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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60×110cm 패널 위에 사진꼴라쥬 2006
자화상 60×110cm 패널 위에 사진꼴라쥬 2006 ⓒ 박건
신자유주의의 안개가 짙게 드리워지면서 본성을 잃어가는 인간의 모습쯤 됩니다. 작가가 실제 '부서진 얼굴'을 작업하면서 스스로 섬뜩함과 대리 배설 같은 쾌감을 느꼈을 만합니다.

작가는 예리한 칼로 사진을 베고, 찢고, 옮기고, 나누고 덧붙이면서 예쁘기는커녕 보기만 해도 아프게 느껴지는 모습으로 망쳐 놓고 말았습니다. 후회막심이겠지요. 멀쩡한 사람을 이 꼴로 해놓았으니 참으로 끔직한 일 아닙니까.

그렇지만 작가는 대수롭지 않게 가고 있는걸요. 막 베여져 벌어진 속살에선 핏방울마저 나오지 않습니다. 통증도 없는 듯합니다.

괜찮을까요? 아니지요. 곧 선홍색 핏방울이 '송글' 맺히고 철철 흐르겠지요. 그제야 아리고 통증이 오겠지요.

작가는 인간의 무모한 욕망과 일그러진 결과를 에폭시 속에 가두어 박제화 했습니다.

저런, 손가락 보세요 12개!…
요즘, 세상 움켜쥐려면 저 또한 12개로는 모자라지 싶습니다.
글쎄, 인간들이 이렇다니까요.

안창홍은 30여 년 동안 일상의 의미를 미끼로 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연작으로 낚아 왔어요. 1970년대 중반 역사의 상처로 가정이 무너지고 가족이 흩어지는 내용을 담은 '가족사진' 연작, 시간의 덧없음을 표현한 '봄날은 간다' 연작, 어린 아이들의 놀이를 통해 어른의 세계를 풍자한 '위험한 놀이' 연작 등.

연작 시리즈는 계속 이어집니다. 군부독재와 민주화 항쟁의 역사 현실을 의인화 시킨 '새' 연작, 우리시대의 성 풍속도인 '우리도 모델처럼' 연작, 주변부 생명체들의 명멸을 다룬 '자연사 박물관' 연작까지….

안창홍의 연작들에 나타난 그림 정신은 인간 본질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생명, 사랑, 죽음 따위에 관한 것들이지요.

양귀비 언덕입니다.

<양귀비 언덕>, 487×186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5
<양귀비 언덕>, 487×186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5 ⓒ 박건
큰 그림입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아크릴 물감덩어립니다. 양귀비의 붉은 꽃들을 거대한 화면에 크고 작은 모습으로 촘촘하되 순발력 있게 그렸습니다. 몇 발 떨어져서 보면 무수한 꽃들의 아우성이 들립니다.

전쟁이 터지고 환경이 오염되어도 우린 이렇게 살아 있다고. 너희들이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도 사랑은 멈출 수 없다고. 사뭇 절규하듯 짙고, 깊고, 넓게, 되풀이해 무게를 더하며 화면을 뒤덮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누구의 귀와 눈에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겠지요.

여행은 자신을 찾고 되돌아보는 시간이지요. '양귀비 언덕'은 2004년 봄, 그리스 여행에서 만난 풍경이었고 '인도 인상'은 지난 해 여름 인도 히말라야 끝자락을 방랑하며 현장에서 그린 그림들입니다.

안창홍은 색을 잘 씁니다. 붓도 잘 놀립니다. 분위기도 잘 살립니다. 여행 현장에서 그린 그림 속에 있는 인물과 동물과 주검들은 마술에 걸린 것처럼 그의 손끝-붓끝에서 살아납니다. 사랑과 덧없는 시간과 죽음과 생명에 대한 일상의 이야기들입니다.

<인도인상>연작 : 켄트지 위에 과슈, 2005
<인도인상>연작 : 켄트지 위에 과슈, 2005 ⓒ 박건

<49인의 명상> 연작 : 76×110cm, 패널 위에 사진, 아크릴릭, 잉크, 에폭시, 2004
<49인의 명상> 연작 : 76×110cm, 패널 위에 사진, 아크릴릭, 잉크, 에폭시, 2004 ⓒ 박건
'49인의 명상'에서 숫자는 49재를 뜻합니다. 죽은 이가 49일 되는 날 재를 올려 이승의 끈을 놓고 저승으로 편히 가도록 기원하는 제의 입니다. 정치권력과 제도로 알 듯 모를 듯 죽임을 당한 의문사를 포함하여 푸른 한을 품고 죽임 당한 영혼들을 달래는 진혼곡 같은 그림입니다.

문명국가랍시고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하는 일들이 뭡니까? 그리고 그런 나라가 되려고 발버둥치는 나라들이 하는 일도 한 통속들이지요

자동차를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고 로봇을 만들고 생명을 복제하고….

편하고 좋은 일이다 싶어 싸우듯 경쟁하며 인간마저 복제하려고 야단들입니다. 그나저나 벌써 조짐이 오고 있습니다. 게임 중독에 인터넷 중독. 저도 이글을 쓰면서 중독 증세를 느껴요. 내가 왜 이러지 컴퓨터, 이 별놈에게 엮여 별님을 잊은 지 이미 오래죠.

벌써 몇 시간째 잡혀 있어요. 걸어야 하는데…. 그런데 자꾸 정보화와 과학 기술과 기계의 편리함에 사로 잡혀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언젠가 저도 사이보그나 사이버 인간이 되지 않겠어요? 아니 사이버 인간이 되었는지 모르죠! 벌써, 가상공간에 집을 지어놓고 댓글이나 기다리고, 영토를 넓히고 돈을 벌고, 권력을 쫒으려 버둥거리니까요. 눈 보세요. 맛이 갔죠! 내장은 바꾼 지 얼마 안돼 쓸만한데 피부 유효기간은 지났네요. 쯥!

<사이보그> 연작 : 50×70cm, 패널 위에 사진, 아크릴릭, 에폭시, 2006
<사이보그> 연작 : 50×70cm, 패널 위에 사진, 아크릴릭, 에폭시, 2006 ⓒ 박건
그래서 요즘 걷습니다. 먼 길은 버스를 타고 기차도 타고 끼어 타기도 합니다. 승용차를 타면 속도를 내고 긴장이 돼요. 어떤 땐 '씨발씨발'하면서 혼자 고함을 지르기도 하죠. 사방이 유리로 콱 막혔으니 알게 뭐예요. 그런데 안타니까 사람 사는 것 같아요.

그러나 아침에 걸어 다닐라 치면 공기가 너무 더럽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먼지에 매연에 정말 괴롭습니다. 도시를 떠나고 싶어요. 자동차 인터넷 없는 원시자연의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요. 우씨! 정말 눈물난다니까요.

<사이보그의 눈물> 연작 : 70×100cm, 종이 위에 연필, 드로잉 잉크, 2006
<사이보그의 눈물> 연작 : 70×100cm, 종이 위에 연필, 드로잉 잉크, 2006 ⓒ 박건

덧붙이는 글 | 안창홍(1953~) 약력 : 개인전 23회, 카뉴국제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프랑스 1989), 제10회 봉생문화상(본생문화재단 2000), 제1회 부일 미술 대상(부산일보사 2001)을 수상, 관련 서적으로는<어둠속에서 빛나는 청춘-안창홍의 그림세계>(최태만 저, 눈빛, 1997), <안창홍 그림모음 2집>(눈빛, 199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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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미술관(T736-4371, 4410)부대행사 
1. 뮤지움 토크
뮤지움 토크 : 작가와의 대화
2006년 4월 22일 토요일 오후 5시, 사비나미술관 세미나실
2. 뮤지움 파티 : Blue Eyes, Blue Night
2006년 4월 22일 토요일 오후 4시~8시, 사비나미술관 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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