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해찬 전 총리의 '3·1절 골프' 파문 보도를 통해 우리 언론은 다시 한번 스스로가 지닌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대다수 언론은 이 총리의 내기 골프에 대한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남의 잘못만 물고 늘어졌을 뿐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눈 감았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정치인과 언론사의 '공짜 밥-술'을 통해 언론계의 접대문화를 추적한 데 이어, 이번에는 공짜골프에 대한 언론의 이중적 잣대를 들여다 봤습니다. <편집자주>

관련
기사
[정치·언론 '공짜 밥·술' 추적기①] 양당 대변인단 식대만 1억원 넘어

언론들은 하나같이 이해찬 전 총리의 3.1절 골프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지만 정작 접대골프에 푹 빠져 있는 자신들을 되돌아보자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사진은 서울 근교의 한 골프장.
언론들은 하나같이 이해찬 전 총리의 3.1절 골프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지만 정작 접대골프에 푹 빠져 있는 자신들을 되돌아보자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사진은 서울 근교의 한 골프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들의 골프 접대가 일상화돼 있는 상황에서 과연 한국의 언론은 이 총리와 기업인들의 부적절한 골프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낙마한 직후인 지난달 20일 정상섭 <부산일보> 서울지사 정치부장이 한 칼럼에서 밝힌 구절이다.

<부산일보>는 이 전 총리의 3.1절 골프파문을 가장 먼저 보도해 사실상 이 전 총리의 불명예 퇴진을 끌어낸 진원지다. 이 칼럼은 독자들에겐 신선하게, 기자들에게는 따끔하게 다가왔다. 실제로 골프에 관해서는 기업체, 관공서, 국회의원을 막론하고 '전방위로' 접대를 받는 집단이 언론인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언론사들이 많다.

윤호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은 지난달 15일 기자협회보에 기고한 '총리 골프 파문과 언론의 역할'이란 제목의 글에서 "총리의 처신을 두고 그토록 심하게 질타를 가했던 우리 언론들은 과연 얼마나 윤리적으로 성숙돼 있을까"란 물음을 던졌다.

또 박수택 SBS 환경전문 기자는 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작심한 듯 공짜골프에 빠진 국내 기자들의 '거지 근성'을 꼬집으며 "지금 접대골프를 치는 기자들의 대부분은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골프가 꼭 필요하다면 고급취재원을 만나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골프를 쳐도 좋다, 그러나 자기 돈을 내고 쳐라"고 말했다.

기자들 간이 더 컸다

지난달 27일 SBS는 <8뉴스>를 통해 김남수 청와대 비서관이 대기업 장아무개 이사와 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단독 보도했다. '간 큰 비서관'이란 제목으로 보도된 이 뉴스에서 SBS은 '말 따로 행동 따로'인 김 비서관의 행동을 꼬집었다.

그러나 청와대 비서관보다 '더 간이 큰' 기자도 있었다. SBS 보도국 기자들이 문제의 비서관과 골프를 친 장 이사와 하루 전날 같은 장소에서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같은 태도를 두고 <경향신문>은 'SBS, 내가 하면 운동, 남이 하면 기강해이?'란 기사로 비꼬았다.

비용은 누가 지불했을까? 장 이사는 당시 기자들과의 골프에 대해 "회원권을 이용했기 때문에 총 비용이 50만원도 채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누가 비용을 냈는지에 대해서는 "관례대로 처리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기자와 취재원이 골프를 칠 경우 취재원이 비용을 내는 것이 관례다.

장 이사는 "1년 반 전 출입했던 기자를 만나서 그 기자가 소개한 사람들과 한 번 쳤는데, 그 다음날 골프를 친 사실이 바로 그 언론사를 통해 보도돼 꼭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며 편치 않은 심기를 드러냈다.

한 대기업 '기자 골프' 접대비를 들여다보니... 2003년 5월 1300만원

ⓒ 오마이뉴스 고정미
기자들의 골프문화가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공짜접대 관행 때문이다. 골프는 일반적으로 4명이 1팀을 이뤄 라운딩을 하는데, 회원권을 소지했을 경우 한 명당 그린피와 캐디 비용 등 대략 20만~25만원의 비용이 든다. 1팀당 총 비용은 100만원 안팎이다. 주말마다 골프를 친다고 가정하면 기자 1인당 한 달에 80만~100만원이 나가는 셈이다.

빤한 기자 월급에 이를 전부 부담하며 골프를 치는 기자들은 없다. 모든 경비는 '주최 측'인 취재원이 부담한다.

국내 대기업 홍보부서에서 13년간 근무하다 지난 2004년 퇴임한 전직 임원을 통해, 보통 기업들의 1년 골프 접대비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들여다봤다. 이 임원의 2003년도 '다이어리'는 주말마다 기자들과의 골프 부킹 일정으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이 임원이 직접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회사 내 본부장급 이상 임원들과 기자들간의 부킹이 주를 이룬다. 이 기업 임원들은 2003년 5월 한 달 동안에만 기자들을 상대로 총 15회 접대골프를 가졌다. 주당 평균 4회 꼴이다. 소요된 비용은 모두 1300만원. 1년 중 한겨울과 한여름을 제외하고 8개월 이상 골프를 친다고 가정했을 경우 1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다.

위 대기업 전직 임원은 "본부장들의 경우 보통 1달에 한번 정도 나가지만 나처럼 홍보이사의 경우 3번 이상 나가는 것이 보통"이라며 "이쪽 업계에선 홍보이사 부인을 우스갯소리로 '골프과부'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또한 특정 매체와 따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출입처에서 1년에 한두 차례 이런저런 행사를 명목으로 출입기자단을 대동하고 골프장을 가는 경우에는 보통 행사비용이 10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이 때에는 아예 'OO골프대회'라고 이름까지 짓고 주최 측에서 각종 상을 만들어 가장 잘 친 사람부터 못 친 사람까지 두루 상품이 돌아가게 한다.

"기자 골프 접대비가 전혀 아깝지 않다"

매년 기자 골프접대에 드는 비용이 적지 않은 규모임에도 기업들은 이를 아까워하지 않는다. 결코 반대급부 없이 호의를 베푸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기업 두 곳에서 홍보담당 임원을 지낸 뒤 지난해 홍보대행사를 직접 차린 A씨는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기자에게 자기 회사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해당 기자가 그 내용을 정확하게 보도해줄 경우 이 과정에 드는 비용은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기업체 홍보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골프 접대를 하는 것이 그 어떤 접대보다 비용대비 홍보효과가 가장 크다"고 말한다. 당장에 득이 되는 것이 없더라도 해당 언론사와 골프를 통해 끈끈한 친분을 형성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기자들이 공짜로 골프를 치는 것도 문제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기자들의 접대골프가 취재와 기사쓰기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기자들은 골프를 통해 고급 취재원의 중요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반대로 기업 입장에선 자사에게 불리한 기사를 적절한 선에서 막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접대골프다.

취재과정에 만난 전직 대기업 홍보임원이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이 기업에서 개발한 신제품에 심각한 결함이 발생한 적이 있다. 한 방송국 기자가 이를 확인하고 취재에 들어갔다. 취재와 보도를 막기 위해 이 홍보임원은 관련 기자에게 매주 골프부킹을 주선하고 라운딩을 돌면서 직접 로비까지 펼쳤다. 그리고 나서야 겨우 보도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안병찬 경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자들이 골프를 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접대골프를 통해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취재와 기사 작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관계로 변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기자실 텔레비전은 뉴스에서 골프 프로그램으로 바뀌고

ⓒ 오마이뉴스 고정미
월요일 아침 기자들과 홍보실 직원이 기자실 옆 휴게실에 모이면 늘 골프 이야기로 주말 안부를 묻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금융감독원, 증권선물거래소 등 경제·금융관련 기관이 모여 있는 여의도 주변의 골프연습장은 오후 4~5시쯤이면 일찌감치 기사를 마감한 이들 출입처 기자들로 가득 들어찬다.

오전까지 뉴스프로그램으로 고정돼 있던 기자실 내 텔레비전 채널은 점심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골프프로그램으로 바뀐다. 홍보실 직원과 기자들은 종종 이를 같이 보면서 허공을 향해 스윙 연습을 하고, 서로의 자세를 교정해 주기도 한다. 이처럼 이미 골프는 기자들 사이에서 일상화된 지 오래다.

기자 입장에서 보자면 골프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 우선 골프를 치는 이들이 주로 고위 공직자나 기업 임원급들이기 때문에 고급정보를 골프장에서 얻을 수 있다. 보통 4시간 이상 취재원과 함께 걸으며 라운딩이 끝나고 나면 사우나를 같이 하고 점심식사에 간단하게 술도 곁들인다. 한번 골프를 같이 치면 5~6시간은 기자와 취재원이 꼼짝없이 붙어 다니는 셈이다.

기업이나 취재원 입장에서도 술자리 접대보다 여러모로 이점이 많다. 우선 술자리 접대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데다 건강을 챙기기에도 좋다. 여기에 룸싸롱 등의 고가 향응접대가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골프접대로 이어진 '풍선 효과'도 있다.

문제는 골프를 대하는 기자들의 인식이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무엇보다 골프를 접대로 생각하지 않는 기자들의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평소 골프가 취미인 한명규 <매일경제> 편집국장은 "후배 기자들 사이에서 골프를 접대로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데, 기자들이 먼저 자정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이 하면 불륜, 기자가 하면 로맨스?

물론 기자가 골프를 친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골프가 아직까지는 대중 스포츠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곧 기자가 골프를 쳐서는 안 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고위 공직자들이나 정치인들도 누구든 골프를 즐길 수 있다.

다만 제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공짜로 치는 것이 문제다.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여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대가성이 따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언론도 예외일 수 없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취재원과 함께 하는 접대골프는 객관적이고 사실 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며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공직자는 접대골프를 치다 적발되면 처벌을 받는데 언론인은 예외라는 점"이라고 밝혔다.

우리 언론은 언제까지 공짜 접대골프에 대해 눈을 감을 것인가. 먼저 자기 스스로에게 떳떳해야 비로소 남의 흉허물에 대해서도 준엄하게 비판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는 점을 우리 언론은 언제쯤 깨달을 것인가. 기사 서두에 언급한 <부산일보> 정상섭 부장의 칼럼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나 자신부터 반성하며 되돌아본다. 초대든, 세미나든, 그 어떤 명목으로도 내가 돈을 내지 않는 골프는 치지 않겠다고…. 한국기자협회에도 제안한다. 골프 접대 실태 조사 및 골프 접대 안 받기 서명운동을 벌이는 게 어떤가. 이번 골프 파문의 책임을 정치인과 기업인에게만 묻기에는 우리 언론의 잘못과 위선이 너무도 크지 않은가."

이러한 자기 반성은 비단 정 부장만의 몫이 아님에도 많은 언론인들이 침묵하고 있다. 이제 그 '침묵의 카르텔'을 깨야 할 때다.

"여기 오는 기자의 80% 이상은 내기골프"

이해찬 전 국무총리 사퇴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라스베이거스' 방식의 내기 골프 의혹이다. '라스베이거스'는 일정 금액의 판돈을 홀별로 배분해놓고 홀마다 이긴 사람이 가져가는 '스킨스게임' 방식의 일종이다.

'스킨스게임'은 홀마다 가장 낮은 타수를 친 사람이 상금을 가지는 반면 '라스베이거스'는 2명이 팀을 이뤄 타수를 합쳐 이긴 쪽이 상금을 차지한다. 이 전 총리 일행은 지난 3·1절 골프에서 판돈으로 총 40만원을 건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들이 골프를 칠 경우에도 대부분 '스킨스게임' 방식의 내기 골프를 친다. 국내 최대 규모의 레이크사이드CC(54홀)의 정필윤 노조위원장(코스관리부)은 "이 곳에서 골프를 치는 기자들 대부분이 내기골프를 친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내기골프의 경우 그 자리에서 현금이 오고가기 때문에 캐디들은 금방 알 수 있다"며 "기자들이 포함된 팀의 경우 80% 이상이 내기골프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레이크사이드CC의 경우 주말 예약인원의 90% 이상이 고위 공직자, 판검사, 전직 장관, 지역 유지들"이라며 "기자들 예약비중은 10%남짓 된다"고 덧붙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