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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석재 <하늘과 인간> 앞표지
ⓒ 북하우스
잘 된 책을 보면 튼튼하게 잘 지어진 건축물이 떠오른다. 임석재(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의 <하늘과 인간>(2006년 2월 24일 북하우스 펴냄)이 그렇다.

마침 서양건축사 책이어서 그런지 더 그런 느낌이 든다. 옥고(玉稿)는 물론이고, 700여 쪽의 분량에 화질 좋은 컬러사진이 각 쪽마다 1~4점씩 적절하게 들어 있다. 잘 지어진 건축물 같은 책을 보며 '이 글을 쓰는 데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이 책을 만드는 데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5권의 서양건축사 통사 가운데 <하늘과 인간>으로 반환점을 넘어섰다고 한다. 3권째 냈다는 말이다. 1권은 <땅과 인간>, 2권은 <기독교와 인간>이다. 1, 2권이 2003년에 나왔으니 기간으로 보아도 특히 3권 <하늘과 인간>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방대한 양의 사료를 구하는 것부터가 힘든 작업이었던 모양이다. 경제적 부담도 말할 수 없이 컸다고 했다. 그것을 보관하는 공간 마련도 큰일이었고 그것을 싸들고 싼 전세집을 찾아 여러 번 이사를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고 했다.

뿐인가. 많은 사료를 읽고 분석하고, 서양 학자의 연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사관으로 해석하고 자기만의 생각으로 쓰는 것은 더 힘든 일이라고 했다. 사료와 관련하여 물리적 차원에서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차원에서도 힘든 일이었다는 뜻이다.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매번 만 장에 가까운 슬라이드를 촬영하는 일도 함께 했다고 한다. 38도에 이르는 한여름에 20킬로그램에 이르는 카메라 장비를 메고 하루종일 걷고 찍는 일을 한 달씩 강행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유럽 답사가 모두 10회.

<땅과 인간>은 원시 고대에서 로마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건축사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는 땅에서 나온 인간이 땅 위에 터를 잡고 땅을 경영하고 살며 인간만의 건축문명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와 인간>은 로마에서 비잔틴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건축사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는 땅만 알고 땅에 모든 것을 걸고 살던 인간이 기독교라는 새로운 정신세계를 깨닫게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문명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완성한 <하늘과 인간>은 로마 멸망 이후 침체에 빠졌던 유럽문명이 오랜 숙성 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문화코드를 만들어나가는 움직임이 건축 분야에서 표출된 시기, 즉 로마네스크에서 고딕 양식에 이르는 기간(9~15세기)을 다루어 놓았다. 오늘날 우리가 '유럽'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수많은 기념비적 건축물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태어났다고 한다. <하늘과 인간>의 차례는 이렇다.

1장 초기 중세
2장 프레-로마네스크
3장 초기 로마네스크
4장 기독교와 로마네스크
5장 성기 로마네스크
6장 영국과 이탈리아 로마네스크
7장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8장 초기 고딕
9장 성기 고딕
10장 후기 고딕
11장 영국 고딕
12장 독일과 이탈리아 고딕


취재와 집필 도중에 임석재 교수는 경제적, 신체적, 심리적 고통이 너무 커서 '내가 왜 이렇게 살까?' 하는 회의도 여러 번 들었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침내 참아내고 힘을 내어 국내 출판 역사상의 한 업적을 이룩해낸 것이다. 일류 마라토너의 '신기록 도전'을 생각케 한다.

이 책의 잘생긴 점은 본문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많은 참고문헌, 1000여 점의 사진과 그림 목록, '가나다' 순으로 된 찾아보기, 한글 표기 목록을 빠짐없이 부록으로 넣어 둔 것을 보며, 이 책을 만든 저자와 출판사의 정성과 노고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늘과 인간 - 로마네스크, 고딕 건축

임석재 지음, 북하우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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