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충무로 불리다가 다시 예전의 지명을 되찾았지만, 과거 호젓하고 조용한 어촌마을의 풍경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남해의 미항이라 불리던 이곳 통영에도 개발 바람이 어김없이 불어와 여기 저기 건물들이 들어서는 현실을 보면서 통영만의 느낌조차 개발논리에 밀려 사라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입항시간이 다가와 통발어선이 접안할 장소인 통영 세관 앞 항만부두에 나가보니 이미 어획물을 싣고 갈 트럭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부두 한편에 중국 오성홍기를 선미에 단 선박이 있어 살펴보니 중국 선원들이 배를 수리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근처에 한국 해양경찰 경비정이 나란히 접안돼 있어 글로벌 시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으나 필자의 시선을 끈 것은 중국선박 선미에는 분명히 오성홍기가 달려있는데 오히려 조타실 위에는 우리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윽고 바다 저편에서 장어 통발어선이 모습을 드러내며 부두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움켜쥐고 줌을 당겨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짙은 황사 먼지로 인해 햇빛이 차단된 상태. 최악의 촬영 조건이라 필요한 사진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배가 부두에 접안되자 뱃사람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어획물(꼼장어)을 육상에 대기 중인 자동차에 옮길 크레인이 가동되는 순간, 어획물을 싣고 갈 차량들이 선박에 딸린 바닷물 공급 호스로 차량 수조에 물을 담기 시작했다.
인부들은 선창에서 꼼장어를 가득 담은 망태를 저울이 달린 선박크레인으로 올리면서 무게를 확인했다. 이를 다시 육상크레인으로 옮겨 부두에 대기 중인 차량들 수조에 부어 넣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진다. 통상 한 망태의 무게가 160-180kg 정도고, 이를 한두 번씩 반복하며 10대가 넘는 차량에게 넘기는 것을 보면 장어통발 어선 선창에 담긴 어획물의 양이 짐작된다.
온통 암적색의 희뿌연 황사가 하늘을 덮어 4월의 쪽빛 바닷물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망태에 담겨 꿈틀거리는 신선한 꼼장어(학명:먹장어-nshore hagfish)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없이 맑고 풍요로워 보였고, 작업 중인 인부들의 모습도 활기차 보였다.
꼼장어는 이제 우리나라 연안에서 거의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 근해에서 많이 잡히지만 배타적경제수역(EZZ) 문제로 나포당하는 일이 잦고 어획량도 줄어 사실상 국내산 꼼장어의 어획량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나마 이렇게 활어 상태로 연안에서 잡히는 꼼장어는 인기리에 팔리지만 그 수요에 비하여 공급이 부족하다고 한다. 현재 전국 시식코너와 술집 등에서 팔리는 술안주용 꼼장어는 수입산 냉동 꼼장어가 대다수. 원산지는 캐나다와 남미 쪽이며 국내산에 비해 육질이 떨어진다고 한다. 아무튼 언제부터인가 우리 식탁에서 우리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절감하는 시절에 우리는 살고 있다.
통영항을 돌아보았다. 출항을 포기한 대형 장어통발 어선들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현장에서 담당자에게 확인한 결과 국내에는 현재 16척 정도의 장어통발 어선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면서 꼼장어 조업에 나서고 있지만 어획량 감소로 채산성이 떨어져 냉동 수입산으로 시장이 대체되는 상황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