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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꽃길로 시작되는 봄
ⓒ 한지숙
올해 봄은 유난히 더디고 더디다. 파르르 떠는 꽃샘추위에 황사가 거칠게 몰아치더니, 몇 해 전부터 춘삼월을 거르지 않고 내리던 봄눈도 어김없이 한 차례 지나갔다.

내게 있어 봄날은, 아지랑이 하들하들 피어오르는 시골의 길섶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지랑이 좇아 머문 곳에 광대나물과 냉이가 수줍게 피어나고 산수유 샛노란 꽃망울 터뜨릴 즈음이면,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답답함에서 벗어나 불현듯 길을 나설 준비에 설레는 마음이다. 가벼운 옷차림만큼이나 팔랑이는 봄나들이의 유혹이 한껏 기지개를 켜는 때이기도 하다.

▲ 하늘을 향한 구원, 솟대
ⓒ 한지숙
기분 내킬 때 훌쩍 떠나는 여행이지만 유독 마음이 기울어 갔던 곳을 또 찾게 되는, 마음자리에 따뜻하게 맴도는 곳들이 있다. 해남의 땅끝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이 잦은 이유이기도 한데, 몇 년 전 첫 발걸음 이후 해마다 한 번씩은 즐겨 찾았나 보다.

땅끝마을에 가면 이젠 어느 정도 낯이 익어 눈 맞추고 조근거릴 곳들이 제법 많다. 그 가운데 하나, 전망대 오르는 길 오른켠으로 너르게 펼쳐진 바다에 오롯이 떠 있는 섬을 떠올린다.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앉아 내가 찾을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는 섬. 짙푸른 하늘을 떠안고, 품속 가득 바람을 끌어안고, 파도마저 잠든 바다에 고요히 엎드린 그 섬 말이다. 작년 1월의 겨울 여행에서도 그렇게 정겹고 푸근한 모습으로 만난 섬과 나, 반가움에 섬을 향한 그리움부터 덥썩 풀어냈다.

▲ 정겹고 푸근한 나들이
ⓒ 한지숙
이름을 모른다 하여 차마 모른 척 할 수 없는, 모른 척 하기엔 너무나 마음을 끌어당기는, 땅끝과 더불어 늘 그리운 섬... 나의 마음 닿는 대로 '벙거지섬'이라 부른다.

섬을 처음 본 그 즈음이 내가 벙거지를 만들기 시작한 때였다. 우연한 기회에 퀼트 모임에서 손바느질을 익혔는데 어쩌다가 모자 만들기에만 재미를 붙였는지 모르겠다.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라 삐뚤빼뚤 투박한 손놀림이지만 철 따라 내 것 만들어 쓰고 친구들과 이웃에게 선물도 하면서 만들어 온 벙거지만 해도 그 수가 꽤 쌓였으니. '어린왕자'에 나오는 보아뱀의 속내를 들여다보듯 두드리면 환하게 열려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신나고 재미있는 모자의 세계를 꿈꾼다.

▲ 하나의 몸짓으로 다가와 하나의 의미가 된 '벙거지섬'
ⓒ 한지숙
벙거지섬, 이름을 부르기 전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을, 이름을 불러 주었더니 나에게 다가와 하나의 의미가 된...

이 섬을 두고 보는 이마다 건네는 소리가 한결같다.

"언니가 만드는 벙거지랑 닮았네...?"

덧붙이는 글 | 해남의 땅끝마을과 더불어 늘 그리운 섬,
나의 마음 닿는 대로 '벙거지섬'이라 부릅니다.

'조간경남'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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