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하나가 되기 위해 집을 지었다
신 대표는 "우리 전통건축은 보면 볼수록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며 전통건축에 대한 자부심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신 대표는 "많은 사람이 건축물의 외양만 보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유명 고택이나 사찰 등의 안내문에 있는 '언제 누가 지은 것으로…' 등의 설명은 건축물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의 지적대로 '한국전통건축'은 건축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외형보다는 내부 구조에 초점을 맞춰 장소의 의미를 풀어낸다. 내부 구조를 읽는 방법 역시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아 독창적이다.
우선 경북 경주시에 자리한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 '관가정'을 살펴보자. 관가정은 마당의 의미가 중요하다. 이는 마당이 넷으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인데, 크게 보면 'ㅁ'자 밖의 마당은 같은 하나이다. 한 부분이 바깥에서 더 가려지고 덜 가려지고, 더 깊고 덜 깊고, 더 가깝고 덜 가깝고 하는 식이다. 넷으로 구분이 되면서도 옆의 마당과, 집 바깥의 세상과 모두 이어져 있어 공간의 구분이 참으로 섬세하고 은근하게 일어난다.
신 대표는 "관가정은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바깥의 세상과 4개의 각기 다른 관계를 맺는 틀을 특징으로 한다"면서도 "관가정을 둘러친 담 중 앞부분은 최근에 설치됐는데 이는 관가정의 숨통을 누르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후대의 보완(?)작업이 오히려 세상과의 소통을 막았다는 것이다.
들어오고 나오고…세상과 소통하는 마루
신 대표가 전통건축에서 강조한 것 중 하나는 '마루'이다. 마루는 크게 '툇마루'와 '대청'으로 분류된다. 방의 한 면을 따라 좁고 길게 붙어있는 것이 툇마루이고 방과 같이 건물 한 부분을 넓게 차지하고 있는 것이 대청이다.
마루는 구조만큼이나 성격도 매우 특이하다. 마루가 놓이는 상황이 여러 가지인 것처럼 성격 또한 매우 다양하다. 방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마루로 연장되어 나올 수 있고 반대로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이 마루로 들어올 수도 있다. 또한 마루는 방과 방을 서로 떨어뜨려 놓기도 하지만 동시에 연결하기도 한다.
방과 방 사이에 놓인 대청마루는 방 사이를 벌려놓으면서도 둘을 연결한다. 대청을 사이에 두고 시어머니방과 며느리방이 있는 것을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대청에 의해 떨어진 만큼 둘 사이에 직접적인 간섭이 줄어들지만, 생활이 대청으로 연장될 때는 접촉 기회를 만들기도 해 묘한 이중성을 지닌다.
대청이 방과 방 사이에 있지 않고 집의 모퉁이에 있는 '누마루'는 집 전체로 볼 때 보통 한적하거나 훌륭한 자연이 있는 곳에 놓인다. 이런 형식의 대청에서는 자유스러움에 대한 의지를 볼 수 있다. 이는 홀로 떨어져 나오고자 하는 자유스러움이고 자연과 함께 하려는 자유스러움이고 집밖의 저 멀리까지 인식의 범주를 확장하려는 자유스러움이다.
신 대표는 '사랑채'와 '안채'도 장소를 중심으로 해석한다. 추사고택을 통한 설명을 들어보면 이 둘은 서로 떨어져 있는 만큼 개성 또한 아주 대조적이다. 안채는 매우 내향적이고 폐쇄적이라 할 수 있는 반면, 사랑채는 외향적이고 개방적이며 확장적이다.
사랑채와 안채의 이런 개성은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그 중 하나가 사랑채 끝에 있는 마루이다. 이 마루가 사랑채의 영역이 주변으로 연장되고 확대되는 것을 도와준다. 추사고택에는 마루 말고도 고유한 개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수많은 요소가 있다. 이 요소들을 찾아보는 것은 추사고택을 만나는 커다란 재미일 수 있다.
서양의 아파트는 단절이지만, 전통건축은 연결이다
20여 년이 넘는 기간에 신 대표가 찾아다닌 곳은 비단 국내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7년간의 외국 유학 중 하이데거의 제자를 통해 형이상학과 실존론 등에 탐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 전통건축의 뛰어남에 눈을 떴다고 한다. 그는 전통건축의 특징으로 세상과의 연결을 강조했다.
"사람과 우주질서의 조화가 우리의 전통건축 안에 다 있어요. 서양의 아파트가 단절을 의미한다면 전통건축은 연결을 의미해요. 마당과 마루가 그것을 증명하거든요. 그렇게 '몸' 중심이던 우리의 건축이 서구의 근대방식이 유입돼 과학, 합리, 편안함, 쾌적함을 추구한다며 건축의 모양만 띠게 변해버렸어요. 몸을 위한다며 오히려 몸을 가둬버린 격이죠."
현재 하우스세이버는 콘텐츠를 활용해 서적출판과 사이버강의 등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외국 교양강좌에 건축물과 장소의 설명과 서원과 사찰에 묻어나는 유교, 불교 등의 의미도 폭넓게 활용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관가정, 추사고택 등의 옛집과 소수서원, 도산서원 등의 서원 그리고 불국사, 통도사 등 사찰 건축물에 드러난 장소를 재발견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신 대표는 "건축물의 '장소'를 해석하는 관점이 독특하다는 이유로 아직 공식적으로 학계의 지지를 받지는 못하지만 전통건축을 새롭게 해석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고 주장했다. 힘들더라도 세상과 소통하고 우주의 질서가 반영된 우리의 전통건축을 다시 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재를 하나 쓰더라도 우리는 잔가지만 쳐내고 나무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데 반해, 일본은 네모 반듯하게 다듬어 썼어요. 또 마당을 만들 때 우리는 대부분 흙을 활용하면서 돌을 쓰더라도 울퉁불퉁한 것을 그대로 살렸는데 중국은 네모 반듯하게 표면을 다듬어 썼죠. 이것은 우리 전통건축이 사람 중심의 가치관을 나무와 돌에도 그대로 적용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건축물의 해답이 전통건축에 있었다"
신 대표는 '노후에 우리 전통건축물에서 살 생각이냐'는 물음에 호탕하게 웃으며 "당연히 그럴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전통건축은 나무와 돌에도, 마당에도, 마루에도 자연과 소통하려는 정신이 깃들어 있어요. 자체 공간에 나름의 역할을 맡겨 놓았다고 할까요? 항상 변할 수 있다는 가변성을 지니고 세상 밖으로 열려 있는 장소에는 삶의 '여유'가 담겨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집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유학 생활을 통해 지구를 한 바퀴 돌아본 결과, 내가 찾던 건축물의 해답이 다름 아닌 우리 전통건축에 있었다"는 전통건축의 미학에 대한 신 대표의 역설은 고층빌딩과 아파트들이 늘어가는 현실에 차라리 자연에 대한 동경처럼 들린다. 하지만, 세상과 소통하며 우주질서의 조화를 꾀했던 장소를 찾아 '사람' 중심의 가치관을 떠올리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주)하우스세이버 ‘한국전통건축’ 콘텐츠 자료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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