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는 동맹관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한일관계는 '사실상의 동맹관계'다. '사실상의 동맹관계'라 함은, 양국이 직접적으로 동맹을 체결하지는 않았지만, 미국과의 동맹을 매개로 간접적으로 동맹관계에 들어가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상의 동맹관계는 개인 간의 사실혼관계와 유사한 것이다. 혼인신고 없는 사실혼에도 일정한 경우에는 법률혼과 같은 법적 효력이 부여된다. 한·일 간의 사실상 동맹관계 역시 그러하다. 법적으로 동맹을 약속한 문서는 없지만, 양국 간에는 동맹관계에 준하는 양상이 존재하고 있다.
예컨대, 양국이 핵우산을 앞세운 미국의 동북아 패권전략에 일조(一助)하거나 혹은 북·미 핵대결 국면에서 기본적으로 미국의 대북압박에 동조하는 것이 한·일 간의 사실상 동맹관계를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한국과 일본은 '사실혼 부부'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한국이 일본과의 사실상 동맹관계에 들어간 것은 미국의 매개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전쟁 중인 1951년 미일안전보장조약(1960년 개정)을 계기로 동맹관계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국과 미국은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발효는 1954년부터)로 공식적인 동맹관계에 들어갔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동북아에는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만이 존재했고, 아직까지 한·미·일 3각 동맹은 출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일 동맹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한·일 동맹이 가동되지 못한 것은 이승만의 반일정책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일 동맹의 부재는 미국의 동북아전략을 극대화시키는 데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였다.
그런데 이때 '해결사'로 등장한 친일파 박정희의 '노력'에 힘입어, 한·일 양국은 사실상의 동맹관계를 체결하고 1965년에는 한일기본조약까지 체결하게 되었다. 무소불위의 군사독재에도 박정희가 공식적인 한일동맹을 체결하지 못한 것은, 국민의 거센 반일감정을 '진압'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등장으로 '한·일 사실혼 성립'
이와 같은 박정희의 등장은 미국을 매개로 한 한·미·일 3각 동맹의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기서 한미동맹과 미·일 동맹은 공식적 동맹이지만, 한일동맹은 사실상의 동맹이었다.
그리고 한·미·일 3각 동맹의 출현은 1961년 7월 6일 및 11일의 북-러 군사동맹과 북-중 군사동맹을 촉발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다시 말해, 한·미·일 3각 동맹은 동북아의 냉전구도를 한층 더 고착시키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한·일 간의 사실상 동맹을 재고할 시기가 되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한·일 사실혼관계'는 과거 냉전시대의 산물이다. 이것은 동북아의 평화와 상호교류를 저해하는 것이었다. 냉전이 와해하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향하는 마당에 이 같은 과거의 유물을 그대로 안고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할 것이다.
냉전시대의 산물
둘째, '한·일 사실혼관계'는 상호 간의 이해와 합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만약 한·일 양국이 '연애결혼'을 한 것이라면, 양국이 번번이 독도·과거사 등을 놓고 대립을 계속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양국이 사실상의 동맹관계에 들어간 뒤에도 계속해서 영토나 과거사 등을 놓고 대립한다는 것은, 양국 간 동맹이 처음부터 진지한 숙고를 거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처음부터 진지하게 생각하고 토의한 결과로 '사실혼'이 성립한 것이라면, 양국이 수십 년 동안 해묵은 대립을 계속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 '동거'는 처음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일본과의 사실상 동맹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항상 편치 못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일본을 신뢰할 수 없다. 우리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일본은 어김없이 과거사 망언을 하고 독도 침탈을 기도한다. 그토록 신뢰할 수 없는 나라와 무슨 동맹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처음부터 생각 없이 시작한 '동거'
셋째, '한·일 사실혼관계'는 친일파 박정희의 유산이다. 1961년부터 한·일 간의 사실상 동맹관계가 출현한 것은 전적으로 친일파 정권의 성립 때문이다. 친일파 정권이 아니었더라도 물론 일본과 국교를 체결할 수는 있었겠지만, 박정희 정권처럼 굴욕적이고 무원칙하게 국교를 수립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별생각 없이 일본과 사실상 동맹을 체결하는 우도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친일청산 작업을 진행하는 마당에 친일파 박정희가 남겨 놓은 최대 유산 중 하나인 '한·일 사실혼관계'를 그대로 끌고 가야 할 것인가도 진지하게 숙고해야 할 것이다. 일제 패망 60년이 넘도록 아직 친일청산을 못 하고 있는 것은 바로 '반역사적'인 '사실혼관계' 때문이다.
친일파 박정희의 유산
그러므로 이제는 반역사적이고 반민족적인 한·일 간의 사실상 동맹을 재고하고 새로운 바탕 위에서 한일관계를 재정립하려는 노력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만족할 만한 해답을 도출하기 전까지는 일단 한일관계를 사실상의 동맹관계에서 '보통관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진지한 숙고를 거친 다음에, 일본이 믿을 만한 나라라고 판단되면 일본에 정식으로 '웨딩드레스'를 입히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일본과의 관계를 '보통관계'에 국한하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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