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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지쌈 준비완료!!
묵은지쌈 준비완료!! ⓒ 주경심
"요새 느그는 뭐 해서 묵고 사냐?"

저녁을 드셨냐는 저의 물음에 친정엄마는 오랜만에 맛난 저녁을 먹었더니 배가 불러서 문지방도 못 넘게 생겼다며 자랑이셨다. 육고기가 귀한 섬인지라 오랜만에 아버지랑 마주앉아 돼지 삼겹살이라도 구워 드셨나? 아니면 도다리 회를 썰어서 서로 권커니 받거니 복분자주를 동무 삼아 회 잔치를 벌이셨나?

찬이라고는 콩자반에 구운 김, 김치가 전부인 딸네집 밥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엄마는 한참을 "오랜만에 묵는 것 맹키로 묵었네"소리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토해내셨다.

'도대체 뭘 드셨길래."

이럴 때 친정집이 가까우면 택시라도 타고 달려가 저녁 찬이 뭐였는지 내 눈과 입으로 확인을 하고 오겠건만 하루종일을 달려도 막배가 끊겨버리면 뱃머리에서 첫배가 뜰 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어야 할 전라도 끝자락의 섬이니 섭섭하지만 귀로라도 배를 불릴 수밖에.

"엄마는 뭐 드셨는데요?"
"요새는 천지에 쑥이여, 냉이여, 달래가 나서는 묵을라고만 들믄 사흘밤낮을 뜯어 묵고도 남는 것이 묵을 것들이드라."
"그러니까 저녁에 뭐 드셨냐구요? 쑥국? 아니면 비빔밥?"
"어허, 왜 니도 묵고잡냐?"

말을 해놓고 나니 대충 때운 저녁이 허했던지 고향집에서 먹었던 젓국에 쓱쓱 무친 달래비빔밥도 먹고 싶고, 쑥국에 둥둥 떠다니던 새우살도 먹고 싶고, 된장에 팍팍 무친 냉이나물도 먹고 싶어졌다.

"느그 집에도 묵은지 남아 있지야?'
"그럼요 김 서방 없으니까, 김장김치가 그대로 남았어요. 애들이 김치를 먹어야 말이죠."
"니도 묵어 봣을 것이다, 요새 묵은김치를 씻거서 쌈장에 싸묵으믄 둘이 묵다가 둘이다 나자빠져부러도 안 모르냐. 긍게 내일은 황사도 심허당께 애기들 데리고 어디 가지말고 집이서 묵은김치나 싸묵고 놀아라 알었냐? 나는 인자 배 꺼추러 선창이나 나가봐야 쓰겄다. 끊어라."

김치를 씻어서, 참기름이랑 깨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쌈장을 넣고 싸서 먹는 상상으로 밤이 얼마나 지리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마자 저는 지난밤 엄마가 드시고 문지방도 못 넘으셨다는 그 묵은지쌈을 해서 먹었다. 고향의 맛이 듬뿍 묻어났다.

아마 이맘때쯤 채 먹지 못한 김장김치로 고민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묵은지쌈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오늘 저녁 우리집 저녁 메뉴는 꽁치조림이 추가된 묵은지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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