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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녹색바구니. "나는 녹색지구를 사랑하는 한국아줌마!"
문제의 녹색바구니. "나는 녹색지구를 사랑하는 한국아줌마!" ⓒ 한나영

우리 집 분리수거용 녹색 바구니가 사라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쓰레기 수거함 앞에 놓여 있던 바구니였다.

이곳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에서는 매주 월요일이면 분리수거차가 와서 녹색 바구니 안의 재활용품(플라스틱·병·캔 등)을 수거해간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에는 수거차가 오지 않았다.

다음 날이라도 혹시 가져갈까 하여 나는 바구니를 수거함 앞에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이번 주는 미화원도 학생들처럼 봄방학이라도 맞이한 건지 주중 내내 다녀가질 않았다. 그래서 우리 집 바구니만 수거함 앞에 외롭게 놓여 있었다.

함부로 버린 재활용 쓰레기들.
함부로 버린 재활용 쓰레기들. ⓒ 한나영
내가 사는 타운하우스는 세대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우리처럼 녹색 바구니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냥 함부로 버리는 경우가 많다. 환경을 생각한다면 자원 재활용을 위해 분리수거를 해야 할 텐데 말이다. 한국에서처럼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 하면 벌금이라도 물리던가 해야지 왜 그냥 내버려 두는지 알 수가 없다. 불법주차는 눈 깜짝할 새에 벌금을 물리면서….

그나저나 며칠이 지난 뒤에야 나는 우리 집 바구니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바구니 치웠어?"
"아니."
"요 며칠 동안 멀쩡하게 있더니만 어디로 사라진 거야?"

없어진 바구니를 찾는다고 남편이 쓰레기 수거함 주변을 살피고 왔다. 하지만 안 보인다고 했다.

"아니, 재활용 물건만 잔뜩 들어있던 허접 바구니를 누가 가져간 거야?"

이번에는 내가 쓰레기 수거함 주변을 살폈다.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거함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아뿔싸', 쓰레기 더미 사이로 녹색 바구니가 비치는 게 아닌가.

'뭐야, 누가 멀쩡한 우리 집 바구니를 버렸어?'

쓰레기 수거함 안에서 바구니를 발견했지만 빼낼 수는 없었다. 수거함 입구가 좁아서 사람이 들어갈 수도 없었고 바구니 위에 이미 다른 쓰레기들이 덮여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중에 쓰레기 수거차가 오면 바구니를 구하기로 했다.

쓰레기 수거함. 일단 들어간 쓰레기는 다시 빼낼 수 없다.
쓰레기 수거함. 일단 들어간 쓰레기는 다시 빼낼 수 없다. ⓒ 한나영
마음대로 쓰레기 버릴 수 있어서 좋은 나라

재활용을 위한 분리수거용 녹색 바구니는 작년 여름에 시청에 직접 전화를 해서 받은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 이미 한국에서 철저하게 분리수거 훈련을 받은 '한국아줌마'가 아니던가. 그런 강훈련을 받은 한국아줌마, 재활용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이 곳 사람들의 행동에 화가 났다.

'아니, 하나뿐인 지구를 망칠 생각인가. 미국 땅이 오염되면 미국 사람에게만 화가 미치는 게 아닐 텐데.'

녹색당원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의 환경 의식은 갖추고 있던지라 나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분리수거를 하고 있던 이웃의 2564호 '꽃집아저씨'(틈이 날 때마다 꽃에 물을 주고 꽃을 잘 가꾸는 이 남자를 우리는 꽃집아저씨라고 부른다)'에게 물어 분리수거용 바구니를 신청했다.

물론 조금은 귀찮은 일이었지만 수고가 없으면 열매도 없는 법! 환경보존이라는 큰 열매를 위해 그깟 정도의 수고는 당연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꽃집아저씨'네 집이 있는 우리 동네
'꽃집아저씨'네 집이 있는 우리 동네 ⓒ 한나영
이 곳에 온 한국 아줌마들은 "신경 쓸 것 없이 쓰레기를 마음대로 버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처럼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살 필요도 없고 안 쓰는 물건도 그냥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에 오기 전에 나는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꽤 적잖은 돈을 써야 했다. 물론 쓸만한 건 고물상 등에 전화를 해서 가져가도록 했다. 하지만 대개는 신통찮은 반응을 보였다. 결국 동사무소에 가서 노란 딱지를 사서 버려야 했기에 제법 돈이 들어갔다.

물론 이 곳에서도 분리수거가 이루어지긴 한다. 하지만 강제사항이 아니고 우리와는 달리 가구 등의 큰 물건도 신고만 하면 마음대로 버릴 수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온 아줌마들이 편하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하여간 우리는 그동안 몸에 밴 습관대로 녹색 바구니를 받아 분리수거를 해왔다. 그런데 그 바구니가 없어져 버렸으니 어떡하나. 남편은 다른 집처럼 그냥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리자고 했다.

'그냥 남들처럼 편하게 살아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쓰레기 수거차가 왔다.

동양 아줌마, 백인남성에게 감동 먹였다

"쓰레기 수거차가 온 것 같아."

쓰레기 경고문이 새로 붙었다. 모든 쓰레기는 수거함 안으로 넣으라. 그렇지 않으면 25달러 벌금을 물린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바구니도 그냥 쳐넣은겨? 분리수거부터 잘 하자고요.
쓰레기 경고문이 새로 붙었다. 모든 쓰레기는 수거함 안으로 넣으라. 그렇지 않으면 25달러 벌금을 물린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바구니도 그냥 쳐넣은겨? 분리수거부터 잘 하자고요. ⓒ 한나영
그동안 호시탐탐 수거차를 주시하고 있던 터라 나는 아침을 먹다 말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대형 수거차는 기계로 쓰레기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녹색 바구니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운전석에 앉은 남자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랬는데 그는 인사를 하는 줄 알고 그냥 내게 손을 치켜 올렸다.

'어, 이게 아닌데.'

이번에는 다시 손을 입에 대며 할 말이 있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자 쓰레기를 다 치우고 난 남자가 차에서 내려 왔다.

"지난 월요일에 재활용 녹색 바구니를 여기 쓰레기 수거함 앞에 두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걸 수거함 안으로 던져 버렸다. 당신이 방금 치운 쓰레기 안으로 들어갔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
"시청에 전화해서 다시 받을 수 있다."
"작년에 이미 받았는데 다시 받을 수 있느냐?"
"지금 내게 설명한 것처럼 그렇게 말하면 줄 것이다.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방금 치운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줄 수 있다. 어떻게 해 주길 원하느냐?"
"그 바구니도 새 것이니 그냥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네가 쓰레기 더미 속으로 들어가야 하니 그게 미안해서…."
"오, 천만에."

친절한 환경미화원은 결국 쓰레기 수거차 안으로 들어갔다. 산처럼 높이 쌓인 쓰레기 더미 위에 올라선 그가 내게 승리의 V 사인을 보낸다. 바구니를 찾았다는 뜻이리라.

녹색 바구니를 들고 다시 아래로 내려온 백인 남자, 사람좋은 미소를 보이며 잘 되었다는 표정이다. 아울러 환경을 생각하는 동양 아줌마에게 감동을 받은 눈치다.

"땡큐, 나는 녹색지구를 사랑하는 아줌마다."

트럭 옆구리에 적힌 'Green Earth'를 가리키며 고마움을 표했더니 그도 활짝 웃으며 다시 운전석으로 올라갔다. 환경을 생각하는 녹색 아침이었다.

환경을 보호합시다. 우리집 옆에 핀 예쁜 개나리.
환경을 보호합시다. 우리집 옆에 핀 예쁜 개나리.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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