무속적 요소가 많이 사라져 축제화한 이 도당제가 서울을 대표하는 전통 축제의 하나로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해 이 도당제를 주민들이 적극 참여하여 즐기는 축제로 끌고 나갈 것을 암시했다.

봉화산 도당제와 성격은 약간 다르지만, 용산구에서는 '남이장군 사당제'를 6일짜리 흥겨운 거리 축제로 키워 용산구는 물론 서울시민이 함께 즐기는 시민축제화하고 있다. 이날 봉화산 도당제에서는 해당 지자체인 중랑구청의 특별한 관심이나 배려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시, 구의회 의원 등 소개에 30여 분을 소비해 행사의 맥을 끊기도 했다.

앞으로 이 행사를 현대적 축제 요소와 결합시키고 주민의 관심과 흥미를 촉발시키면서도 고유형을 파괴시키지 않아 전통과 현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보겠다는 중랑문화원의 말에 내년 행사의 즐거운 변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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