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의 저자 케네스 데이비스의 말을 들어보면, 미국인들의 역사에 대한 인식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진실의 겉모습은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 우리의 역사 인식은 흔히 신화와 오해로 왜곡되거나 상처를 받거나 절단이 나버리곤 한다. 이러한 미국적 신화들을 만들어낸 책임은 주로 역사를 단순한 이미지로 깔끔하게 포장해놓은 학교들에 있다. 미국에는 늘 정신질환을 앓는 이모 사진을 가족 앨범에서 떼어내려는, 요컨대 과거의 어두운 부분은 지우려는 경향이 있었다. … 우리의 역사적 소양은 대중 문화에서 만들어낸 이미지들 때문에 더욱 불균형하게 된 측면이 있다." (18쪽)
케네스 데이비스는 이렇게 미국인들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형편없게 된 까닭을 학교의 지루하고 단순한 역사 수업과 대중 문화에서 찾고 있다. 한편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 자신이 했던 발표를 지루하고 하찮아 보인다는 선생님의 평에서 교훈을 되새겨(!) 되도록 흥미 있는 미국사를 집필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이 책은 작은 소제목을 질문으로 쓰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설명하는 식으로 미국 역사의 중요한 장면과 인물, 에피소드들을 보여주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연대순으로 쓰인 셈이지만 독자들이 흥미로워하고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주로 다루고자 함일 것이다.
케네스 데이비스의 독자들은 그를 진보적이고 반(反)기업적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는 미국의 밝게 빛나는 역사만을 노래하는 앵무새가 되지 않고 더럽고 그늘진 미국의 다른 면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했을 뿐, 지나치게 급진적이거나 과격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는 미국의 개혁적인 사건들과 사회 운동들이 대부분 아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영웅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미국의 영웅들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아니고 보통의 미국인들처럼 모순덩이의 인간임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케네스 데이비스는 이 책에서 미국사의 첫 장을 열면서 그 장의 제목을 '위대한 신세계'라고 이름 붙인다. 그리고 우리도 잘 알고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첫 장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 책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신화적인 이름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그의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모습도 보여준다.
게다가 크리스토버 콜럼버스가 미국에 처음으로 '도착'한 것도 아닌, 처음으로 '발견'했다는 말을 상당히 불쾌하고 의심스럽게 생각할 독자들을 위해서 "맞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은 인디언이다. 그들은 어떻게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했을까?"라는 질문에 다양한 고고학적, 인류학적 견해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처음 아메리카 대륙에는 아시아에서 건너온 인디언이 살았으며 그들의 문명은 오늘날 잘못 알려진 것과는 달리, 유럽문화에 뒤지지 않는 문화를 가진 부족들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다양한 고고학적 견해들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전에 노르웨이 쪽의 탐험가들이 먼저 아메리카에 닿았으며 그들은 콜럼버스보다 500년 앞서 식민지를 건설했다고 한다.
최근의 9·11 테러와 그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대응까지를 다룬 이 책은, 물론 '미국의 모든 것'을 다루지는 못했지만 '미국의 많은 것'을 다양한 시각으로 들춰내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1등 국가를 내세우는 미국의 신화와 아메리칸 드림, 그 영광 뒤에 그늘진 인종 차별과 인디언 학살, 미국의 오만을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담아냈다. 그 모든 영광과 오욕의 세월이 미국의 어제와 오늘이기 때문이다.
친미 내지 숭미적 시각이 사회 교과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한국의 모습과 반미를 뜨겁게 부르짖는 한국의 모습은 모두 진실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싫으면 다른 나라로 망명하면 되지만 미국의 대통령이 싫으면 망명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는 어느 저널리스트의 말도 허언은 아니다. 그러기에 당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미국 사회와 미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영어를 목숨 걸고 익히는 일만큼이나, 절박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