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느 날부터 인가 '감동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내 메일함에 답지해 내게 즐거운 감동을 전해주는 편지 중의 하나.
어느 날부터 인가 '감동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내 메일함에 답지해 내게 즐거운 감동을 전해주는 편지 중의 하나. ⓒ 임흥재
어느 날부터인가 제 메일함에는 <감동의 편지>라는 전혀 알지 못하는 곳으로부터 거의 매일 편지가 답지하고 있습니다. 그 편지는 매일매일 제게 감동적인 사연을 전해줍니다. 궁금하여 사이트를 방문해보니 회원들이 느끼고 경험했던 일상의 사연들을 진솔하게 올리고 그 사연의 감동을 나누는 곳이더군요.

어느 편지에서는 글쓴이의 슬픈 고백에 함께 아파하다가 어느 글에서는 재미난 실수담에 혼자 자지러지게 웃기도 하지요. 제게 온 맨 처음의 편지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진한 감동으로 내게 남아 있습니다. 옆의 그림은 바로 그 사연이 담긴 편지입니다.

며칠 전에는 스팸메일을 청소하다가 영어로 된 짧은 편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스팸메일로 의심되는 메일에 붙게 되는 표시가 없어 읽어보게 된 메일이었습니다. 편지의 사연을 소개하면, 보낸이는 '에카데리나'라는 27살의 러시아 여성(이름에서 짐작)이고 러시아에 살고 있으며 영어 선생님이 되기 위해 공부 중이랍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자신이 사는 곳에서는 존경할 만한 남자(배우자)를 찾기가 불가능하다는군요.

그것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반쪽(배우자)을 찾기로 결심한 이유이고 아마도 어리석게 들릴 것이지만 자신의 사랑을 찾을 수 있기를 아주 원한답니다. 돈 많은 사람은 찾지 못해도 영혼과 마음이 깊은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네요. 만일 당신이 자신의 편지에 흥미가 있다면 메일 주소로 답장을 보내달라더군요.

러시아 여성들의 한국에 대한 철없는 동경에 실소하기도 하고 배우자를 고르기 위해 우즈벡으로 향하는 이 땅의 총각들에 관한 기사를 생각하기도 하고 '결혼원정기'의 수애를 떠올리기도 하였습니다. 호기심에 주소를 방문해보니 메일전송 프로바이더 사이트였습니다. 한 번 답장을 보내볼까 잠깐 고민도 하였지요.

Hello! My name is Yekaterina. I'm 27 years old and I'm from Russia. I live in Russia now and work as an English teacher at school. Unfortunately it's impossible to find a worthy man here, so, that's why I decided to search my secong half through the Internet. Maybe it sounds silly, but I want to find my love so much! I want to tell that I'm not looking for the man who is reach with money, but with soul and heart. If you are interested by my letter, than please, write me an answer on my e-mail address: yeka096@○○○.com I will wait for your respond with impatience and hope!

물론 보낸 이가 제 주소가 한국의 포털임을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서 말입니다. 이제는 보편적 풍경으로 자리잡은 유흥업소의 러시아 무희들은 어긋난 환상의 피해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못살던 시절(지금도 여전하지만) 몸뚱어리 하나 밑천 삼아 도쿄의 긴자로 신주쿠로 돈 벌러 떠났던 우리의 누이들이 생각나 그저 웃을 수만도 없었습니다. 물신숭배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의 상품화에 내몰린 빗나간 청춘들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실제로 기자는 (사업상이든 교우이든) 러시아 여성의 접대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예쁘게 생긴 슬라브 여성과 함께 하는 술자리는 색다른 자리임에는 분명하였습니다. 짧은 한국말로 전하는 그녀의 의사는 내가 답답하고 금방 밑천 드러나는 저의 영어에는 그녀가 울상이고, 지금도 생각하면 깨나 어색한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기억나는 그녀들의 한국말은 '오빠', '얼마?', '좋아' 등이었습니다. 언제부터 술집을 출입하는 남자들 모두가 오빠가 되었는지 괜히 궁금해집니다.

먹고 사는 일이 팍팍하고 경기의 체감온도가 꽁꽁 얼어붙은 것은 확실한 듯합니다. 거의 매일 몇 통씩 대출해주겠다는 편지가 날라옵니다. 전화 한 통이면 5분 내 대출완료라는 그들의 선전에서 왜 빚 못 내줘서 안달인지 궁금하였지요. 그만큼 돈 꿔줄 양질의 채무자후보가 줄어들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무분별한 카드 발급 등으로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세상에서 위기에 내몰린 자본주의 시대의 비자본가들의 곡절과 사연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소비의 양극화와 욕망의 추종에 허덕이다 빚지는 사회의 구슬픈 그림자가 메일함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현대인의 스트레스가 우리 몸의 여러 군데를 고장 낸 모양입니다. '비아그라'며 '시알리스' 같은 발기보강제의 광고메일은 왜 그리도 많답니까? 무절제한 성의 남용인지 무분별한 성욕의 해소 때문인지 고장 난 어른들이 많기는 많은 모양이라 짐작합니다. 3주면 물건의 크기를 세 배까지 늘려준다는 영문광고도 심심치 않게 제 메일함을 찾습니다. 세상은 요지경 속이 틀림없습니다.

그 외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세상의 실루엣과 그림자와 전자 신호로 인화된 사진들이 메일함에 도착하여 일그러진 세상을 모자이크 하고 콜라주 합니다. 그 메일함 속에서 기자는 어둡고 칙칙한 세상의 뒷골목을 배회하기도 하고 질퍽한 진창에 고꾸라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메일함을 비우고 다시 뒤적이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접습니다.

그럼에도 어수선한 세상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앞서 소개한 이웃들의 진솔한 사연과 기사를 읽고 책을 선물하겠다는 어느 분의 고마운 마음 등이 가끔 제 가슴에 쌓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메일 속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