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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숙아, 어제 어떻게 됐어?"
"못 들었어? 정말 재미있었는데... 근데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 넌 믿어?"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 둘이 헤어진대?"
"응. 남자 주인공이 여자 보고 그러대.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고..."
"어휴, 그 남자 진짜 비겁하다.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 사랑한다면 끝까지 지켜줘야지."
"그 남자가 그러더라. 사랑은 이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라고... 정말 그럴까?"

이른 아침 교실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소녀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사랑은 이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라니... 그 이해 못 할 말에 소녀들은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줄도 모르고 침까지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수업이 시작된 후에도 아쉬움을 달래지 못한 단발머리 소녀들은 몰래 쪽지를 돌리다 걸려 손을 들고 벌을 서야 했다.

라디오 연속극에 눈물짓던 단발머리 소녀들

▲ TV가 보급되기 전 라디오는 소리만으로도 전국민을 사로잡았다. 그 지지직 거리는 소리마저도 이젠 아련한 추억이 됐다.
ⓒ 윤대근
소녀들을 그렇게 열광하게 한 건 바로 라디오극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MBC)이었다. 탤런트 김자옥이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로 해설을 곁들이던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은 1980년대 매일 저녁 9시 40분이면 소녀들을 라디오 앞으로 불러 모았다. 나 또한 그 소녀들 중 한 명이었다.

TV가 보급되기 전 라디오는 <강촌나그네> <쌀순이> <전설 따라 삼천리> <김삿갓 북한 방랑기> 같은 라디오 연속극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그 중 10대 소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프로그램이 바로 '닭살 돋는' 연애 드라마극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이었다.

라디오의 베스트극장이라고 할 수 있는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은 '오렌지 향기 바람에 날리고' '차디찬 꽃잎의 입맞춤' '춤추는 겨울나무' '하꼬네에서 온 편지' 등 작품으로 소녀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작가사로 유명한 양인자, 드라마 <신돈>의 작가 정하연씨도 이 프로그램을 맡았다.

▲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신세대 엄마 역할로 좋은 연기를 선보였던 김자옥씨. 80년대만 해도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를 자랑하던 아름다운 여배우였다. 사진은 '김삼순'의 그 유명한 노래방 장면.
ⓒ MBC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로 끝나는 조용필의 노래 <그 겨울의 찻집>이 주제가로 깔리고 이어지는 김자옥의 내레이션. 은쟁반 위에 옥구슬이 구르면 그런 소리가 날까? 그때 김자옥의 목소리는 바로 청아함 내지는 낭랑함 그 자체였다.

사랑이라는 두 글자에 막연히 가슴 설레던 소녀들. 그들은 이불을 꽁꽁 뒤집어쓴 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랑 이야기에 수줍어하며 두 볼을 붉혔고, 사랑하기에 이별한다는 주인공의 이별 통보에 이불깃이 다 젖도록 눈물을 짜내기도 했다. 이제 와 그 내용을 속속들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때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 아파하며 온 밤을 하얗게 밝히곤 했다.

어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다락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는 밤이면 나는 늘 꿈을 꾸었다. 바로 작가.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과는 달리 내 소설에는 '사랑하지만 헤어지는 연인'은 없었다. 천지사방에 널려 있는 온갖 장애물에도 결국에는 사랑을 쟁취하는 그런 아름다운 연인만 있었다. 그렇게 소녀는 매일 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애타는 사랑 이야기에 갈증을 느꼈고 언젠가는 가슴을 흠뻑 적셔줄 촉촉한 사랑 이야기를 쓰겠노라 꿈을 키웠다.

무슨 재주로 방송국에 글을 써?

"엄마, 웬 오디오예요?"
"이거 방송국에서 선물로 온 기다. 참, 어미도 글 써서 방송국에 한 번 보내 봐라."
"내가 무슨 재주로 방송국에 글을 써요?"
"방송국에 글 쓰는 사람이 어디 따로 있나? 한 번 보내 봐라."

어머니의 글은 종종 라디오 전파를 탔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그리 특별한 게 아니었다. 이웃들 이야기며 장날 이야기, 조카들 이야기 정말 소박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머니의 글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고 하루가 멀다 하고 방송국에서 보낸 상품들이 집으로 배달됐다. 화장품이며 상품권, 이따금씩 부피 큰 가전제품까지 상품도 정말 다양했다.

그 중 하나였던 오디오는 딸자식의 늦은 혼수가 되어 내 차지가 됐다. 우리 집 거실에 놓인 오디오를 나는 몇 날 며칠 의미심장한 눈길로 노려봤다. 하긴 라디오에 나오는 사연이야 늘 접하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나라고 못할 법도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문득 그 옛날 다락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듣던 라디오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이불 속에서 내가 꾸던 꿈도...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 유치원 보낸 다음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들고 코앞으로 다가앉던 라디오. 그 라디오에서는 그 옛날 사랑 이야기 대신 우리 이웃들의 푸근한 세상 사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로 이거다.

우선 글쓰기에 대한 책들을 섭렵한 다음 무작정 써봤다.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팔이 뻐근하도록 쓰고 또 썼다. 늦은 밤 잠든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애틋한 마음을 글로 옮겼고, 딸아이의 개구쟁이 짓에도 감격스러워하며 득달같이 글로 적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갔다. 신기한 건 그런 하루하루가 그리 신날 수가 없었다는 거였다.

그리고 '결정의 날'이 왔다. 방송국에 보내겠다고 작정을 하고 쓴 한 편의 글을 앞에 놓고 나는 사흘을 끙끙댔다.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리고 이렇게 결론 내렸다.

'그래. 밑져야 본전이고 첫술에 배부르지는 않아. 이번에 안 되면 또 보내면 되지, 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있어? 그래. 될 때까지 한번 해 보는 거야.'

냉장고에 상품권까지... 라디오에 살림 장만

2004년 1월 28일. 나는 아직도 그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다음은 김포에 사는 김정혜씨 사연입니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때처럼 내 이름이 낯설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분명 내 이름이었다. 진행자가 읽어 내려가는 사연도 분명 내가 쓴 글이었다. 라디오를 듣는 내내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직도 알 수는 없지만 눈물은 뜨거웠고 좀체 멈출 줄을 몰랐다.

▲ 양희은 송승환의 <여성시대>. 내 글이 처음으로 라디오 전파를 탄 프로그램이다.
ⓒ MBC
내 글이 처음 전파를 탄 곳은 MBC 라디오 <여성시대>였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 기억상실증에 걸린 아버지 이야기에 당시 진행자였던 김승현씨가 "드라마도 이렇게 극적인 드라마는 없을 거다. 우리 사는 하루하루가 정말 드라마"라고 했던 게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리고 상품으로 VTR을 받았다. 본전인 등기우편 값의 몇백 배에 버금가는 상품을 선물로 받았으니 첫 술에 얼토당토않은 과식을 해 버린 것이다.

2004년 한 해는 그야말로 '정혜의 전성기'였다. 오죽하면 날 더러 글 쓰는 것에 걸신들렸다고 했을까. 나는 시집올 때 미처 장만하지 못한 혼수를, 그것도 호화혼수로 단박에 장만해 버렸다. 가전제품 배달을 온 전자회사 직원은 나더러 방송국에 가까운 친척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리 비싼 가전제품을 상품으로 줄 까닭이 없다는 거였다.

양문개폐형 대형냉장고, 김치냉장고 2대, 대형TV 2대, 홈시어터, 오디오, VTR, DVD, 전자레인지, 카세트라디오, 청소기, 식품건조기, 제주도 여행권 등등. 화장품이며 상품권은 내년까지도 쓸 수 있을 만큼 아직도 수북하고 다리미며 밀폐용기 세트는 친척과 이웃에게 두루두루 나눠줬다.

글 쓰는 나를 만든 건 8할이 라디오

▲ 라디오에 사연을 써서 받은 상품들. 방송국에 친척 있냐는 소리까지 듣기도 했다.
ⓒ 김정혜
돌이켜 보면 참 신바람나는 시간이었다. 하루하루가 그리 즐거울 수 없었고 집안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선물들을 보노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를 정말 행복하게 배부르게 한 건 쌓여가는 상품이 아니라 글쓰기, 바로 그 자체였다. 내가 쓴 글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다는 그 사실에 나는 참을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글을 쓰면서 내게 주어진 한평생을 헛되이 살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문학 공부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던 내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라디오' 덕택이다. 문장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맞춤법이 틀리긴 해도 푸근한 목소리로 사연을 읽어 주는 라디오 진행자가 있었기에 나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편지글로 술술 풀어낼 수 있었다. '글 쓰는 아줌마 김정혜'를 만든 8할이 라디오였다면 과장일까.

이제 나는 소녀적 꿈꾸었던 아련한 사랑이야기에 아줌마가 꿈꾸는 훈훈한 세상 이야기를 보태고 싶다. 라디오를 통해 '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면, 이제 그 배짱으로 사회를 향해 글로써 소통하자는 것이다.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구수한 된장 맛 같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아마도 내 이런 꿈은 날이 갈수록 깊이를 더해갈 것 같다. 오래된 된장이 더 구수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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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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