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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길입니다.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길입니다. ⓒ 이승숙
안개가 끼어서 그런지 앞 들판이 어슴푸레 보인다. 농부는 봄 농사 채비를 하는지 논둑에 들불을 놓는다. 바람을 타고 굼실대며 들불이 번져 나간다. 논둑이 꺼멓게 타들어간다.

마당가를 서성이던 내 가슴도 타들어간다. 오늘만 해도 세 번씩이나 마당에 나와서 서성대고 있지만 기다리는 그는 오지 않았다.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요즘 내내 그는 내 애를 다 태우다가 내가 지칠 때쯤이면 느지막하게 나를 찾아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서성대며 그를 기다리건만 그는 항상 기척도 없이 슬며시 나를 찾아온다. 그는 언제 온 걸까.

그는 내 오랜 친구다. 햇수로 벌써 20년 가까이 함께 했던 내 친구다. 그와 함께 아침을 시작했고 그가 있어서 한낮의 무료를 달랠 수 있었다. 그는 언제나 신선한 잉크 냄새를 풍기면서 나를 찾아왔고 어떤 때는 검정 잉크가 살짝 내 손에 묻어나기도 했다.

그런 내 친구가 요새 나랑 뜸한 사이가 되고 있다. 그를 기다리다 지쳐서 볼 일 보러 어디 나갔다 오면 그는 슬며시 추녀 밑에 던져져 있다. 오후 햇살을 있는 대로 그냥 다 받아서 색이 노랗게 바랜 그를 해가 설핏 기우는 저녁 무렵에야 펼쳐든다. 기대감에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 잉크 냄새는 간데없고 햇빛에 바래 바스락댈 거 같은 건조함만이 내 손에 전해져 온다.

그는 한겨레신문이다. 그가 처음 세상 빛을 보던 그 해부터 우리는 그와 함께 했다. 그의 배냇 웃음을 보며 기뻐했고 그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며 내 일인 양 좋아했다. 그런 그가 요즘 자꾸 멀어져 간다. 어떤 날은 늦은 오후에나 만나고 또 어떤 날은 아예 못 만날 때도 있다. 토요일과 공휴일엔 그를 만날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우린 그와 자꾸 멀어지고 있다.

시골로 이사오니 사람이 그리웠다

장독대 위에 돌멩이만 외롭게 있습니다.
장독대 위에 돌멩이만 외롭게 있습니다. ⓒ 이승숙
도시에서 살다가 몇 해 전에 시골로 이사를 했다. 시골살이가 풍요롭고 여유로워서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아쉬운 점도 좀 있었다. 그 중에는 속도가 느린 인터넷과 그리고 한낮이나 되어야 배달되어 오는 신문이 있다. 소통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신문과 인터넷이 느리니 성미 급한 사람은 제 풀에 지치기도 한다.

신문을 배달해 주는 집배원에게 좀 미안했다. 다른 우편물이 없는데도 신문 때문에 매일 우리 집을 일부러 와야 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명절이면 작은 선물을 준비하곤 했다.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한가한 우리 집에 유일하게 날마다 찾아오는 집배원이 나는 반갑기까지 했다. 낯선 사람이 오면 경계태세를 보이며 짖어대던 우리 집 개들도 낯이 익은 집배원에게는 한 눈을 감아주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집 안 마당으로 들어와서 신문을 전해 주었다. 그러다가 서로 차차 편리한 점을 찾게 되었고 그래서 나중에는 집 들머리에 있는 장독 위에 우편물을 놓아두게 되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면 집 안으로 들어와서 비 안 맞을 곳에 두지만 날이 좋은 날은 장독 위에 두고 갔다.

신문을 가지러 나가보면 우편물 위에 꼭 돌이 하나 얹혀져 있었다. 그 돌을 치우고 우편물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 다음 날에도 돌이 얹혀져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돌은 바람에 우편물이 날아갈까 봐 일부러 얹어둔 돌이었다. 나는 그 돌을 보면 늘 기분이 좋았다. 사소한 것에도 세심하게 마음을 쓴 우리 동네 집배원의 마음이 보여서 좋았다.

집배원이 우편물을 놓아두고 가던 장독대
집배원이 우편물을 놓아두고 가던 장독대 ⓒ 이승숙
신문을 바꾸시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우편물이 안 마당 추녀 밑에 던져져 있는 거였다.
'어? 이게 왜 여기 있지?'
그런데 변화는 그거만이 아니었다. 그 전에는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는 신문이랑 우편물이 배달되어 왔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오후 2시가 되어도 감감무소식인 거였다.

참다못해서 우체국으로 가서 물어봤다. 그랬더니 집배원이 바뀌어져서 그렇단다. 그 전 집배원은 우리 동네부터 시작해서 배달을 했는데 바뀐 집배원은 다른 동네를 다 거쳐서 마지막으로 우리 동네로 오기 때문에 그렇게 늦게 배달이 되는 거란다.
그러면서 그랬다.
"신문을 바꾸시죠. 중앙일보는 지국에서 바로 배달하기 때문에 늦게 오는 일이 없던데 한겨레신문은 보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우편으로 오니까 그렇지요."
그랬다.
아, 내 오랜 사랑을 어떻게 모른 체 하란 말인가.

도시는 새벽에 바로 코앞에까지 신문을 배달해 주는데 우리는 신문이 아니라 구문이 다 되도록 오후에나 가져다준다. 그것도 토요일과 국경일 같은 휴일에는 우체국이 쉬기 때문에 아예 신문이 배달이 안 된다. 그런데도 우체국을 거쳐서 온다는 그것 하나 때문에 구독료 12000원에 배달료 2000원을 더 보태서 낸다. 이런 불편들을 다 감수하며 신문을 본다. 그러니 시골 살이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넉넉하고 여유로워야지만 살 수 있는 거다. 작은 것은 그냥 넘어가고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봐주고 넘어가주며 넉넉하게 살아가야 하는 거다.

나는 오늘도 기다림에 지쳐서 목이 길게 늘어났다. 오후 늦게 온 신문은 볼 맛도 안 났다. 그래서 대충 훑어보다가 던져 버렸다.

덧붙이는 글 | 하도 신문이 늦게 배달되어 오길래 우체국에 가서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신문도 우편물에 해당되기 때문에 3일 안에만 가져다 주면 우편법상 하자는 없답니다. 그리고 집배원들이 동네를 도는 순서가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답니다. 
나 하나를 위해서 도는 순서를 바꾸면 또 다른 사람들이 늦게오는 신문에 애타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신문 읽는 재미는 영 줄어들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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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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