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주일여간 일본 해상보안청 선박들은 독도 탐사 계획을 추진하며 한·일 간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가운데 한·일 외무차관 회의가 긴급 소집됐고, 결국 일본 해상보안청 선박들은 23일 도쿄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일본 해상보안청 선박들을 돌려보냈다고 해서 한국정부가 이번 협상에서 이겼다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면으로 보나 이번 한·일 외무차관 회담은 '한국의 굴복'이다.
강도가 파출소를 습격하여 흉기(해상보안청 선박)로 위협한 다음에 재물(6월 지명신청)을 빼앗아 달아났다. 이 경우 재물을 빼앗아 달아난 강도가 승리한 것인가, 아니면 재물을 주고 강도를 돌려보낸 무장 경찰관이 승리한 것인가?
그 경찰관은 "불상사가 생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어디냐"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분명히 직무를 유기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강도를 돌려보냈다고 자부할지 모른다. 하지만 강도는 '돌려보낼 대상'이 아니라 '돌려보내지 말아야 할 대상'인 것이다. 만약 강도를 그냥 돌려보내려면, 차라리 그에게 아무 재물도 주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다.
경찰이 강도에게 돈을 줘서 돌려보낸 게 잘한 일인가?
일본 해상보안청 선박들의 독도 해역 진입으로 불상사가 생길 것을 우려했다면, 해경 등을 앞세워 그 선박들을 저지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주권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일본 선박들을 돌려보냈다.
독도는 우리 땅이므로 독도 해저에 지명을 붙이는 것은 우리 고유의 영역이다. 그것은 주권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일본과 타협할 문제가 아니다.
한국정부는 일본 선박들을 돌려보냈다고 자평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 선박들을 돌려보낸 게 아니라, 일본 선박들이 소기의 목적을 성취하고 돌아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협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한국정부는 졌고 일본정부는 이겼다.
일본이 목적 달성하고 돌아간 것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정부의 무능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기질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일본이 한국을 위협하기 위해서 파견한 선박들은 해상보안청 소속이다. 자위대나 해상보안청은 사실상 국가 무력기구들이다. 군대라는 외피만 쓰지 않았을 뿐 사실상 군대나 다름없는 기구들이다. 자위대와 더불어 사실상 군대의 성격을 띠고 있는 해상보안청에서 한국 독도에 선박들을 파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선박들은 사실상 '군함'에 가까운 것이다.
군함을 앞세워 외국을 굴복시키는 방식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외국을 침략 혹은 침탈할 때에 흔히 사용하던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함포 외교' 혹은 '탈아 외교(脫亞外交, 아시아를 벗어난 외교)'라고 한다. 군함에서 포격을 가하면서 상대방을 공포에 빠뜨린 다음에 협상에 나섰기 때문에 함포외교라고 하는 것이다.
19세기말 오키나와·대만·조선에 접근할 때에 일본은 늘 군함을 앞세웠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영국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도 아시아·아프리카를 상대로 동일한 방법을 구사했다.
함포외교는 제국주의 침략의 전형적 방식
이번에 일본이 한국에 대해 사용한 방식도 제국주의 침탈방식을 그대로 연상케 하는 것이다. 일반 선박도 아닌 보안청 선박을 보내 한국을 위협했다. 한국식 지명 신청을 포기하지 않으면 독도 해역에 진입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렇게 보안청 선박을 동해에 띄워 놓은 상태에서 협상에 나섰다. 일본의 무력시위 속에서 협상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더욱 딱한 것은 그런 위협 앞에 한국정부가 허무하게 굴복했다는 것이다. 일본 외무차관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강경한 대응'을 외치며 '일전불사'의 태도를 보이던 한국정부가 막상 협상에 들어서서는 허무하게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므로 마라톤협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간 아치 쇼타로 일본 외무차관에게 일본정부는 '월계관'을 선사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100년 전처럼 제국주의 방식으로 한국을 위협하는 일본과도 한 하늘 아래서 함께 살 수 없지만, 아직도 100년 전처럼 제국주의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는 이런 외교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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