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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거주민들이 수용된 수용소.
불법거주민들이 수용된 수용소. ⓒ asyl.at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스트리아의 불법거주자들은 영주권자와의 결혼 등을 통해 거주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새롭게 수정된 '거주법안'에 따르면 설사 결혼을 했다고 해도 불법거주 사실이 밝혀지면 무조건 추방 절차를 밟게 되며 거기에 따르는 집행 비용도 추방자 본인이나 배우자 등이 부담하게 된다.

오스트리아는 정치적 중립국가로 정치 사회적인 이유로 조국을 떠나온 많은 망명자들이 선호하는 나라다. 또 비엔나는 캐나다의 밴쿠버와 함께 매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힐 정도로 삶의 질이 높고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 최근 아프리카인들과 아시아인들의 불법 이주가 늘고 있다. 불법 이주를 막으려는 오스트리아 정부의 의지가 거주법안의 강력한 수정으로 나타난 것.

때문에 필리핀 출신 애니의 경우, 시민권자와 결혼한다 해도 지난 몇 년간 불법 거주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에서 살지 못하고 강제 추방된다.

강력해진 오스트리아의 망명·이주 정책의 첫번째 희생양은 바로 중국인 쥬오 유에잉(37)이었다.

생이별 부부 쥬오 유에잉과 아돌프 브리히타

오스트리아의 거주법안으로 생이별을 하게 된 쥬오 유에잉과 아돌프 브리히타 부부.
오스트리아의 거주법안으로 생이별을 하게 된 쥬오 유에잉과 아돌프 브리히타 부부. ⓒ SOS Mitmensch
중국 원저우(溫州) 출신의 쥬오 유에잉은 5년 전인 2001년 오스트리아에 입국해 불법거주하다 2005년 5월 웨이터 출신인 오스트리아인 아돌프 브리히타(41)와 결혼했다. 브리히타와 쥬오는 결혼 후 당국에 합법적인 거주허가신청을 냈지만 계속 지연되다 새로운 불법거주자법이 실시되는 2006년 초에 결국 기각됐다. 기각과 동시에 쥬오 유에잉은 '공식적인' 불법거주자가 됐고 새로운 거주법에 따라 강제 추방된 첫 사례가 됐다.

브리히타와 달콤한 결혼 생활을 꿈꾸던 쥬오 유에잉에게 감옥살이와 추방이라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거주허가가 기각되자마자 쥬오 유에잉은 경찰에 연행돼 한 달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감옥살이가 끝난 지난 3월 16일 쥬오 유에잉은 공항으로 이송돼 경찰 2명의 감시 아래 모스크바를 거쳐 중국 베이징으로 추방됐다.

추방 당시 그녀 수중에는 면회 왔던 남편 아돌프가 쥐어준 100유로뿐이었다. 그 돈으로 쥬오 유에잉은 동생이 살고 있는 저장성(浙江省)의 작은 도시 하이커우(海口)로 가는 기차표를 구입했다. 20년 전 어머니는 고인이 됐고 2달 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떴기 때문에 그녀가 머물 수 있는 중국 땅은 동생 집뿐이었다.

불법거주자? "갈 때 가더라도 돈은 내고 가세요"

한편 오스트리아에 남은 남편 아돌프 브리히타에게도 벼락이 떨어졌다. 쥬오 유에잉이 추방된 지 일주일 뒤인 22일 오스트리아 외사경찰은 남편인 브리히타 앞으로 6079유로(한화 약 760만 원)를 지불하라는 청구서를 보냈다. 내용인즉, 쥬오 유에잉의 베이징행 항공권 구입비와 그녀와 베이징까지 동행한 외사경찰 2명의 비엔나-베이징 왕복 항공권 2장 구입비인 6079유로를 14일 안인 4월 6일까지 내라는 것.

전직 웨이터인 아돌프는 현재 실직 상태로 6079유로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상태다. 그는 <데어 슈탄다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내의 자유의지가 아닌 국가의 추방에 왜 내가 돈을 지불해야 하고 경찰의 항공비까지 지불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나는 현재 6079유로를 2주 안에 지불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쥬오 유에잉과 아돌프 브리히타를 돕는 민간단체 SOS동포 홈페이지.
쥬오 유에잉과 아돌프 브리히타를 돕는 민간단체 SOS동포 홈페이지.
이러한 경찰의 조치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데어 슈탄다드>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외사경찰의 항공비 청구에 대해 "당국의 정말 치사하고 징그러운 행위"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빌프리드 코바르닉 경찰행정국장은 25일 <데어 슈탄다드>와의 인터뷰에서 "추방과 관련한 비용 청구는 합법이며 청구서는 앞으로 계속 교부될 것"이라며 "이런 사건의 95%에 해당하는 청구가 모두 회수됐다"고 대답했다. 오스트리아는 거주법안이 개정되기 이전에도 거주심사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추방비용을 부담시켜 왔다.

현재 오스트리아의 인권단체 'SOS 동포'(SOS Mitmensch)는 생이별을 하게 된 쥬오 유에잉과 아돌프 브리히타를 돕는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단체는 "모금액은 경찰의 청구비를 갚고 브리히타를 아내가 있는 중국에 보내는 항공권 등을 구입하는 일에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쥬오 유에잉 오스트리아 재입국, 아직은 불투명

이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쥬오 유에잉의 재입국은 불투명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쥬오 유에잉의 재입국이 '불확실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변호사 슈테판 베어버거는 "오스트리아인과 이미 결혼한 쥬오 유에잉의 추방은 매우 불공정했다"며 "그러나 그녀가 무비자로 오스트리아에 머무는 동안 강제노동수용소에 가라는 중국 당국의 지시를 두려워해 과거에 망명을 청원한 적이 있어 영주권자와의 결혼 사실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즉 쥬오 유에잉이 아돌프 브리히타와 결혼한 이유가 사랑이 아니라 망명, 즉 오스트리아에서 살기 위한 의도적인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

녹색인권단체의 테레지아 스토이시츠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올해 초 당국의 강력해진 거주법안으로 불법거주자의 강제수용이 2005년에 비해 40% 이상 증가했다"며 "새 법안에 따라 불법거주자들 대부분이 추방될 예정이어서 외사경찰이 쥬오 유에잉에게만 예외적인 선처를 베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긍정적인 전망도 있다. 즉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국외에 있는 오스트리아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합법적으로 비자를 신청할 경우 거주 허가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 이러한 가능성을 알게 된 아돌프 브리히타는 오스트리아로 쥬오 유에잉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떠났다. 쥬오 유에잉은 자신을 찾아 하이커우에 온 오스트리아 일간지 <데어 슈탄다드> 기자에게 "남편이 상하이(上海)에 도착하는 대로 서류를 작성해 오스트리아영사관에 가서 비자 신청을 할 것"이라며 "비엔나에 꼭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국경 없는 부부 "우리 그냥 살게 해주세요"

오스트리아로의 망명을 돕는 기구 Asyl Austria 홈페이지.
오스트리아로의 망명을 돕는 기구 Asyl Austria 홈페이지.
결국 28일 아돌프는 중국 상하이에 도착해 아내 쥬오 유에잉과 감격적으로 상봉했고 다음날 29일 상하이 주재 오스트리아 영사관을 방문해 결혼증명서 등 비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했다. 약 2주간 생이별해야 했던 이들 부부는 상하이에서 함께 한 시간들이 "꿈만 같다"며 "제발 우리들이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영사관 비자 담당자에게 긍정적인 검토를 부탁했다.

그러나 비엔나의 비자심사과 MA 20의 베아트릭스 호른샬 국장은 "쥬오 유에잉 건이 아직 완전히 종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거주허가 신청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검토될지 의문"이라며 "그녀를 대변하는 변호사나 그룹이 첫번째 거주허가 신청 당시 합법적이면서도 인간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패기만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다소 모호한 입장을 밝혔다.

어쨌든 쥬오 유에잉의 사연이 알려진 후 오스트리아의 미디어들은 '국경 없는 부부'에 대해 조명하고 나섰다. 사회는 물론이고 가정도 점점 세계화되어 국경이 없어지고 있는 가운데 불법거주만을 이유로 한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는 작은 사회를 파괴하는 것과 같다는 것. 여론은 정치적 망명이나 불법 거주, 이주 등의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가정을 보호하고 악용될 여지를 줄여나갈 수 있는 법안과 제도가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쥬오 유에잉이 재입국에 성공해 남편과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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