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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늦가을이었다. 남편과 함께 근무하는 허 지점장님께서 저녁 초대를 한다고 했다. 꼭 뵙고 싶었던 분이었지만 뜻밖의 일이었다. 특별히 만나자고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남편은 자신을 신뢰해 주시는 지점장이라며 자랑을 했고, 누가 되지 않기 위해 근무 또한 열심히 했다.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었는데 뵐 생각을 하니 심장 박동이 쿵쿵거리면서 설렜다. 남편 직장 상사님의 초대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옷장에 있는 옷들을 꺼내 하나하나 입어 보았다. 못 생긴 외모엔 어떤 옷이 어울릴까? 못 생겼다고 퇴짜 맞을 자리도, 실망하실 지점장님도 아니었지만 근사하게 어울리는 옷 한 벌 없는 걸 투덜거리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우아동 음식점에 도착했을 때 지점장님은 일어나셔서 반겨 주었다. 아담한 키에 듬직한 체격, 잔잔한 미소는 금방이라도 달려와 손을 잡아 줄 것 같은 편안한 인상이었다. 지점장님을 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자리를 마련해 준 것도 감동이었지만 남편을 인정해 주는 지점장님의 조건 없는 사랑 때문이었다.
직장 상사가 아닌 큰 형님 마음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지점장님, 혹 직장일로 가정에 소홀하지는 않을까? 그 조바심에 회식으로 늦는 날이면 전화를 주셔서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 지점장님께서 인정한 'KS'라며 남편을 칭찬했다. 그 자상한 말씀에 눈 녹듯 사라지던 남편에 대한 자잘한 원망들, 지점장님은 그렇게 우리 부부의 행복 지킴이가 되어 주셨다.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게 빨리 지나갔던 첫 만남, 식당을 나와 우리 부부가 먼저 택시를 타고 반듯한 도로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시며 서 계시던 지점장님의 모습은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멋있어 보였고, 마음의 울림으로 남았던 감동이었다.
그 뒤 지점장님은 직원들의 회식 자리에 가끔 호출을 했고, 그 호출은 어떤 약속보다도 설레던 미시 아줌마의 외출이었다. 아내를 위해 근사한 곳을 데리고 가서 여유를 가질 만큼 한가한 남편이 아니었기에 지점장님의 배려는 특별한 보너스였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런 만남도 잠시, 1년이 지나 지점장님은 서울로 발령이 나셨고, 서둘러 가셨다는 소식만 남편에게 전해 듣고 많이 서운했다. 그래도 남편과 회사 사보를 통해 지점장님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축하해 주며 기뻐했다.
남편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많이 떠오르게 되는 지점장님, 우리 부부에게 많은 것을 희망으로 남겨주셨던 그 분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는 오랜 그리움으로 남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지점장님께 술 한 잔 대접하고 싶다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젠 먼저 전화를 해서 곱게 물들여 주셨던 추억의 빚 갚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며 늦은 변명이라도 해야겠다.
지금은 정년퇴직을 하신 후 칠순을 바라보시는 연세가 되셨다고 남편에게 들었지만 전화는 드리지 못했다. 남편과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전해 드리고 싶은 간절함이 밀려오는 요즘이다.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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