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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때, 우리가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을때, 일부에선 SK그룹이 망할 것이라고 했어요. 그 이후에 저 개인적이나 수사팀에서 SK그룹을 지켜봤죠. 결과적으로 SK 수사에서 가장 큰 수혜를 누린 곳은 어딜까. 'SK이고, 최태원 회장이다'라는 겁니다."

그의 목소리 톤은 이미 올라가 있었다. 얼굴 표정도 약간 상기된 상태였다.

2시간여 인터뷰 내내 엷은 미소를 띠며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던 그였다. 하지만 참여정부 출범 초 검찰의 전격적인 SK그룹 수사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할말은 해야겠다는 그의 생각이 베어나왔다.

이석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부장 검사. 그에겐 '금융특수통'이란 꼬리표가 붙는다. 내로라는 벤처신화 주인공 등 많은 기업인들이 이 검사 앞에 줄줄이 불려왔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제대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흰색 수의를 입어야 했다.

특히 이 검사는 지난 2003년 2월 SK그룹 본사와 회장실 등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했다. 또 분식회계와 그룹 부당내부거래 등을 두고 최태원 회장을 직접 조사한 장본인이다.

그는 "당시 SK그룹 수사를 두고 표적수사설부터 삼성음모설 등 그럴싸한 여러가지 설(說)이 나돌았다"면서 "최 회장의 불법 주식거래의혹이 언론을 통해 나온 후 검찰 자체적으로 내사를 진행하게 됐다"며 수사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참여연대의 고발이 이뤄지면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검찰의 대기업 수사를 두고 봐주기 아니냐는 의견도 많다고 하자 "(검찰 입장에선) 억울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외부에선 검찰이 수사하면 다 되는 것으로 알지만, 정말 국민에게 보여지는 조그만한 성과를 얻는 과정은 굉장히 힘들고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검사는 이어 "항상 대기업을 수사하다보면 경제를 걱정하는 이야기가 나온다"면서 "경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을수 없지만, 위법성이나 그 범죄행위가 갖는 파급성 등에 두고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검찰의 현대자동차 그룹의 비자금 수사나 삼성 에버랜드 헐값매각 사건 등에 대해선 "수사중이거나 재판이 진행중인 사건에 대해선 말할수 없다"면서 조심스러웠다. 대신 "재벌이 비자금 등 불법인지 알면서 만드는 것은 지배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검찰 수사를 계기로 지배구조도 차근차근 바뀌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검사는 지난 2003년초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형사9부 시절 여당 고위인사로부터 압력성 전화를 받았다'고 폭로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는 "토론회 때 말했던 취지는 뭘 폭로한다는 것이 아니었다"면서 "검사들이 일할 때 이런저런 애로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든 것이고, 이같은 고충에 맞게 검찰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이 검사와의 인터뷰는 지난 11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서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그와의 질문과 답변을 정리한 것이다.

"재벌 비자금 등은 결국 지배구조문제에서 비롯된 것"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최근 경제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검찰 내에서도 경제검사와 경제관련 부서가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들었다. '한국의 경제검사'에 대한 개념이 언제부터 세워졌나.
"경제검사라고 하면 포괄적이다. 크게 기업과 금융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금융, 특히 증권분야는 다시 기업으로 연결된다. 그쪽 부분을 많이 수사하거나 전담하는 것을 경제검사라고 한다. 예전에 경제통으로 유명했던 분은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다. 당시만해도 경제는 특수분야였다.

경제검사의 개념은 결국 서울지검 형사9부, 현재의 금융조사부가 생기면서 나왔다고 할수 있다. 이쪽에서 경제 및 금융 업무를 전담하고, 검사들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경제 검사 군(群)이 생긴 것이다."

- 이 부부장은 형사9부 창설멤버였는데,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나.
"만들어지게 된 시점이 2001년 6월이다. IMF 이후 많은 금융기관이 도산하고 각종 비리나 문제점이 누적됐다. 대기업도 마찬가지였다. 99년~2000년 코스닥 '광풍'이 불었고, 소위 스타 벤처 기업인들의 문제점도 나왔다. 벤처 거품이 빠지면서, 많은 투자자들의 피해가 발생하면서, 특히 금융 및 증권 사건이 검찰에 많은 숙제로 남았다.

아울러 금융감독위에서 검찰로 고발 및 통보하는 사건 숫자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 시점이 2001년이다. 바로 전에 이용호 사건 터지고, 정현준·진승현 게이트 생기고, 결국 코스닥 꺼품이 꺼지면서 생기는 후폭풍, 후유증이 등장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전담부서의 필요성이 나왔고, 대검에서 판단해 형사9부가 만들어진 것이다."

- 부서가 만들어질 때 에피소드 같은 것은 없었나.
"에피소드라면, 현재 금융조사부는 3차장 아래에 있다. 전에는 형사9부였다. 예전에 형사부가 2차장 산하였다. 일반 형사부에 금융전담부서를 만들었는데 내부에서 논의를 했었다. 일단 출발하는데, 기업이나 금융계 등에서 보는 시각에 대해 우리가 부담을 가졌다. 반대로 그쪽도 부담을 덜 가져라는 의미도 된다.

바로 3차장 산하에 금융조사부, 금융수사부로 가면 '특수부 하나 더 생기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지 않겠나. 그런 부담을 줄이는 차원에서 형사부에 9부를 두게 됐다. 근데 SK그룹 수사를 계기로 형사부서로 있기엔 여러 문제가 나오면서 금융조사부로 따로 만들어지게 됐다."

- 형사9부에서 1년8개월 근무하면서 많은 사건을 다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SK 건인가?
"그렇다."

- 당시 검찰에서 SK그룹의 회장실을 비롯해 구조본 등에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했는데, 기업입장에선 총수 비서실에 대한 압수수색 자체가 대단한 충격이었다. 검찰 수사를 두고 여러 말들도 많았는데.
"저도 그때 주간지 등을 봤는데 설이 5개 정도 있더라. 예를 들어 삼성음모설이 있었는데, 자기들이 당하지 않기 위해 그 밑에 정도의 회사를 당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SK 내부의 형제간 알력으로 보는 것도 있었고, 하다못해 노태우 전 대통령측에서 처가와 사이가 안좋아서 혼내주려고 했다는 설도 있었다. 대단히 그럴 듯한 여러가지 설들을 봤는데, 사실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언론에서) 참 조합은 잘했더라. 들어보면 그럴 듯하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SK 압수수색 당시 무비카메라 들고 들어간 까닭

ⓒ 오마이뉴스 권우성
- 그래도 그룹 총수방에 직접 압수수색을 벌이는 것을 두고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또 시기적으로 참여정부 초기이기도 했고.
"압수수색에 들어간다는 것은 증거확보를 위한 것이다. 이미 그룹 관계자 여러명을 상대로 조사를 했었다.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들어간 것은 증거확보를 위해 필수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또 수사과정에서 문제점들은 재벌 시스템에 관한 경우가 많았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언젠가는 단절을 시켜줘야 하는 범죄라면 확실히 수사해야한다는 내부적인 논의가 있었다."

- SK 수사를 처음으로 시작하게 된 단서가 있었을텐데.
"수사는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최태원 회장의 불법적인 주식스왑(교환)이고, 또 하나는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였다. 수사 과정에 분식회계건도 나왔고. 주식스왑은 지난 2002년 12월인가 YTN 보도를 '저거 범죄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사를 시작했고, 그런 와중에 다음해 1월 초 참여연대에서 계열사 부당 지원에 대한 고발건이 있었다.

고발건을 계기로 두가지를 모아서 자료 조사도 하고 수사를 진행했는데 범죄사실이 드러났다. 그래서 관계자를 불러 조사하고 수사를 진행시키다가, 진술만으로는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 유죄에 대한 확신이 있는 상태에서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하게 된 것이다."

- 당시 검찰이 두번째 압수수색했던 SK 문서창고의 경우 내부 제보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문서보관실 압수수색은 익명의 제보가 있었다. 첫번째 압수수색하고 이틀 뒤에 했는데, 그때 제보가 있었다. 그냥 전화로 왔다. 누구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처음 압수수색은 제보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 최 회장 방 압수수색 했을 때 특별한 것은 없었나.
"특별한 것 없었다. 수사에 도움 되는 자료가 있었고, 나중에 중요한 것 아니면 다 돌려줬다."

- (압수수색할 때) 직원들 저항이 심했나.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처음에 정문에서 경비들의 저항이 있었는데, 우리도 그 정도는 예상하고 들어갔다. 그 때 우리가 무비 카메라를 들고 갔다. 그 사람들 처벌하려고 한 게 아니라 우리 방어를 위해서였다. 그런 수사를 하다보면 상대방이 저항하는 방법이나, 또 우리 수사팀에 대한 음해를 막기 위해 압수수색 하는 장면을 그대로 찍어 놓은 것이다. 현재 대검 중수부장(박영수 부장)이 당시 2차장이었는데, 기자들이 검찰이 들어갈 때 심하게 했다는 둥, 뭐라고 하니까 '우리가 카메라 찍어놓은 것 있으니까 봐라' 해서 그런 얘기 쏙 들어가 버렸다."

- 일반적으로 압수수색 하면서 무비 카메라까지 들고 가지는 않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 일종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면 된다."

- 그만큼 수사팀도 엄청난 부담을 안고 압수수색 한 셈이네.
"당연하다. 무비카메라 들고, 우리 방어도 하고, 중요한 사항은 증거도 확보하고, 저항할 때 찍으면 그 쪽에서도 부담을 느끼니까 덜 저항하게 되고, 가기 전에는 여러가지 상대방의 대응 시나리오 가지고 들어간다. 사진기도 들고 갔다."

"최태원 회장, 굉장히 조용하고 점잖았다"

재벌총수의 구속... 지난 2003년 2월 22일 저녁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혐의로 구속된 최태원 (주)SK 회장이 서울구치소로 가기 위해 서울지검을 나서고 있다.
재벌총수의 구속... 지난 2003년 2월 22일 저녁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혐의로 구속된 최태원 (주)SK 회장이 서울구치소로 가기 위해 서울지검을 나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당시 재계 서열 3위의 총수인 최태원 회장을 직접 심문하기도 했는데, 조사태도 등은 어땠나?
"개인적으로는 (최 회장은) 겸손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직접 조사를 하고, 조사 끝난 다음엔 사적인 대화도 많이 했는데… 굉장히 조용하고 점잖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있는 재벌 2세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일반적으로 재벌 2세하면 거들먹거릴 수도 있고, 남에 대한 배려도 적고,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나. 그런데 최 회장에 대한 조사를 하루만 한 것이 아니니까 그 사람의 품성을 느낄 수 있었다. 선대 회장이 상당히 교육 부분에 많이 신경쓰신 것은 느낌을 받았다."

- 당시 SK 분식회계 사건 수사로 결국 최 회장을 비롯해 손길승 회장까지 구속했고, 이후 SK그룹은 지배구조 등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주임 검사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수사 당시만해도 우리나라 경제가 침체과정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때 우리가 SK에 대한 수사를 했을때 혹자는 SK 그룹이 망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 이후에 저 개인적으로나 수사팀에서 SK그룹이 잘 되기를 기원하고, 잘하고 있는지를 계속 봤다. 그래야 저희 수사가 제대로 된 의미의 수사가 되는 것이니까.

결과적으로 SK 수사에서 가장 큰 수혜를 누린 것이 어딜까? 결국 SK이고, SK 최태원 회장이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근거도 있다. 첫째 주가다. (주)SK 주가가 결국 SK 그룹을 대표하는 주가인데, 우리가 수사할 즈음에 주당 6000원이었다. 지금은 6만원 정도 한다. 10배 정도 올랐다. 소버린이라는 외국자본이 들어와 지분 경쟁 때문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10배까지 오르지는 않는다.

그 얘기는 뭔가. 그룹의 분식회계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분식에서 회수한 금액이 1조5505억원정도 였는데, 분식을 해결함으로써 오히려 투명한 회사가 됐고, 신인도가 올라간 것이다. 그래서 소버린이 빠져나간 뒤에도 주가가 그대로 있는 것 아닌가. 의사입장에선 굉장히 잘된 치료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봐도 최태원 회장은 그룹의 분식회계가 해결됐기 때문에 집단소송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고…. 나중에 보니까 사회봉사 활동도 굉장히 많이 하더라."

"SK 수사할 때 그룹 망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나"

- 최근 현대차 수사와 관련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이 정 회장의 입국을 종용하면서 "대기업 수사는 하면 할수록 혐의가 늘어난다"고 했는데, 많이 해본 입장에서 정말 그런가?
"모든 수사가 열심히 하면 (혐의는) 늘어날 수 있지 않겠나. 수사는 수사자와 피조사자 사이에 형성되는 인간적인 네트워크의 일종이다. 대기업 회장이라 어느 정도 믿어서 출국금지도 안 시켰는데, (출국을 했으니) 서로의 기본적인 예의를 안지켜버린 것이 되는 것 아닌가."

- SK 수사 당시에는 최 회장에 대한 출금 조치를 했나.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 사건은 어차피 총수를 대상으로 하는 수사였다. 비자금 수사는 위로 올라가봐야 알지만, 우리 수사는 총수가 당사자였다. 기업의 부분적인 비리가 아니라 총수 개인의 불법주식거래 당사자니까, 본인이 모를 가능성은 없지 않나."

- 재벌이나 기업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다 보면, 실제 기업측이나 지인들로부터 로비가 있지 않나?
"중요 사건에 소위 말하는 로비가 있든 부탁이 있든 법률적인 설명이 있든, 당연히 있다."

- SK 수사 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검찰이 대기업과 재벌그룹 수사에 한계를 보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사건은 사실은 수사한 검사가 속사정을 제일 잘 안다. 검사의 입장에서 보면 외부에서 결과만 놓고 평가하는 부분과 수사하는 입장에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굉장히 많이 차이가 있다. 외부에서 우리를 좋게 봐서 검사는 수사하면 똑딱똑딱해서 다 자백하고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인데, 정말 국민에게 보여지는 조금한 성과를 얻어가기 위한 과정은 굉장히 힘들고 어렵다.

고민과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많은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성과가 안나왔다는 것을 가지고 재벌에 굴복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과가 부족한 것만 가지고 재벌에 약한 것 아닌가. 이제는 삼성에는 약하고 어디에는 강하다고 구분해서 얘기하더라. 이렇게 되면 너무 결과만 놓고 이야기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보면 참 억울하다."

- 외부에서는 과정을 알 수 없고, 어차피 결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우리 일이라는 것이 밸런스(형평성)에 맞게, 상황과 타당성에 맞게 해야 한다.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봐라. 과거 몇 년 전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좀 미흡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수용할 수 있겠지만, 많이 변했고, 검사들도 열심히 생각하고, 노력하고, 내부 시스템 자체도 압력이나 로비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먹힐 수 있는 구조가 안된다. 내부도 전향적으로 변화되고 있는데, 그 부분은 전혀 평가가 안되고 딱 결과만 놓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검사로서 섭섭할 수 있다."

- "검찰이 경제를 걱정하면 수사를 할 수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검찰이 대기업이나 재벌그룹 수사를 하면서 '국민 경제'를 걱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경제를 생각하면 안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법을 우선시 생각해야 한다. 항상 대기업 수사를 하다보면 경제 문제가 얘기 나온다. 그 쪽이 방어하는 논리인 경우가 많다. SK 수사 때도 일각에서는 SK그룹이 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SK 그룹이 망했나. 잘 하고 있지 않나.

원칙은 그 위법성이나 범죄 행위가 갖는 무게, 파급성 등을 보고 거기에 맞는 처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를 전혀 생각 안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선후 관계가 있는데, 그것이 흔들리지 말자는 것이다."

- 재계에서는 검찰에 대해 특정기업을 겨냥한 표적 수사 의혹을 제기하곤 한다. 이번 대검 중수부의 현대차 수사에 대해서도 그런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표적수사는 없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 전제가 틀렸다. 밖에서는 검찰이 맘만 먹으면 저 기업을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업정도 되는 곳의 범죄 행위를 찾아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대 전제가 우리가 아무나 수사해서 비리를 꺼낼 정도의 증거를 항상 가지고 있으면 그런 말이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아까 말했듯이 SK 그룹도 그런 계기나 고발이 있었으니까 가능했지, 평소에 들고 있다가 갑자기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상태가 안된다. 전제가 안되니, 표적수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기업 투명성은 나아지고 있지만, 기업인들은 못 따라가"

ⓒ 오마이뉴스 권우성
- 두산 그룹의 경우 수백억원의 회삿돈을 형제끼리 맘대로 나눠쓰고 수천억원을 분식회계 했는데도 법원은 집행유예 결정을 내렸고, 검찰도 그룹 총수에 대해 불구속 기소를 했는데.
"구체적인 사건과 SK 사건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고, 제가 SK를 수사한 검사 입장에서 검찰 총장도 아니고 대표성을 가지고 얘기하기가 곤란하다."

- 기업 수사를 하다보면 도덕 불감증에 빠진 기업인들을 많이 만날 것 같다. '내돈 내 맘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식일텐데, '범죄 사실 입증보다 법죄 행위라는 사실을 설득하는게 더 힘들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현장에서 보면 어떤가.
"금융이나 기업 수사를 할 때 저희가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이 그것이다. '우리 관행이다'라던지, 실제로 관행인 부분도 많이 있다. '이게 죄가 됩니까?'라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 돈 꺼내 쓰고 다시 넣어놓기도 합니다'라고 한다. 수사를 하면서 범죄를 밝히는 것도 필요하지만 본인이 죄라고 인식하게 했던 것도 노력했던 부분이다.

또 하나는 일반적인 관행을 두고 다 처벌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가장납입 같은 것은 형법상 범죄다. 하지만 우리나라 조그만 회사들은 다 하고 있다. 그것만 가지고 잡아넣겠다고 하면 처벌은 될 수 있지만 기업들이 승복을 하지 않는다. 대신 기업들의 투명성도 많이 나좋아지고 있지만, 기업인들의 인식은 못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긴 하지만, 현대차 그룹 사건을 보면 또 비자금 문제가 나왔다. 비자금 문제는 왜 자꾸 나오나?
"필요하니까 만드는 것이고, 불법인지 알면서 만드는 것은 만드는 데 누가 말릴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것은 지배구조의 문제 아니겠나. 다시 지배구조의 문제는 회사 운영에 대한 시스템에 관한 문제다. 이런 수사를 하게 되면 회사 지배구조에 대한 제도가 하나씩 바뀌게 되기도 하고, 여론의 힘을 받아서 개선되지 않겠나."

- 특수1부 소관은 아니지만, 삼성과 관련된 검찰 조사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 현재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문제를 비롯해, 서울통신기술 전환사채 등 검찰의 조사가 진행중인데, 삼성 사건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나.
"그것은 재판중이고 수사중인 사건이라 말을 할 수가 없다. 제 직위에 안맞는 얘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금융조사부에서 하고 있다. 에버랜드는 전환사채 문제이고, 예전에 내가 조사했던 정현준 사건은 신주인수권부사채(BW) 사건이다.

큰 그림에 있어서는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SK 주식 부당교환도 큰 그림에서는 비슷하다. 왜 그러냐. 주식 가격에 대한 평가에 관한 문제다. 비상장 같은 경우 평가 방법이 특별이 없으니까 자기 편의적으로 평가를 하는 것이다. 그래 놓고 문제를 삼으면 특별히 평가 하는 기준 없어 우리 나름대로 했다는 식으로 반론을 펴는 구조다. 난 나름대로 했다는 논리를 편다. 주가 평가에 관한, 기법에 관한 문제다."

- SK 사건도 비상장인 워커힐 주식값 평가를 놓고 법정에서 다툼이 있지 않았나.
"유죄가 났는데, 피해 금액에 대한 차이가 있다. 우리쪽에선 산출한 피해 금액은 790억인가로 했는데, 법원에서도 분명히 최 회장이 불법주식거래를 통해 이득을 본 것은 맞고 회사가 피해를 입은 것은 인정했다. 다만 피해금액이 얼마인지 단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의 배임이 아니라, 그냥 배임으로 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대법원에 상고했다."

- 수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업인이 있나?
"최태원 회장이다. 결국은 시스템에 관한 문제인데. 개인의 가치 판단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보다는 그동안 기업들이 잘못된 관행과 시스템에 따른 기업범죄, 경제범죄가 많다. 이 사건도 마찬가지 였다.

최 회장이 개인적으로 '분식하라'고 했겠나. 실제 조사해보니까 기업 분식이 어제 오늘 생긴 게 아니었다. 기업 분식회계와 함께 계열사간 부당지원거래도 어느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재벌 시스템적으로 그래왔던 범죄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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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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