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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를 위해 캐나다에서 날아 온 교포
집회를 위해 캐나다에서 날아 온 교포 ⓒ 오창경
며칠 전부터 부여 전역에 '황우석 박사 연구 재개를 위한 촛불 문화제'라는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작년 하반기를 강타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에 대한 보도는 온 국민을 '경악'하게 하더니 '분노'에 이르게 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진실은 무엇인지 '혼란'에 빠뜨려버렸다.

황 박사의 고향인 부여 사람들이 받은 충격과 혼란은 그동안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처음 황 박사에 대한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을 무렵 부여 사람들의 반응 역시 '그럴 리가…'에서 '그럴 수가…'로, 다시 '도대체 진실은?'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황 박사는 부여 사람들에게는 자랑스러운 부여 사람이었고 우상이었다. 매스컴이 그를 그렇게 띄웠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매도하기 시작했다.

ⓒ 이흥우
특히 줄기세포 오염 조작은 김선종 연구원 단독 사건으로 결론이 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어쩐지 '몸통과 깃털' 운운하며 유야무야 은근슬쩍 본질을 흐려왔던 그동안의 정치권의 한 행태를 보는 것 같아 영 개운치가 않다.

거기에 KBS의 <추적60분> 방송 불가 결정에 대한 보도와 문형렬 PD의 극단적인 발언, 그리고 황우석 박사 지지 연대의 집회, 시위를 넘어선 과격한 행동은 대중들을 '거대한 음모론' 속으로 몰고 들어가기에 충분하다.

ⓒ 이흥우
지난 8일 부여에서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부여 보건소 앞 로타리 백제 성왕 동상 앞에는 2천여 명의 군민들이 모였다. 부여 사람들은(충청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집회와 시위나 콘서트 등이 열려도 진행자가 호응을 가장 얻어내기 힘들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우석 박사 연구 재개를 위한 부여 공동 협의회' 측에서 준비한 영상물을 시청하는 부여 사람들의 표정들은 진지하기 그지 없었다. 나 역시 그동안 접했던 황 박사 사건의 논란들을 새기면서 그 영상물을 부여 사람으로서 팔이 안으로 굽는 이치로 시청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 이흥우
황 박사 지지 연대 측에서 주장하는 요지는 줄기세포 원천 기술을 제럴드 새튼 박사를 통해 미국이 빼돌리려는 음모라는 것이다. 우리가 논문 조작의 모든 책임과 비난을 황 박사에게 돌리고 있을 때, 새튼 박사는 미국에서 특허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KBS <추적60분>에서 이런 과정을 심층 취재를 했음에도 방송을 하지 못하는 것은 정부와 언론과 정치 경제계가 서로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황 박사가 연구 재개를 한다면 줄기세포는 분명히 만들어 낼 수 있고 대한민국이 원천 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사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발표를 통해 그간 접했던 황 박사의 논문 줄기세포 조작 사건의 전말 역시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 이흥우
그날 촛불 시위는 부여 사람들에게는 그냥 '시위'가 아니었다. 황 박사가 '희대의 사기꾼'이 아니라 '자랑스런 부여 사람이며 애국자'로 다시 돌아오길 기원하는 기원제였다. 부여 사람들의 촛불은 그를 향한 믿음이었다.

시위 현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 복잡하게 얽혀 버린 생각들로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사건은 아직 검찰에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지금은 누구도 섣불리 진위에 대해서 속단해서는 안 된다. 문득, 그 얽힌 미로 속에 어쩐지 언젠가 한 번 찾아 갔던 길이 있었던 느낌이 스쳤다.

20여년 전,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 속 내용이 오늘날 황 박사 사건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는 게 아닌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나라의 세계적인 핵물리학자에게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지시했었는데, 그가 미국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었고 박 대통령 역시 시해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20여년의 세월이 더 흐르고 나면 황 박사 사건도 어느 소설가에 의해 소설의 모티브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 많은 세월에 묻혀서 진위와 무관하게 각색되기 전에 전모가 밝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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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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