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해, 중국은 그곳이 일본과의 분쟁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바다이니까 외국 선박은 일체 지나다니지 말라"는 '경고'를 홈페이지에 적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일본측의 대응은 상당히 '유연한' 것이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중국 해사국의 공고를 즉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4월 13일이 되도록 별다른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물론 3월말 해사국에 이메일 1통을 보낸 일은 있다. 해상보안청의 메일에 별다른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는 점은, 중국 해사국이 1주일이 넘은 뒤에야 답변 메일을 보냈다는 점에서도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해상보안청은 그 메일에서 중국 측이 핑후 가스전 공사 자체를 부인했다고 했는데, 이에 관해서는 사실확인을 필요로 한다.
일본 <산케이신문>에서는 "해상보안청이 4월 16일까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보도는 그다지 정확한 보도가 아닌 것 같다. <산케이신문>이 의도적으로 거짓 보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총리실이나 해상보안청 관계자들이 언론에 '부정확한' 정보를 흘려보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인 듯하다.
왜냐하면, 중국이 '일본측 수역'에 대한 선박의 출입을 금지한 것은 국가주권을 침해하는 사안인데, 해상보안청이 이런 사실을 총리실에 보고하지 않은 채 중국 측에 이메일 1통만 '달랑' 보냈다는 게 쉽사리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측은 이미 지난 14일 이전에 국제수로기구(IHO)에 동해 EEZ 탐사계획을 통보한바 있다. 동해에 대한 탐사활동은 한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일으킬 만한 일이고 이런 일은 분명히 총리실에 보고되었을 것인데, 총리실에 동해 EEZ에 관해서만 보고되고 동지나해 EEZ에 대해서는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중국 측의 '도발'을 알고도 모른 척
여러 가지 정황을 놓고 볼 때에, 일본 총리실이 이미 지난 14일 이전부터 동지나해 EEZ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왜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가'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에서 지난 12일까지 6자회담 당사국들의 비공식 접촉이 일본에서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중국 대표가 일본에 와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중국의 항행금지조치를 문제 삼았다면 중일관계는 더욱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중일관계에서 수세적 입장에 놓여 있는 일본이 그런 식으로까지 중국을 자극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점은 일본측 전문가들도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일본정부가 4월 13일 이후에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고이즈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
그럼 "해상보안청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뒤늦게 보고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점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중국 측 6자회담 대표가 돌아간 뒤에 이 문제를 제기하려면, 최소한 지난 12일까지는 일본정부가 침묵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너무 늦게 문제제기를 하면, 일본 국민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을 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정부가 중국정부의 항행금지조치를 지난 13일 이후에야 뒤늦게 알았다고 발표할 수도 없다. 중국 해사국 홈페이지에 버젓이 기재되어 있는데, 일국의 국가기관이 그런 사실을 2주가 지난 다음에 알았다는 것은 국가적 체면을 망가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상보안청이 즉시 알았지만, 중국측이 답장 이메일을 늦게 보내주는 바람에 총리에게 늦게 보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필 왜 한국에 도발을?
그럼 '4월 13일' 이후에 중국에 강력한 항의를 하면 될 텐데, 왜 굳이 한국까지 끌어들였을까?
물론 일본정부는 중국에 항의의 뜻을 표하기는 했다. 지난 14일에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조회(照會)'를 하고, 이틀 뒤인 16일에도 외무부가 중국측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런데 일본측은 '그런 유화적 태도로는 중국의 태도를 바꾸기 힘들다'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일본측은, 중국에 대해 강력한 태도를 취했다가 공연히 중일관계를 더 악화시키기보다는 차라리 한국에게 '뭔가'를 보여줌으로써 중국에 간접적으로 겁을 주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중국에 대한 항의 제기와 한국에 대한 도발이 비슷한 시점에 함께 행해졌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이 중국에 대해 제대로 된 대응을 하려고 했다면, 한국에 대한 도발은 차후로 미루었을 것이다. 중국만 상대해도 벅찬데, 한국까지 적으로 돌릴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한국을 끌어들인 것은, '한국을 때림으로써 중국을 겁주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을 때려 중국을 겁준다
안 그래도 외교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고이즈미 정부가 동지나해에서 중국의 '도발'을 당했다는 소식이 국내에 알려지면 그의 곤경이 한층 더 심해질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14일부터 한국에게 도발을 가함으로써 자신들이 중국에게 '바보'처럼 당하고 있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지 않기 위해 동해 EEZ 탐사계획을 발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깊이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이번에 일본이 갑작스러운 문제제기를 한 것은 중일관계의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한국의 독도와 동해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본이 한국을 때림으로써 중국을 때린다는 전략을 세운 것은 우리로서는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 한국정부는 더 이상 일본정부가 한국을 이처럼 농락하는 일이 없도록 이번에 아주 단단한 대응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 가한 것보다도 몇 배 더 가혹한 대응조치를 취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도발이 아무런 득이 없다는 점을 그들의 뇌리에 분명히 각인시켜야 할 것이다.
서두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중국이 다소 유화적인 태도로 전환했기 때문에 일본이 앞으로 동해 EEZ와 관련하여 어떤 태도를 보일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우리 정부는 중일관계와 관계없이 일본이 분명히 '죗값'을 치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