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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4월 25일자 '김대중 칼럼'
DJ의 재방북이 '연방제 합의'에 있다고 믿을만한 국민이 도대체 몇이나 있을까. 그럼에도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은 DJ 재방북을 연방제와 연관시킨다(4월 25일자 'DJ 재방북 감상법').

'음모론'이다. 물론 처음이 아니다. 김대중 고문은 지난 2월 12일자 칼럼 'DJ 방북 재고해야'에서부터 연방제 논의를 경계하고 나섰다.

필경 그는 명예롭게 자연인으로서의 생활을 누리고 있는 전직 대통령에게 통일방안에 대한 수권이라도 한 모양이다. 제발 이 따위의 수준 낮은 상상일랑 하지 말자. 통일은 헌법 제72조가 정한 국민투표 사안이다.

통일은 헌법이 정한 국민투표 사안이다

김대중 고문은 툭하면 '무슨무슨 감상법'이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자신의 관점을 강요한다. 하지만 그 삐딱한 감상법에 어느 누가 동의할 것인가. 다음은 칼럼의 한 부분이다.

"그는 철저히 업적주의에 매달렸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무엇인가 사태를 극적으로 전환시키는 쇼 같은 것을 연출하려 했다. 평양 방문과 6·15 선언이 그 대표 작품이었다."

김 고문은 만일 DJ에게 아무런 업적이 없었다면 무능해서 그랬다고 비판했을 것이다. 그런데 평양방문과 6·15선언이라는 역사적 업적이 있다보니 이번에는 오로지 업적만을 위한 업적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예술가에게 예술작품이 성취가 되듯 분단시대의 정치인에게 남북화해와 교류, 긴장완화보다 더한 작품이나 더 무슨 업적이 필요한 것일까. 김 고문의 업적주의 비판은 정치적 성과를 무(無)로 환원시켜 끊임없이 정치불신을 재촉함과 동시에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끊임없이 상처를 입히고 싶은 본능의 발로가 아닌가 종종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김대중 칼럼은 전직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편견과 오해도 심각하다.

"DJ는 이제 와 더 늦기 전에 다시 평양에 가 어떤 마침표라도 찍으려고 하는 모양인데, 현직도 아닌 전직 대통령이 평양에 가 어떤 합의를 하는 것도 우습고, 이런 파행적인 일들이 어떻게 정부 간의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 지도 이해할 수 없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특사로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 전쟁직전의 한반도 위기를 해결한 바 있다. 2004년 아버지 부시와 클린턴 전 대통령은 동남아시아 지진해일(쓰나미) 참사를 위한 유엔 모금특사로 활동했다. 일본의 경우에도 '모리'와 같은 전직 총리들은 외교·안보분야의 막후 채널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김 고문에게는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를 망각하고 현실 정치에 대한 불필요한 독설이나 쏟아내는 YS가 역할 모델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김 고문에겐 YS가 역할모델인가

지난 22일 미 태평양사령부는 군사적인 관점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현황을 분석한 '아태 경제 최신정보 2005'(Asia-Pacific Economic Update)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에서 시장 매커니즘 기능을 확대하는 전환이 이제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며 "북한에서 구체제 붕괴에 따라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필요한 새로운 정책과 기관을 재정비하는 것이 불가피하며 노동당과 군부, 내각 등이 이 같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재조정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북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이미 진행 중에 있지만 국제사회가 정책 대화, 기술지원, 교육, 투자 등의 분야에서 북한이 이 같은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포용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근본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진한 '햇볕정책'과 '6·15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라 말할 수 있다. 6·15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에게 불필요할 정도의 남한에 대한 공포와 체제 경쟁을 면하게 해주었고 이 동력을 체제의 연착륙에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지난 2002년의 '7·1경제관리 개선조치'다. 이제 북한은 서서히 되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햇볕정책과 6·15 회담의 성과로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는 사라졌다. 2005년 2월 북한이 핵 보유 선언을 했을 때에 한반도에는 더 이상 생수와 라면 사재기가 없었다. 2000년 이후 무장 남파간첩은 없었다.

남과 북을 오가는 수많은 이산가족과 민간교류, 8000명에 이르는 한국내 탈북자들 그리고 당국자간 회담을 위해 오간 사람들에게 남북한 사이의 체제경쟁의 우열은 분명히 드러났다. 이제 북한을 직접적인 위협세력이나 불필요한 경쟁상대로 여기는 사람은 차츰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에게 대다수 북한 사람은 우리보다 키가 평균 15cm쯤 작고 몸무게가 20kg쯤 가벼운 '가난하고 슬픈 한 민족'일 뿐이다. 값싼 감상이 아니고 엄연한 현실이다.

북한, 가난하고 슬픈 한 민족일 뿐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국내외간에 팽배해 있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불신을 회복시켜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책임있고 신뢰받는 일원으로 재등장시키는 일이다. 북한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피로감과 불신은 현재 극에 달해 있다. 이러한 인내가 소진될 경우 한반도에 불어 닥칠 급변사태의 위험성은 결코 상상하고 싶지 않다. 김정일 정권의 DJ에 대한 인간적 신뢰, 미 부시 행정부의 DJ에 대한 외교적 신뢰, 역시 일본과 중국의 DJ에 대한 평화운동가로서의 신뢰가 결국은 북한을 설득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도 유일한 방법이다.

둘째, 남북화해의 획기적 진전은 혁명 2세대인 김정일 정권이 안정적인 기반을 유지하고 있을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는 남한 답방이라는 통큰 결단을 통해 이루어 낼 수 있다. 일부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가치절하 하기도 하나 김 위원장의 답방은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시킬 수 있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다시 한번 재촉하고 그 분위기를 성숙시킬 수 있는 일은 역시 DJ만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국제정치적인 측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은 6자회담 및 북한 위폐 문제 등 북·미간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역할을 제공할 수 있다. 가장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미국이 DJ에게 북한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창구로 활용하는 일이다. 현재의 북·미갈등을 해결하고 지난 해 9·19 공동성명 체제로 복귀시켜야 하는 나름대로의 소명이 DJ에게 부여될 수 있다.

DJ는 이제 한 사람의 자연인이다. 하지만 남북화해협력 및 평화체제 구축에 평생을 몸 바쳐 온 통일 운동가 출신의 전직 대통령이다. 이번 방문의 자격은 어느 누가 의심하더라도 개인자격일 뿐이다.

오는 6월이면 DJ는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북한 땅을 찾아간다. 한 개인의 일신영달을 위해서일까? 아닐 것이다. 제 몸이 썩은 한 알의 밀알이 수많은 열매를 맺듯, 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듯, 마지막 남은 열정과 조국애로 한민족의 피와 눈물을 닦으러 가는 것 아닐까.

노 정객의 걸음걸음에 박수는 못칠망정 '김대중 칼럼'처럼 제발 등 뒤에서 손가락질 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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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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