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도에 해군기지에 이어 공군기지까지 만들 계획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4월 12일자 <한국일보>에 따르면, 공군은 2008년부터 약 4400억원을 들여 제주도에 전략기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2006~2010년 국방중기계획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동아시아의 요충지인 제주도를 군사 전략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의사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공군 측은 "유전개발이 시도되는 한일 공동대륙붕과 통항선박의 보호 및 대양 진출 해군의 호위"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군 당국은 한층 가열되고 있는 에너지 쟁탈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해군기지 및 공군기지 건설을 정당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군사력으로 원유 수송로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 대륙붕에 유전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된다면, 이는 한·일 양국, 혹은 한·중·일 3국이 공동개발을 통해 원유 생산을 추진하면 된다.
또한 군 당국이 군사 작전의 범위로 상정하고 있는 동중국해에는 한국의 선박을 위협할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수역에는 해적과 테러집단 등 비국가 행위자의 활동이 거의 없을 뿐더러, 이 수역에 접해 있는 중국·일본·대만이 한국의 선박을 봉쇄하거나 위협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도 극히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은 미·중 충돌에 한국이 휘말리는 것
물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볼 수 있다. 이는 중국과 대만, 혹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해 여기에 미국이 개입하면서 한국을 대중국 군사작전의 전초기지로 삼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한국이 자신에 대해 적대 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하고 한국의 주한미군 기지를 공격하는 한편, 해상 수송로를 봉쇄할 수도 있다.
이미 미국은 한·미 동맹이 중국의 군사력 현대화와 양안간의 무력 충돌에 대비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중국은 한·미 동맹이 자신을 겨냥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위의 시나리오가 가능성은 낮지만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지역적 역할 강화를 추구하고 있는 한·미 동맹의 변화 추세에 맞춰, 군 당국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해군기지에 이어 공군기지까지 건설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제주도민의 반발에 막혀 중단된 상태이지만, 군 당국이 예정대로 제주 화순항에 대규모의 해군기지를 건설하면, 한국군뿐만 아니라 미군도 이 기지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는 공군기지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따라 미국이 원하면 한국의 영토·영해·영공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따라 미국 군사력의 유출입이 훨씬 자유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미국은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와 봉쇄, 그리고 필요하다면 군사력 사용을 위해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 재편에 나선 것을 비롯해, 해·공군력을 동아시아 지역에 집중시키고 있다. 특히 한-미-일 삼각 미사일방어체제(MD)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지정학적 위치를 볼 때, 제주도는 미국이 탐낼 만한 최적의 후보지역이다.
제주도는 대만 해협과 불과 1000km 떨어진 지역이다. 작전 반경이 1800km에 달하는 F-15 전투기가 공중 급유를 받지 않더라도 투입될 수 있는 근거리에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공군 측은 F-15 배치 가능성이 낮다고 말하고 있으나, 향후 안보 환경을 장담할 수는 없다.
한·미 동맹 재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국은 제주도에 해군기지와 공군기지가 건설되는 이유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중국이 제주도와 평택, 군산 등 이른바 전략적 요충지를 공격 대상 목록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
이러한 중국의 대응은 한국 내에서 '한국판 중국위협론'을 야기해 중국의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과의 유사시에 대비해 군비증강과 군사 기지 확보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끊임없는 '안보 딜레마'에 빠져, 소중한 자원의 낭비는 물론 중대한 국가안보상의 위협을 초래하게 된다.
최선의 안보전략은?
한국이 중국과 직접 무력 충돌을 벌일 가능성은 극히 낮다. 반면에 미중간의 무력충돌에 한국이 휘말릴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군 당국이 이러한 가능성에 대비해 제주도에 공군기지와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면, 이는 '섶을 지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최선의 안보전략은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않는데 있다. 강대국들 사이의 무력 충돌을 방지하는데 역할을 추구하면서도, 만약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그 화마(火魔)가 한국을 덮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중립을 지켜야 한다. 이렇게 할 때만 원하지 않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고, 또 군 당국이 그토록 강조하는 해상 수송로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최근 노무현 정부에 대해 구호와 정책의 극단적인 불일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말로는 자주외교와 동북아 균형자를 주창하면서 실상은 전례없는 대미 종속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평화 구상'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해군기지와 공군기지를 건설하려고 하고 있다. '제주 평화의 섬' 구상도 결국 구호의 정치에 불과했던 것인가라는 씁쓸한 의문이 드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주의 소리'에도 송고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