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겉그림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겉그림 ⓒ 한겨레신문사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로 '역사'를 접하면 대단히 흥미롭다. 그런데 책은 다르다. 쉽게 손을 뻗지 못한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 대부분이 암기 위주로 공부를 했기 때문일까? 지루하다는 편견이 생기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일까. 다들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말이 쉽지, 정작 행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책으로 역사를 접하는 건 그리 재밌는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정출헌과 고미숙, 조현설과 김풍기가 함께 지은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은 이러한 생각을 편견이라고 못 박는다.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라이벌이라는 특수한 관계를 지닌 역사 속의 인물들을 대비시켜 흥미를 돋우고 있다. 경쟁관계의 라이벌을 보는 건 어디서나 즐거운 법인데 이것을 역사에 접목시킨 것이다. 더욱이 책이 대상으로 삼은 이들은 문학에 관련된 이들이지만 내용면에서는 그들이 살던 시대까지 아우르고 있어 고전문학사를 넘어 그 시대의 풍경까지 엿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이 다룬 라이벌 관계는 9가지로 '월명사 vs. 최치원', '김부식 vs. 일연', '이인로 vs. 이규보', '정도권 vs. 권근', '서거정 vs. 김시습', '김만중 vs. 조성기', '박지원 vs. 정약용', '이옥 vs. 김려', '신재효 vs. 안민영'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익히 알려진 라이벌 관계도 눈에 띄며 다소 생소하게 여기지는 관계도 있는데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과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의 관계일 테다.

그 동안 둘의 라이벌적인 요소는 자주 언급됐다. 때문에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에서도 생소하게 보이지 않는데 이 글을 쓴 정출헌은 이들의 관계를 "삼국의 여성을 읽는 두 '남성'의 시각"이라는 새로운 각도로 접근했다. 암기공부 덕분에 알고 있는 글의 진부한 상식을 넘어서 새로이 이들을 이해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들은 삼국의 여성을 어떻게 바라봤는가? 먼저 김부식은 '유가적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탓에 여성을 '가족'의 이름으로 본 것이 눈에 띈다. 가족의 이름으로 언급됐다는 건 무슨 뜻일까?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등장한 여성들은 대부분이 딸이라든가 아내라는 신분으로 언급된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도미처, 설씨녀, 석우로처 등으로 모두 절의나 효행과 같은 일로 그 이름을 날렸다.

김부식은 과감하게 이들을 삼국시대의 주요 인물로 언급했다. 그런데 문제는 또 다른 과감성에 있다. 여기에서 <삼국사기>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데 김부식은 그녀들의 행적을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훼손하는 우를 범한다. 가령 남편의 원수를 갚은 석우로처의 경우 석우로처는 적장을 술을 흠뻑 취하게 만들어 죽이는데 김부식은 이를 과감히 생략했다. 원수를 갚되 정도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철저하게 아내다운 모습을 강조한 것인데 이는 어머니의 형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을 낳은 유화를 보자. 유화는 주몽의 어머니로서 수렵생활을 벗어나 농경생활로 진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에 곡신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김부식은 그 모습이 어머니답지 못하다하여 그 형상을 과감히 축소시킨다. 자애로운 어머니면 충분하다는 논리였다.

반면 일연은 '불교적 시각'에 기반 해 <삼국유사>를 저술했는데 여성이 '가족'의 이름을 넘어 다채롭고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에서는 김현이 만난 호녀와 신도징이 만난 호녀 등을 통해 그 면모를 밝히고 있는데 <삼국사기>와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그 안에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나아가 김부식과 일연의 면모를 새로이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 또한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알려지지 않은 라이벌로는 이인로와 이규보가 대표적이다. 각각 고려 시대의 문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들이 라이벌로 만난 것이 눈에 띄는데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은 시 쓰는 특징이나 대표 작품들을 통해 이들을 비교하고 있다. 책에서는 이들이 각각 시대를 대표하는 표상적 존재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하나의 구세대와 신세대의 충돌로 그려내고 있다. 용사와 신의, 탁물우의와 우흥촉물, 심의 철학과 물의 철학의 대립 등 다양한 각도로 그들의 대립각을 살펴보는데 그 과정은 세대교체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역사를 흥미롭게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신재효와 안민영의 경우는 어떤가.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은 이들을 '언행예술의 극점을 추구한 두 예술가'라 했는데 이들이 라이벌로 등장한 것은 신재효는 판소리계의 거물이며 안민영은 시조계의 거물이기 때문이다.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은 이들의 작품을 토대로 잊혀져가는 판소리와 시조의 과거를 추적해보고 있는데 이 모습 또한 역사를 향해 걸어가는 즐거움을 되살려주기에 충분하다.

이 외에 조선시대의 초기를 보여주는 '정도전과 권근', 사대부 문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서거정과 김시습' 등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은 눈에 띄는 라이벌 관계에서 그 시대의 특징들을 보여줘 흥미로움을 토대로 역사라는 그림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른 책들과 달리 재미있게 손을 뻗을 수 있게 만들 뿐더러 대립각을 토대로 한 덕분에 효과적으로 역사의 단면들을 보여주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들여다본다는 건 어느 것 못지않은 즐거움이 가득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즐겁기는커녕 지루해서 하품만 하게 만드는데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에서는 최소한 그럴 일은 없다. 보물섬에 다가가듯 역사 속으로 걸어가는데 하품이 웬 말일까. 두 눈에 불 켜고 구경하는데 정신이 없을 테니 기대치를 한껏 높여도 좋다.

고전문학사의 라이벌 - 시대와 불화한 천재들을 통해 본 고전문학사의 지평

고미숙 외 지음, 한겨레출판(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