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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노고단은 가장 쉽게 지리산의 장대한 능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봉우리다. 성삼재에 자동차가 갈 수 있는 도로가 있기 때문이다. 이 도로가 건설된 이후 노고단을 찾는 사람들은 등산객에서 점차 관람객으로 바뀌고 있다. 자동차를 타고 성삼재까지 가서 잠시 뒷산을 오르듯 노고단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매력 때문인지 1년에 노고단을 찾는 관람객은 70만을 넘는다고 한다. 노고단은 슬리퍼를 신고도 쉽게 오를 수 있어서 애써 등산화를 신은 사람이 무안해지는 길이기도 하다.
아스팔트로 된 편안한 길이 존재하는데 어려운 길을 선택 할 사람은 많지 않아서인지 화엄사에서 시작하는 전통적인 노고단 등산로를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과거에는 노고단에 오르려면 대부분 화엄사를 기점으로 출발했다. 지리산 종주 역시 화엄사가 출발점이 되기 십상이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거리는 약 7km인데 꽤 가파른 길로 결코 쉽지 않은 코스다. 더구나 커다란 배낭이라도 메고 오른다면 그 길은 고생길이 되기 쉬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지리산 종주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쉽게 성삼재로 출발지점으로 잡는다. 하지만 성삼재에서 출발한 종주 대는 종주를 마치고도 종주했다고 말하기가 조금은 미안스러운 감을 감출 수 없다. 그 이유는 출발이 너무 쉬었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편리함의 유혹을 극복하지 못하고 성삼재로 지리산을 찾고는 했다. "시간이 부족해" "짐이 많잖아"등의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그러나 오늘은 오래된 방법으로 노고단을 오르겠다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화엄사에 도착하니 4월의 따뜻한 햇볕이 지리산에 가득했다. 물병 하나와 작은 배낭을 메고 고즈넉한 산길을 오른다. 오늘은 휴일도 아니어서 그런지 등산로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오르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연기암까지 가는 사람은 많은데 오늘은 그마저 보이지 않는다. 내 앞에 스님 한 분이 봄 길을 걷고 있다.
스님은 무슨 깊은 생각에 빠져 내가 오는지 몰랐던 모양이다. 내 발걸음 소리에 놀라 "어머"하고 소리를 친다. 놀라며 뒤돌아보는 모습을 보니 젊은 비구니스님이다. 무슨 사연이 있어 스님이 되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은 물과 함께 가는 길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출발할 때부터 시작한 물줄기가 산정상까지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서 이 길을 찾는 사람조차 심심할 겨를이 없다. 산 위에 오를 때까지 계곡 물소리가 친구처럼 따라다니며 재잘거리기 때문이다. 계곡 물소리를 벗삼아 나도 산을 오른다.
길은 오르막이 나왔다가 평지로 이어지다 다시 오르막길로 이어지며 정상으로 향했다. 연기암 가는 길을 왼쪽으로 두고 노고단 가는 길로 향한다. 길은 흙길에서 돌길로 이어진다. 층층이 만들어진 돌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른다. 붉은 돌이 많다. 돌이 붉은 이유는 그 안에 철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의 피가 붉은 이유도 철분 때문이다. 그러니 “돌과 사람은 철분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계곡은 사람처럼 물을 품고 있으니 또 사람과 닮고, 물은 물이어서 사람과 닮았다. 사람과 자연은 이렇게 닮아있는 것인가?
이마와 등이 땀에 젖을 때쯤 노고단 3.5km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화엄사에서 노고단은 7km다. 그러니 딱 반절을 온 것이다. 화엄사에서 노고단 가는 길은 길 옆에 항상 계곡을 끼고 오르기 때문에 작은 물통 하나로도 충분한 코스다. 그러니 많은 물을 가지고 오른 필요도 없고, 물이 없다고 당황할 필요도 없어 등산하기엔 편하다. 계곡이 항상 옆에 있으니 쉬고 싶으면 언제든지 계곡에서 발음 담그고 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 하늘을 보니 벌써 성삼재에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여기서부터가 이 코스에서 가장 가파른 길인 코재다. 가파른 길을 오르려면 위를 보지 않고 천천히 오르는 것이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이 길을 오르면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오르는 사람과 화엄사에서 오르는 사람들이 만나게 된다. 어렵게 화엄사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멍하니 슬리퍼 신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기 때문에 일순 허망한 기분이 들게 된다. 여기서 다시 20여 분을 오르면 노고단 정상이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노고단에 오르니 반야봉이 지척으로 보인다.
그러나 볼 수는 있지만 지금은 갈 수 없다. 산불방지기간이어서 노고단을 넘은 능선은 3월 1부터 5월 15일까지 등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노고단 정상 역시 갈 수가 없다. 2006년 1월 1일부터 2015년 12월 31일까지 10년간 보호를 위해 입산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단지 천국을 향한 계단처럼 끝없이 이어진 노고단을 향하는 계단만을 봐야 했다. 아쉽지만 노고단에 핀 버들강아지만 보다 발길을 돌려 산밑으로 향한다. 화엄사에 도착하니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지리산에 가득 울려 퍼진다.
노고단을 나는 매일 본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구례 앞산이 노고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는 것과 가는 것이 차이가 있듯이 앞산인 노고단을 화엄사에서 출발해서 오르는 것과 성삼재에서 출발하는 것에도 차이가 있다. 편리함과 불편함, 빠름과 느림의 다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고단 가는 사람은 고민해야 한다. 당신이 노고단을 찾는다면 어떤 길을 선택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