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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학중
강학중 ⓒ 우먼타임스
어제는 딸아이가 새벽 4시 반에 퇴근했습니다. 언제 퇴근할지 모르니 먼저 자라는 아이의 말에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어서 새벽 한두 시쯤까지 엎치락뒤치락하다 아이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입사한 지 3개월 밖에 안 되는데 퇴근이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니 딸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이는군요. 저도 한때 한 회사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던 사람이라 사장님들의 입장을 전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건 좀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입사 면접 때 딸아이는 밤 12시 안으로만 집에 도착할 수 있으면 열심히 일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는데 그것마저 잘 지켜지지 않고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기니까 무척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무한경쟁 시대에 생존을 위해 밤낮으로 뛰는 사장님들께 한가한 소리, 딸자식을 과보호하는 애비의 철없는 하소연쯤으로 들릴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제 딸아이 문제를 떠나서 한 말씀 드리고 싶어 몇 자 적습니다. 사장님들 역시 본인의 의지만으론 안 되는 일이 많겠지만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해 최고경영자로서 결단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조직원들의 가정이 안정되지 않고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면 그 직원들이 자기 일에 전념할 수가 없고 높은 생산성이나 경쟁력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야 모르지 않으시겠지요. 물론 직원들의 안정된 가정생활을 위하여 회사가 어떻게 배려해야 하고 그런 지원이 어떻게 생산성으로 연결되는지 한두 마디 얘기로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직원들이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려면 지나친 성장 위주의 기업문화나 음주문화 속에서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회적인 지원 또는 제도와 법의 뒷받침 없이는 더욱 더 불가능하구요.

저희 딸아이야 미혼으로서 아직은 책임질 가족이 없다고 하지만 아이까지 키워야 하는 맞벌이 여성들의 퇴근 시간이 연일 밤이나 새벽이라면 그 가족관계가 어떠할지는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과장만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남녀가 함께 지면서도 여전히 집안일과 아이 키우는 일은 여자들 몫이라는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저출산 현상은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 모든 책임을 기업에게만 떠넘길 수는 없겠지만 임신과 출산, 자녀 양육이 여자들만의 문제이거나 그 가족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기업의 문제요, 우리 사회나 국가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아이들을 금이야 옥이야 키워 기업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것도 가정이고 국가가 요구하는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주체도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죠. 기업의 진정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좀더 친가족적인 정책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조직원들의 가정을 위해 막대한 예산이나 대단한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업무가 다 끝났으면 눈치 안 보고 퇴근할 수 있는 분위기, 보장된 법 테두리 내에서 인사상의 불이익을 염려하지 않고 남녀가 모두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시스템, 집중 근무시간제, 재택근무 같은 보다 융통성 있는 탄력근무제, 수유시설이나 보육시설 확충 등에 사장님들이 조금만 더 애정을 가지고 챙겨주신다면 이 땅의 가정문화에 일대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꾀할 수 있는 건강한 토대 위에서 진정으로 존경받는 기업, 기업인이 되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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