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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는 정치인이 되기로 했지만 아직 정치인이 아니었다. 어쩜 그는 끝까지 정치와 정치가 아닌 것의 경계선에서 서성일지도 모른다. 혹자가 말한 것처럼 가장 비정치적인 인물이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 1위를 달리는 것은 한국 정당정치의 '희극'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강금실의 '비밀'이 있다.'

5일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과의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의 머리를 맴돈 어렴풋한 생각이다.

경계선 위에 서다

인터뷰는 출마 기자회견이 끝난 뒤 바로 이어졌다. 그의 선거캠프가 있는 서울시 신문로 근처의 한 갤러리 카페에서였다.

그는 날씨 얘기부터 꺼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우리 정서를 지배하는 것은 햇볕 아닌가." 서울시장 선거를 봄맞이 대축제처럼 치르고 싶다는 그의 원대로 이날 날씨는 완연한 봄이었다.

그의 기자회견은 낯설었다. 극장이라는 장소, 보랏빛이라는 장식 때문이 아니라, '언어' 때문이다. 그는 사적인 사이에서나 통할 법한 '관계의 진정성', 책에서나 접하는 '주체성', 종교생활에서나 언급되는 '포용성' 등 각종 개념어들을 선거 기조라며 내놓았다.

"정치문화에서 배제된 정서적 어법, 사람들이 되돌아볼 수 있는 어법을 썼다. 없는 말을 일부러 쓴 것이 아니다. 제가 원하는 변화를 위해 그렇게 했다. 정서적 표현과 정치철학에 관한 것들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게 정치의 출발이 아닌가 생각한다."

삶에서 너무 먼 정치를 가까이 당겨놓기 위해 지금으로선 멀리 있는 언어들을 쓸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현실이다. 그는 자신의 이같은 시도를 '실험'이라고 했다. 창조적 실험인 만큼 위험한 실험이기도 했다.

"정치 패러다임을 바꾸는 문제를 고민하자고 던지고 싶었다. '왜 정치를 욕하냐. 어떤 정치를 원하는데?' 그런 얘기들이 쏟아져 나와야 서울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 그런 것을 선거 과정에서 대화하고 토론하고 싶다."

자신에 대한 실험이기도 했다. 판사·변호사로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전 국민이 아는 정치인이 돼버린 그였다. 주변에선 '예전의 강금실 아니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별로 못 들었다. (옆에 있던 조광희 변호사는 '그게 장점이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제가 공직을 정치의 장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인 것이다. 그 중심이 흐트러지면 안된다. 어찌 보면 나 자신에 대한 나의 실험인지도 모른다."

"뱃속의 애가 자라는 느낌... 나는 나아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는 법무부장관직을 고민 끝에 수락한 배경에 대해 '노무현 정부를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선 "참여정부에 실망한 분들을 위해 역할을 하고 싶다"며 "새로운 대안으로서 정치, 희망찾기"라고 말한다.

"너무 짧은 시간에 진행되곤 있지만 제 스스로 진화해 가는 생물 같다는 느낌이 든다. 뱃속의 애가 점점 자라는 느낌이다. 계속 앞으로 두달 간 변화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제가 나아지는 걸 보니까 잘한 선택이 아닌가 싶다."

출마와 불출마를 오갔던 그의 고민은 이제 확실히 완료된 인상이었다. 정치와 비정치(삶)의 '경계 허물기'에 돌입한 강 전 장관의 괘적을 따라가 봤다.

- 대중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코미디야, 코미디'라는 말을 했는데, 왜 그 코미디판으로 들어가려 하나.
"한번 실천해보고 싶었다(웃음). 정치의 경계선을 긋고 '그 곳은 갈 곳이 못 된다'는 우리 안의 금기가 있다. 가면 '너도 결국 가는구나'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받고. 저도 그 금기선 앞에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짧지만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누군가 깨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 그런 권유를 받았고 '그럼 한 번 깨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하는 것보다 해보고 죽자는 쪽으로….(웃음)"

'정치가 지겹다' '희망이 없다' '뭔가 좀 바꾸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시민의 일상 속에서 바꿔나가자는 생각이 많아졌다. 어떤 체계적 사고를 정해놓고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국민의 입장에서 바꿔나갈 수 있는 미시적인 접근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정치학 용어를 빌자면 '하이 폴리틱스(high politics)에서 로우 폴리틱스(low politics)로'"

- 구체적으로 삶을 바꾸는 시정은 뭔가.
"이미 그런 연구들이 쌓여있다. 가령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에 대한 찬반 양론이 있지만, 시민들에게 굉장히 감동을 준 이유가 바로 일상적 감수성에 와닿은 것이다. 콘크리트 바닥과 고가도로만 있던 거리에 물이 흐르고 그림이 걸리고 산책로가 생겼다는 자체가 시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우리 어릴 땐 한강에 가서 맨날 수영했다. 그런데 지금은 한강이 무지 멀어졌다."

- 정치나 권력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상을 줬다.
"법무부장관을 끝내고 내가 해야할 일이 뭔지 생각하게 됐다. 과거로 복귀하긴 어려웠다. 장관 경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요청들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 문제가 생겼다. 개인적으로 2~3년 더 정리하고 지식을 충전하고 싶었다.

사실 불출마를 여러번 고민했다. 1월 말까지 고민하고 불출마든 출마든 답을 내겠다고 말했다. 고민이 길어진 것은 열린우리당 전당대회(2월 18일) 때문인 점도 있다. 그 전에 (불출마) 입장을 밝히면 남의 잔치에 찬물을 끼얹는 격 아니냐."

- 전당대회만 없었다면 1월말 불출마 선언을 했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웃음).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변의 적극적인 의견을 듣다보니까 출마 결심이 섰다."

"열린우리당 전당대회 아니었다면 1월말 불출마 선언"

ⓒ 오마이뉴스 이종호
- 돕겠다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인선 기준은 뭔가.
"주변에선 '왜 이렇게 꾸물대고 있냐'고 걱정한다. (출마를) 결심한 후 짧은 시간 준비하면서 굉장히 사람 중심으로 가고 있다. 제가 말한 것을 훼손하지 않고 가려면 같이 일하는 사람이 나와 같지 않으면 어렵다. 특히 초창기 때 한사람 한사람이 굉장히 중요하다.

(내 선거팀은) 정치인과 비정치인이 섞인 조직이다. 당의 기존 조직이나 후보 개인의 조직을 따로 갖지 않고 당에서 온 사람과 밖에서 온 사람들이 같이 팀을 이뤘다. 그래서 호흡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한데 짧은 시간에 하려니 쉽지 않다. 이런 식의 선거팀은 선거 역사상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큰 실험이다."

- 대중적 인기를 한몸에 받은 대한민국의 성공한 여성 중 한명이다. 강 전 장관도 '약자'로서 여성의 존재감을 느낄 때가 있나.
"저 역시 아버지 문제나 가족사, 결혼생활이 빚으로 인해 깨어지는 과정, 빚이 남은 후유증 등 괴로움을 많이 겪고 사는데,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어떻게 사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는지를 서로 이해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있는 위치에 따라 체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각자의 입장이나 지휘에서 접근하면 약자는 약자대로 강자는 강자 나름대로 편견을 가질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이해는 체험에 따라서 많이 달라진다. 시장이 되려면 서민들, 소외된 분들을 많이 만나야 한다."

- 강 전 장관에 대해 '정서적 소통에 치중한 나머지 구조나 제도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헌신은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참 사람은 권력적 존재다.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려면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주의가 망한 근본 원인은 거기에 있다고 본다. 권력은 자기 것을 남에게 확장시키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옳다'는 것이 권력이다. 자기가 옳다는 근거가 뭐냐. 집화된 권력욕은 제도가 정당성을 독식하고 자기가 믿는 것을 강요하는 현상으로 가기 쉽다.

70~8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을 하는 분들이 바로 옆에 있었다. 그런데 내가 운동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회의가 자꾸 남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전 남편과 결혼해서 살 때, 운동권 사람들이 많이 와서 우리집에서 살았다. 그런데 우리 친정어머니가 '옷이나 깨끗이 입고다니지' '왜 방은 안 치우는 거야'라고 그들과 부딪쳤다. 그들의 이론으로 그게 포용이 안되더라."

그 시절, 그가 운동을 할 수 없었는 이유

- '여자 노무현'이란 이야기는 못 들었나. 굉장히 신선한 이미지를 선택했지만 미리 실망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실망을 안 주는 사람이 있을까? 성자가 아닌 이상. 민주화가 진전됐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처럼 권력관계에 많이 매여있는 나라는 없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가 여건상 어렵다.

노 대통령이 실망을 줬다면 참여정부가 구성된 뒤에도 경제·계급적인 문제나 도식적인 삶이 아닌 풍요로움에 대한 섬세하고 폭넓은 설득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 경우 반대로 말할 수 있다. 정서적으로 그런 접근이 가능하다. 반면 추진력이 떨어질 수 있다. 설득하며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가 '굉장히 좋다'고 하는 순간 추진력이 굉장히 높아질 수 있다. 기본을 바꿔나가는 데 동의가 되면 그 다음은 쉽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법무부에서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사람들이 정확히 모른다. 어떤 성과와 한계가 있었는지 분석 없이 '이미지 정치'라고 비난한다. 내용이 뭔지 들여다보려고 했나. 정작 내용에는 관심없는 사회가 아닌가. 그런 기초작업이 이뤄지는 사회로 가는 데 조금 기여할 수 있었으면 했다."

- 김종철 민주노동당 후보가 강 전 장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서울시 산하기관이 비정규직을 과다 사용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입찰을 제한해야 한다는 제도를 실행할 의사가 있는지.
"굉장히 재미있는 지적이다. 시정 조직을 파악한다면 괜찮은 대안을 만들어 갈 수 있겠다."

- 로비스트 김재록과의 만남에서 꺼릴 것이 없나.
"전혀 없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갈 것이다. 그런데 사실 자체가 너무 엉터리라서 대응을 안한다. 공당에서 사실 확인도 안하고 발표하는지 모르겠다."

강금실의 춤... "죄책감 갖고 쉬쉬하며 배웠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명박 서울시장의 '강 전 장관이 노는 것, 춤추는 것 좋아하니 서울시 공무원들은 매일 놀 수 있지 않겠냐'는 발언으로 한 때 정치권에 파문이 일었다.

'춤추는 강금실'에 대한 언론의 시선도 그닥 곱지 않다. 강 전 장관에게 춤은 뭘까? 그는 대뜸 "제가 추는 춤이 뭔지 아냐"고 되물었다.

"70년대 한국에 명무전(북춤)이 유행이었다. 새마을운동 때 춤이 다 죽어버렸는데 곳곳에 숨어있는 춤꾼을 발굴해서 서울무대에 명무전을 올렸는데 굉장히 화제였다. 그 때 나온 분이 이매방 선생이다. 제가 그 춤을 보고 굉장히 감명을 받았다. 춤은 아주 직접적으로 사람의 영혼을 건드리는 흥이 있다. 그 감동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렇게 보고 또 보면서 "나도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1985년경 내가 너무 힘들었을 때"였다고 한다.

"나는 판사를 하고 있었는데 김태경(전 남편)씨는 독재정권 시절 운동권으로 구속되었다. 양쪽의 영역을 걸쳐 있는 삶을 살면서 판사로서 심리적 부담이 컸다. 법원에 여자도 별로 없었을 때다. 출구가 필요했다. '내가 춤을 춰도 되나?' 죄책감을 갖고 배웠다. 남들은 (사회변혁)운동을 하는데. 나는 쉬쉬하면서 춤을 배웠다.

한국 춤은 사람을 정화시키는 기능이 있다. 승무 같은 경우는 요가보다 호흡이 더 깊다. 느린 여섯 박자에 호흡 한 번이다. 사람들이 많이 하면 좋겠다. 요새는 거의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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