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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제가 제대로 아는 것도 없이 주말농장을 시작하겠다고 나선 것은 군대시절에 모종을 사다 상추며 고추, 토마토 같은 것들을 길러본 작은 경험과 그런 중에 느꼈던 희열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선 주말농장 신청을 위해서 인터넷에서 몇몇 후보지를 둘러 봤습니다. 참살이에 이보다 더 좋은 게 없고 어린 자녀들의 체험학습 치고 주말농장 만한 것이 없으니 의뢰로 서울 근교에도 갈만한 주말농장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정한 농장 후보지의 처음이자 마지막 조건은 위치였습니다. 아무리 게으르다고 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들를 수 있을 곳이어야 하되 주말에 주로 갈 것이므로 교통체증 없이 '휭'하니 다녀와야 하는 곳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가 분당인데 마침 회사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마땅한 곳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토마토 농사를 짓는 분이 땅을 나누어 주말농장으로 하시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토마토를 심는다면 노하우를 전수해줄 선생님은 확정된 셈입니다.
회사 근처니 주말에 일이 있어 못 갈 경우에는 아침 출근길이나 점심시간에 잠깐 들를 수도 있으니 위치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분양기간이 1년에 텃밭크기는 5평으로 저와 아내가 덤비면 크지도 적지도 않은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늘 시장에서 사먹어야만 했던 상추, 쑥갓, 참나물 같은 푸성귀와 한 여름 밥상을 든든히 지켜주는 풋고추나 깻잎,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꿈같은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가을에 배추와 무도 수확해서 김치도 담아보고 싶습니다.
발걸음 빠르게 주말농장 분양을 마치고 쉬는 날을 잡아 '초짜'에게는 만만해 보이는 상추를 파종하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갔을 때(4월초) 주말농장은 벌써 각 개인별로 구획정리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흙을 한 줌 집어 냄새를 맡아보니 두엄냄새가 은은히 퍼지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먼저 단단한 흙을 호미로 파서 부드럽게 만들고 돌멩이를 골라내고 평평히 만들었습니다.
호미로 파고 뒤집으며 만지는 흙의 촉감은 거친 듯 부드러웠습니다. 첫번째 재배 작물로 상추를 선택한 것은 파종시기도 적절하고 또 친근한 작물이기 때문입니다. 집 베란다에서도 곧잘 기르기는 것이 상추이지요.
거기에 한 번 먹고 끝나는 게 아니라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하면 아래쪽부터 한 잎 한 잎 따도 쑥쑥 자라면서 계속 잎을 피워내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상추씨앗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씨앗을 보자마자 아내와 저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과연 여기서 상추가 나올 수 있을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상추 심은 데 상추 난다고 했으니 믿어볼 수밖에요. 경험 일천한 초짜 농부가 믿을 것은 오직 두엄냄새 풀풀 나는 기름진 땅이고, 때맞춰 내려 씨앗을 적셔줄 단비이고, 따뜻하게 씨를 덮은 흙이불을 데워줄 태양을 믿을 뿐입니다.
호미로 골라놓은 부드러운 흙침대에 상추씨를 흩뿌리고 다시 그 위를 흙으로 가볍게 덮어준 다음 물을 흠뻑 주니 오늘 할 일이 모두 끝났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주말 농장 푯말의 글 한 구절이 쓰여 있습니다.
"농장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자라 갑니다."
과연 제가 뿌린 상추씨앗들이 저와 아내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잘 자라 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