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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이 거세게 일렁이는 광성보 앞 바다입니다.
물살이 거세게 일렁이는 광성보 앞 바다입니다. ⓒ 이승숙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을 기수역(汽水域)이라 한다. 민물이 민물임을 포기하고 바닷물이 바닷물임을 포기하며 서로 격렬하게 껴안는 것이 기수이다.

남과 북을 옆으로 끼고 흘러내려온 물이 강화의 염하(鹽河)에서 만난다. 바닷물이 밀려 올라가고 강물은 밀려 내려오면서 그들은 격렬한 몸짓을 하며 힘차게 섞인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가 된다. 자기를 내던지는 격렬한 조화 속에서 평화가 깃들이는 것이다. 기수역을 보면서 남한과 북한도 자기 것만을 고집하면서 서로 대치하기보다는 서로 같이 살 수 있는 상생(相生)의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강화와 김포 사이에는 돈대들이 수없이 많이 포진해 있다. 바다라고 하기에는 너무 좁은 해협 이 쪽 저 쪽에 포진해 있는 이 돈대들은 우리 역사의 격랑 속을 같이 헤쳐왔다.

그 당시 전투에 쓰여졌던 대포입니다. 포는 인명 살상용이기보다는 적함을 깨뜨리는 목적으로 쓰여졌다고 합니다.
그 당시 전투에 쓰여졌던 대포입니다. 포는 인명 살상용이기보다는 적함을 깨뜨리는 목적으로 쓰여졌다고 합니다. ⓒ 이승숙

전쟁은 적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함에서부터 시작된다. 과거전이나 현대전이나 예외 없이 포 사격으로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적에게 공포감을 주고 아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제국주의의 야욕을 감추고 서구 열강이 아시아를 침탈할 때 그들은 함대를 이끌고 포함외교(砲艦外交)를 했다. 그들은 먼저 통상을 위한 조약을 요구해 온다. 그러나 상대국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그들은 함포를 날리며 위협을 가하고 그 뒤에 다시 조약을 요구한다.

1871년 미국은 아시아함대 사령관에게 조선원정을 명령했다. 배 5척을 이끌고 나타난 그들은 바닷길 측량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조선은 몇 년 전의 병인양요를 승리로 이끈 자존심이 강한 나라였다. 미군은 함포를 쏘며 초지진으로 밀고 들어왔다. 약 2시간의 함포공격으로 초지진은 무너졌는데 지금도 그 때의 포탄자국이 초지진 소나무 둥치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강화의 갯벌은 그들에게 이기기 힘든 적이었다. 무기를 끌고 발이 푹푹 빠지는 초지진 앞 갯벌을 빠져나오느라 힘을 소진한 미군은 힘을 비축하기 위해 그 곳에서 하룻밤 야영을 했다. 전쟁에서 시간은 금보다 더 귀한 것인데 미군은 귀한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그래서 조선군은 시간을 벌어서 진을 정비할 수 있었다.

미군의 진격을 막은 것은 조선의 군대라기보다는 강화의 자연적 조건이었다. 갯벌과 해무(海霧)가 그들의 진격을 지연시켜준 것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과 짙은 바다 안개 속에서 미군은 힘을 소진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진격을 하룻밤 늦췄다.

그 다음 날 저녁 때 쯤 광성보로 미군이 밀려들어왔다. 나라에선 이미 병인양요 때 호랑이를 잡던 강계포수들을 불러 모아 재미를 본 적이 있었으므로 신미양요 때도 이들을 앞에 내세웠다. 그러나 조선군대의 무기는 너무 보잘것이 없었고 그래서 군사들은 거의 맨 몸으로 적과 싸워야만 했다.

미군의 공식 집계를 보면 광성보 전투에서 조선군 전사자는 350명, 포로 20명으로 나타난다. 포로로 잡히느니 죽음을 택하는 게 났다고 여긴 조선의 군사들은 바다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도 많았다고 한다.

흙을 움켜쥐고 있는 광성보의 소나무뿌리를 보니 백성들의 질긴 생명력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흙을 움켜쥐고 있는 광성보의 소나무뿌리를 보니 백성들의 질긴 생명력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 이승숙

미군 전속 사진작가가 남긴 기록사진을 보면 전사자들은 대부분 흰 옷을 입은 백성들이었다. 일반 백성들이 농기구를 들고 미군과 싸운 것이다. 프랑스군을 물리친 병인양요의 승리로 외세와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의식이 백성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최신식 무기를 앞세운 미군들을 당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백성들은 죽어 나갔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의 포함외교는 막강한 해군함대를 배경으로 대성공을 거두어 왔다. 그러나 그들이 이 광성보 전투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미 해병대의 기록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가 전투에는 이겼으나, 아무도 이 전투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이 전투를 기억하고자 하지 않았다. 1871년의 조선 원정은 미국 해군 역사상 최초의 실패극이다."

그들은 조선의 백성들이 나라를 위해 온 몸을 던지는 그 정신을 보고 물리전에선 미군이 이겼으나 정신전에선 졌다는 평가를 내렸다는 것이다.

산 복숭아랑 개살구 꽃이 붉게 핀 용두돈대입니다.
산 복숭아랑 개살구 꽃이 붉게 핀 용두돈대입니다. ⓒ 이승숙

한반도의 과제는 예나 지금이나 '자주 민주국가 건설'에 있다. 외세로부터의 독립은 150년 전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과제이자 도달점인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그 점에서 자유롭지가 않다. 신미양요에서 던져진 과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진정한 민주자주국가는 통일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하는 맘을 가져본다.

나라가 내게 해준 건 아무것도 없지만 내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땐 몸 바쳐 충성을 다한 백성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 나라가 있는 것이다. 개살구꽃이랑 산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핀 광성보의 용두돈대에서 꽃처럼 붉게 쓰러져간 선인들을 생각해 봤다. 이름 없이 숨져간 많은 백성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일곱 개의 무덤에 안장했는데 그 무덤 위를 저녁노을이 따스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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